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저지르기 더없이 좋은 시대가 열렸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새로운 형태의 범죄를 낳고, 동시에 그에 맞서는 새로운 방법도 만들어낸다.

2012년 필자는 이상한 일을 겪었다. 어느 날 갑자기 아이폰이 꺼져서 다시 켜 보니 완전히 초기화돼 있었다. 마치 새 기기 같았다. 당시에는 iOS의 초창기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백업으로 아이폰을 복원하려고 노트북을 열었더니 노트북도 재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화면이 회색으로 변했다. 노트북이 원격으로 초기화되고 있었다. 놀라서 아이패드를 켜 보니 그것도 이미 초기화돼 있었다. 해킹이었다.

필자는 정신없이 모든 기기를 종료하고 집 안에서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장치의 플러그를 뽑았다. 공유기도 껐다. 그리고 옆집으로 가 이웃의 컴퓨터를 빌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확인했다.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해커들은 필자의 구글 계정까지 장악해 접속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필자의 트위터 계정도 해킹해 그 계정으로 온갖 혐오스러운 글을 신나게 올리고 있었다. 정말 끔찍했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당시는 지금처럼 개인정보를 빼내기 위한 피싱 문자메시지와 이메일이 끊임없이 쏟아지기 이전의 시대였다는 점이다. 필자의 계정을 탈취한 이 범죄자들은 비밀번호를 무작위로 대입해 보안을 뚫는 무차별 대입 공격을 사용한 것도 아니었고 고도의 기술을 동원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필자에 관해 공개된 정보와 가짜 신용카드 번호를 이용해 일명 ‘사회공학적 기법(사람을 속여 정보를 얻어내는 방식)’이란 걸 통해 아마존 계정에 침입했고, 거기서 필자가 등록해 놓은 실제 신용카드 번호의 마지막 네 자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이용해 애플 계정에도 들어갔다. 필자의 애플 계정은 지메일과 연결되어 있었고 지메일은 트위터와 연동되어 있었기 때문에 결국 그들은 필자의 모든 계정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몇 주, 몇 달에 걸쳐 해킹 사건을 추적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필자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여전히 새로운 현상이긴 했어도 그런 종류의 사건이 점점 더 흔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필자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적지 않았다. 범인은 청소년 몇 명이었고, 그들은 범죄의 천재도 아니었다. 당시 이미 기술은 일상화됐지만 그 위험성과 취약점은 충분히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파고들 ‘틈’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필자는 우연히도 모든 것을 그 틈에 걸쳐 두고 있었다. 오늘날 그 틈에는 암호화폐 지갑이나 가족의 목소리를 흉내 내는 딥페이크가 들어갈 수도 있다.

범죄는 진화한다.

물론 이익과 권력을 추구하는 범죄의 목표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취약점을 낳고, 그에 따라 범죄자가 적발이나 체포를 피할 새로운 방법이 탄생한다. 그런데 법은 필연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혁신이 아닌 판례에 의존하는 법은 본질적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체계이며 느리게 움직이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느린 숙고는 과거 우리가 민주사회를 지키고 서로로부터 서로를 보호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범죄의 진화 속도가 법을 앞지르도록 만든 바로 그 새로운 기술들은 동시에 법 집행 기관과 정부에도 활력을 불어넣었다. 범죄를 색출하고 증거를 수집하고 사람들을 감시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공한 것이다. 가령 수십 년 전 연쇄살인을 저지른 ‘골든스테이트 킬러’를 장기 미제 사건 수사관들이 추적해낸 방식을 생각해 보라. 수사관들은 DNA 샘플과 가계도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범인을 찾아내면서 DNA 기반 수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즉, 기술이 발전하면서 진화하는 범죄 수법만큼 그러한 범죄를 쫓는 방식 또한 진화해왔다. 기술은 때때로 범죄의 본질 자체에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진 행위들은 규제 대상이 되기 전까지는 합법과 불법 사이의 모호한 영역에 존재하게 된다. (미국의 이른바 ‘틱톡금지법’을 생각해 보면, 틱톡이 새로운 소유 구조를 발표하기 전까지 애플과 구글은 자사 플랫폼에서 틱톡을 계속 서비스하면서 법을 위반하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와 기성 자율주행 자동조종 장치와 같은 기술 덕분에 지금은 범죄를 저지르기에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시기다. 동시에 광범위한 감시 체계와 디지털 인프라를 활용해 범죄에 맞서 싸우기에도 그 어느 때보다 좋은 시기다. 때로는 우리가 기본적 시민권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을 대가로 치를 때도 있지만 말이다.

필자는 필자의 계정을 해킹한 청소년 해커들을 고소하지 않았다. 해킹 사건이 벌어지고 몇 달 뒤 애플은 로그인 시 두 단계로 본인을 확인하는 보안 절차인 이중 인증을 도입했는데, 그러한 결과가 일종의 성과처럼 느껴졌다. 이제는 누구도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다고 기대하지 않는 듯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세대의 아이들이 또 다른 신종 범죄를 고안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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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02월 26일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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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일: 2026년 02월 27일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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