허풍인가 혁신인가…도넛 랩 전고체 배터리 ‘진실 공방’
핀란드 도넛 랩이 초고속 충전·초고밀도를 갖춘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며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 기술 공개가 부족해 전문가들의 회의적인 시각이 이어지고 있다.
전고체 배터리는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안전성이 높아 흔히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이런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기업이 나타나면 당연히 여러 의문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기업은 핀란드의 배터리 기술 기업 도넛 랩(Donut Lab)이다. 도넛 랩은 지난 1월 대규모 생산이 가능한 새로운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한 이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도넛 랩은 이번에 개발한 배터리가 초고속 충전이 가능하고 에너지 밀도가 높아 초장거리 전기차(EV)를 구현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극한의 고온과 저온에서도 안전하게 작동하며 ‘친환경적이고 풍부한 소재’를 사용했고 현재의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비용이 낮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도넛 랩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매우 대단한 기술이다. 이런 기술이라면 전기차 산업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도넛 랩의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도넛 랩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겠다며 영상들을 잇따라 공개하고 있다. 도넛 랩은 왜 화제가 되고 있는지, 많은 전문가들은 왜 회의적인지,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이 현재 배터리 산업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겠다.
전고체 배터리는 차세대 전기차를 가능하게 할 기술로 꼽힌다. 기존 배터리에서 이온이 이동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액체 전해질 대신 고체 물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더 작은 크기로 설계할 수 있다. 그러면 같은 공간에 더 많은 배터리를 탑재할 수 있으므로 전기차의 주행거리를 크게 늘릴 수 있고, 더 많은 소비자가 전기차에 관심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전고체 배터리를 실제로 작동하게 만들고 전기차 산업이 요구하는 대규모 생산 체제로 전환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사와 배터리 기업들은 수년간 전고체 배터리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토요타는 한때 2020년까지 전고체 배터리를 차량에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목표 시점은 2027년 또는 2028년으로 미뤄진 상태다.
시간은 오래 걸리고 있지만 전고체 배터리 기술의 실현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워진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의 진전은 주로 전해질에 젤과 같은 물질을 사용하는 ‘준고체 배터리’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중국 기업들을 포함한 일부 기업들은 완전한 전고체 기술에 더 근접하고 있다. 세계 최대 배터리 기업인 중국의 CATL은 2027년 전고체 배터리의 소량 생산을 계획하고 있다. 또한 중국의 주요 자동차 제조사 창안자동차는 올해 전고체 배터리를 차량에 장착해 시험을 시작하고 내년에는 대량 생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넛 랩은 지난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를 앞두고 공개한 영상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완전한 전고체 배터리를 양산 차량에 적용하겠다고 주장하며 배터리 업계를 놀라게 했다.
발표에서 눈길을 끈 주장 가운데 하나는 배터리 셀의 에너지 밀도가 kg당 400Wh(와트시)에 달한다는 것이었다. 현재 상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최고 수준은 약 250~300Wh/kg이다. 또한 해당 배터리 셀은 최소 5분 만에 충전이 가능하고, 10만 회의 충전 사이클을 견디며, 고온과 저온에서도 용량의 99%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도 리튬이온 셀보다 저렴하고 ‘전 세계적으로 쉽게 확보할 수 있는 100% 친환경 소재’로 제작된다고 밝혔다.
많은 전문가들은 즉각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셜리 멍(Shirley Meng) 분자공학과 교수는 지난 1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전고체 분야는 기술 장벽이 매우 높다”고 말한 바 있다. 멍 교수는 최근 CES에 참석해 도넛 랩 부스를 방문했다며 “기술 시연이 전혀 없었고 그래서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보수적이라고 불러도 좋지만,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조심하는 편이 낫다”고 덧붙였다.
전고체 배터리 기업 아이온 스토리지 시스템(Ion Storage Systems)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한 에릭 왁스만(Eric Wachsman) 메릴랜드대 교수도 1월 인터뷰에서 도넛 랩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회사”라면서 “갑자기 등장했다”고 말했다.
도넛 랩은 자사의 기술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해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배터리 기업이나 스타트업이 특허 출원을 통해 기술을 보호하기 전까지 세부 내용을 밝히지 않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도넛 랩이 제시한 여러 주장들은 기존에 알려진 어떤 배터리 화학 조성과도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의 추측과 의구심을 낳았다.
중국의 배터리 대기업 에스볼트 에너지(Svolt Energy)의 양훙신(Yang Hongxin) 회장 겸 CEO는 1월 언론 인터뷰에서 도넛 랩의 주장에 대해 “모든 지표가 서로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에너지 밀도를 높이려면 에너지를 더 많이 저장할 수 있도록 전극을 두껍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는 이온이 빠르게 이동해야 가능한 고속 충전과 상충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고성능 배터리는 일반적으로 가격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도넛 랩은 오히려 리튬이온 기술보다 저렴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새로운 영상에서 도넛 랩의 마르코 레티마키(Marko Lehtimäki) 공동창업자 겸 CEO는 자사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영상 시리즈 ‘아이 도넛 빌리브(I Donut Believe)’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관련 웹사이트 상단에는 ‘충분히 의심할 만하다. 그래서 준비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웹사이트에는 2월 23일 월요일을 가리키는 카운트다운 타이머가 설치됐고, 23일 첫 번째 외부 기관 시험 결과인 ‘고속 충전 테스트 결과’가 공개됐다. 시험에 따르면 단일 셀이 약 4분 30초 만에 0%에서 80%까지 충전됐다. 놀라울 만큼 빠르고 인상적인 결과다. (다만 충전 과정에서 배터리 셀의 온도가 상당히 올라갔으므로 이러한 배터리를 사용하는 차량을 설계할 때는 열 관리가 중요해질 수 있다.)
첫 기술 시험 결과가 공개됐지만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는다. 이 충전 속도로 몇 회의 충전 사이클을 견딜 수 있을까? 동일한 배터리 셀이 회사가 주장한 다른 성능 지표도 충족할 수 있을까? 필자는 지난 한 달간 도넛 랩의 공식 보도 이메일과 경영진의 링크드인을 통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아직 답변을 받지 못했다)
도넛 랩은 이번 공개 과정을 통해 상당한 관심과 주목을 받았으며 이들의 주장 입증은 계속 진행 중이다. 도넛 랩 웹사이트에는 또 다른 카운트다운 타이머가 등장했고 이는 3월 2일 종료된다.
필자는 새로운 배터리 기술에 누구보다 먼저 흥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최근 온라인에서 자주 보이는 다음 문장이 이 기사를 작성하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엄청난 주장은 엄청난 증거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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