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대 알파고 10주년, AI가 바둑의 판도를 바꾸다

AI 등장 이후 바둑의 전략과 플레이 방식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최정상 기사들조차 AI와 함께 훈련하며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있으며, 여성 기사들의 약진과 경기 스타일의 변화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 나무 바둑알 통에서 돌을 집어 올리는 부드러운 소리로 가득했던 대한바둑협회 연습실이 이제는 마우스 클릭 소리로 가득하다. 기사들은 모니터 앞에 웅크린 채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자신의 대국을 재현하고, 바둑판 주위에 모여 최선의 다음 수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조용히 앉아 AI 프로그램이 서로 대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사도 있다. 코치들은 그들의 선택이 AI와 어떻게 다른지 알려준다.

10년 전인 2016년 3월, 구글 딥마인드의 AI 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꺾으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 후 수년간 AI는 바둑 판도를 뒤흔들며 수백 년간 이어져 온 최선의 수에 관한 원칙을 뒤엎고 완전히 새로운 원칙을 제시했다. 기계의 사고방식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음에도, 이제 바둑 기사들은 이제 자신만의 수를 창조하기보다 AI 수를 최대한 모방하는 훈련을 한다. 오늘날 AI 없이 프로 대국을 치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AI가 바둑의 창의성을 고갈시켰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여전히 인간의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한편 AI 덕분에 훈련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리면서 여성 기사들의 약진도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 랭킹 1위 신진서 9단에게 AI는 귀중한 훈련 파트너다. 그는 매일 아침 컴퓨터 앞에 앉아 ‘카타고(KataGo)’라는 AI 바둑 프로그램을 연다. AI처럼 정확하고 예리한 수를 둔다고 해서 ‘신공지능’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프로그램이 제안하는 최적의 다음 수를 나타내는 ‘푸른 점’을 따라가면서 디지털 바둑판 위의 돌을 재배치해 기계의 사고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는 “AI가 왜 그 수를 선택했는지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말했다.

신 9단은 대국을 준비할 때 카타고 분석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는다. 그에 따르면 그건 ‘거의 수행에 가까운 일’이다. KB바둑리그의 2022년 연구에 따르면 신 9단의 수순은 AI와 37.5%의 일치율을 보였는데, 이는 전체 기사 평균인 28.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신 9단은 “내 바둑이 많이 변했다”며 “어느 정도는 AI가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한바둑협회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세기의 바둑 대결 10주년을 맞아 신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마련하기 위해 구글 딥마인드에 접촉했다고 밝혔다. 구글 딥마인드 대변인은 현재로서는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새 대국이 성사된다면 더 진보된 AI 프로그램으로 훈련한 신 9단은 승리를 낙관한다. “당시 알파고에도 약점이 있었기에 그 취약점을 공략하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바둑의 판도를 바꾸는 AI

바둑은 2,500여 년 전 중국에서 발명된 추상 전략 보드게임이다. 두 대국자가 19×19 격자판에 흑백 돌을 번갈아 놓으며, 상대 돌을 포위해 영토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놀라운 수학적 복잡성을 지닌 게임이다. 가능한 판의 경우의 수는 약 10의 170승 정도로,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 수를 압도한다. 체스가 전투라면 바둑은 전쟁이다. 한쪽 구석에서 적을 질식시키는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침공을 막아내야 한다.

AI가 바둑을 두도록 훈련시키려면 인간이 둔 방대한 양의 바둑 기보를 신경망에 학습시켜야 한다. 신경망은 인간 뇌의 신경세포 연결 구조를 모방한 컴퓨팅 시스템이다. 이세돌 9단에게 승리한 뒤 ‘알파고 리(AlphaGo Lee)’로 불리게 된 알파고는 3,000만 개의 수로 훈련받았고, 스스로와 수백만 판을 두며 성능을 고도화했다. 2017년 등장한 후속작 알파고 제로(AlphaGo Zero)는 바둑을 완전히 처음부터 배웠다. 인간의 대국을 전혀 참고하지 않고, 오직 경기 규칙만을 바탕으로 스스로와 대국하며 학습했다. 이러한 ‘백지상태’, 즉 처음부터 인간 기보를 참고하지 않는 학습법은 인간 지식의 한계에 얽매이지 않아 더 강력함을 입증했다. 3일간 훈련한 뒤 알파고 제로는 알파고 리를 100승 무패로 제압했다.

구글 딥마인드는 같은 해 알파고를 은퇴시켰다. 그러나 이후 알파고 제로에서 영감을 받은 오픈소스 모델들이 쏟아져 나왔다. 현재 한국 프로 바둑 기사들이 가장 널리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카타고다. 알파고보다 빠르고 정교하다. 승패 예측뿐 아니라 특정 순간마다 바둑판의 각 지점을 누가 점유하는지도 예측할 수 있게 학습했다. 알파고 제로가 작은 구역을 분석하며 바둑판에 대한 이해를 쌓아간 반면, 카타고는 전체 판을 읽는 법을 배워 장기적 전략에 대한 판단력을 향상시켰다. 단순히 승리하는 법을 배우기보다 점수를 극대화하는 법을 터득한 것이다.

AI는 사람들이 바둑을 두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수백 년 동안 프로 바둑 기사들은 무차별적인 계산 대신 경험칙을 발전시키며 바둑의 천문학적 복잡성을 헤쳐 나왔다. 우아한 초반 전략은 텅 빈 바둑판에 추상적인 질서를 부여했다. 초반에 모서리를 침범하는 것은 손해 보는 선택이었다. 각 세대의 바둑 기사들은 새로운 원칙을 정설에 더해 왔다.

하지만 바둑 해설가인 박정상 9단은 “AI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며 “한때 상식으로 여겨졌던 기본 수들은 오늘날 전혀 쓰이지 않으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기법들이 대중화되었다”고 설명했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초반 수에서 나타났다. 바둑은 빈 판에서 시작되며, 초반 50수는 추상적 사고와 창의성의 캔버스였다. 기사들은 여기에 자신의 개성과 철학을 새겼다. 이세돌 9단은 혼란을 부르는 도발적인 수를 구사했다. 2017년 알파고 마스터(AlphaGo Master)에게 패배한 중국의 커제 9단은 민첩하고 상상력 넘치는 수로 주목을 받았다. 이제 기사들은 AI가 제안하는 효율적이고 계산된 동일한 유형의 초반 수를 암기한다. 바둑의 중심축은 중반으로 옮겨갔다. 이곳에서는 창의성보다 냉정한 계산이 승부를 가른다.

AI와의 훈련은 플레이 스타일의 획일화로 이어졌다. 커제 9단은 끝없이 재활용되는 동일한 초반 수를 지켜보는 부담을 토로했다. 그는 2021년 한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관전하는 팬들과 똑같은 기분을 느낀다. 보는 게 매우 지치고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팬들은 기사가 예상 밖의 수를 썼을 때 열광하지만 그런 순간은 점점 더 드물어졌다. 2023년 나온 연구에 따르면 최정상 바둑 기사들의 수 중 3분의 1 이상이 AI의 추천을 복제한다. 많은 기사들은 각 경기의 첫 50수가 종종 AI가 제안하는 수와 동일하다고 말한다.

2016년 알파고에 패한 지 3년 만에 은퇴한 이세돌 9단은 “바둑은 이제 머리를 쓰는 스포츠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AI 이전에 우리는 더 큰 무언가를 추구했고, 나는 바둑을 예술로 배웠다”며 “하지만 정답지에서 수를 베껴 쓰는 건 더 이상 예술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AI와 인간의 공존

바둑계에 남아 있는 기사들은 각자의 기술을 재창조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새로운 원칙이 무엇인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김채영 9단은 세계 최정상 여성 바둑 기사 중 한 명이다. 그녀는 프로 바둑 기사였던 아버지에게서 바둑을 배웠다. 하지만 AI가 바둑을 재편하기 시작하자 그녀는 다시 시작해야 했다. 김 9단은 “예전에 배운 모든 것을 버리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라며 “수년간 쌓아온 직감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김 9단이나 신진서 9단 같은 최정상 기사들조차 AI의 모든 수를 이해하지 못한다. 김 9단은 “AI가 더 높은 차원에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연구자들은 AI 게임 프로그램에 담긴 초인적 지식을 발견해 인간도 배울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다. 2024년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은 체스도 가능한 알파고 제로의 확장판인 알파제로에서 새로운 체스 개념을 추출해 체스 퍼즐을 통해 그 개념을 체스 그랜드마스터들에게 가르쳤다.

시카고 토요타 기술연구소의 컴퓨터 과학자 니콜라스 톰린(Nicholas Tomlin)은 “지금까지 플레이어들이 AI 시스템에서 습득한 바둑 개념은 잠재적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의 아주 일부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 제로에 담긴 바둑 개념을 탐구한 연구의 공동 저자다.

그러나 이러한 교훈을 얻기는 여전히 만만치 않다. 남치형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교수는 “최정상 기사들조차 아직 AI 수의 일반적 원리를 추론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AI의 수를 모방할 수는 있지만, 그 추론 과정이 블랙박스이기 때문에 게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바둑은 인식론적 한계를 맞고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AI가 불투명한 스승이지만, 민주적인 스승이다. 오랜 기간 바둑계의 약자였던 여성 바둑 기사들의 훈련을 가속화했다. 남 교수는 “지난 수십 년간 바둑 훈련은 최정상 남성 기사 밑에서 수련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가장 경쟁적인 대국은 여성들이 진입하기 어려운 남성 중심의 서클에서 벌어졌다”며 “여성 기사들은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이제 여성 기사들이 AI와 함께 공부할 수 있어 훈련 환경이 훨씬 유리해졌다”고 강조했다. 더 넓게 보면 AI는 모든 사람이 초반 수를 완벽하게 다듬도록 도와 기사 간 격차를 좁혔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지난 몇 년간 여성 기사들의 랭킹이 상승했다. 2022년 당시 세계 1위 여성 기사였던 최정 9단은 여성 기사로는 최초로 주요 국제 바둑 대회 결승에 진출했다. 격렬하고 공격적인 플레이 스타일로 유명한 최 9단은 신진서 9단과 맞붙어 패배했지만 이 대국은 여성 바둑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AI와 함께 훈련하고 남성 기사들의 수를 AI로 분석하면서 김채영 9단은 새로운 자신감을 얻었다. “예전에는 최정상 남성 기사들의 실력을 가늠할 수 없었다. 무적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그들이 실수를 하고, 항상 뛰어난 수를 두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AI가 심리적 장벽을 깨뜨렸다.”

새로운 정체성 찾기

비록 AI가 어떤 인간보다 바둑을 훨씬 잘 두지만, 팬들은 여전히 사람이 두는 경기를 선호한다. 바둑 해설가 박 9단은 “AI 프로그램 간의 바둑 경기는 팬들이 보기엔 재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런 대국은 팬들이 따라가기엔 너무 복잡하고, 완벽해서 오히려 흥미롭지 않다는 것이다.

기사들은 AI의 초반 수를 모방할 수 있지만, 기판이 너무 많은 가능성으로 갈라져 암기하기 어려운 단계인 중반전에서는 자신의 판단이 주도권을 잡는다. 팬들은 기사들이 실수를 저지르고 역전을 노리며, 바둑판 위 한 수 한 수에 개성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한다. 신진서 9단의 플레이 스타일은 공격적이지만 기계처럼 침착한 특징이 있다. 김채영 9단은 바둑판 위 가장 혼란스러운 국면을 능숙하게 헤쳐 나간다.

바둑 팬이자 아마추어 기사인 김대희(27세) 씨는 “바둑에서는 모든 수가 선택 과정이고, 상대도 자신의 선택으로 대응한다”면서 “그 과정이 펼쳐지는 걸 보는 게 재미있다”고 전했다.

김씨 같은 팬들이 여전히 지켜보는 가운데 신 9단은 자신의 게임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는 “나는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하는 바둑을 둘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은퇴 후 이세돌 9단은 인간으로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직업을 찾았다. 그는 보드게임 제작, 강연, 대학 강의를 시작한 것. 그는 “즐기면서 잘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9단은 자신이 떠난 바둑에 대해 더 큰 희망을 느낀다. 그는 “모든 바둑 기사들의 꿈은 완벽한 명국을 두는 것이다”고 말했다. 완벽한 명국이란 실수 하나 없는 기술적 완성도의 대국, 실력이 엇비슷한 두 대국자가 극한까지 밀고 당기는 대국을 말한다. 이 9단은 웃으며 “(그런 꿈이) 마치 신기루 같지만, AI가 우리가 명국을 두는 데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신진서 9단은 자신이 그 일을 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그에게 AI는 스승이자 동반자이며 북극성(나침반)과 같다. “내가 최강의 인간 기사 중 한 명일지 몰라도 AI가 존재하는 한 그렇게 오만할 수는 없다”며 “AI는 내가 계속 발전해야 할 이유를 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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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02월 27일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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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일: 2026년 02월 28일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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