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열 배터리 가동 개시…에너지 저장의 게임체인저 될까
론도 에너지가 가동을 시작한 세계 최대 규모의 열 배터리 재생에너지를 열 형태로 저장해 산업 공정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새로운 해법으로 주목받고 있다.
론도 에너지(Rondo Energy, 이하 ‘론도’)가 세계 최대 규모의 열 배터리를 가동했다고 밝혔다. 이 시스템은 전력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안정적으로 열을 공급할 수 있는 에너지 저장 장치이다.
론도는 “10월 중순 첫 상용 규모의 열 배터리 시스템이 본격 가동에 들어갔으며, 저장 용량은 100메가와트시(MWh)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 배터리는 독립형 태양광 발전소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아 작동하며, 앞으로 원유 회수의 효율을 높이는 ‘석유 회수 증진(enhanced oil recovery)’ 공정에 필요한 열을 제공하게 된다.
열 배터리는 제조업이나 시멘트·철강 같은 중공업처럼 탈탄소화가 어려운 산업 부문을 청정하게 전환할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론도의 발표는 열에너지 저장 기술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음을 입증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된다. 이제 이 발표가 갖는 의미와 석유·가스 산업과의 연관성,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열 배터리의 원리는 단순하다. 전력을 이용해 벽돌처럼 단단하고 값싼 재료를 고온으로 가열한 뒤, 그 열을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사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저장된 열은 산업 공정에 직접 활용하거나 전력으로 재생산할 수도 있다.
론도에 따르면 이번 시스템은 10주간의 시험 운전 기간 동안 효율성과 안정성 등 모든 주요 성능 지표를 충족했다. 배터리 내부 벽돌의 온도는 섭씨 1,000도를 넘으며, 시스템에 투입된 에너지의 97% 이상이 다시 열로 회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설비는 론도가 2023년에 가동한 2메가와트시(MWh) 규모의 파일럿 시스템을 한 단계 발전시킨 것으로, 회사가 앞으로 고객들에게 공급하려는 대량 생산형 상용 열 배터리의 첫 모델이다.
열 배터리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핵심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수요의 약 20%가 산업 공정에 필요한 열 생산에 쓰이고 있으며, 이 대부분은 여전히 화석연료 연소를 통해 충당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프로젝트의 성공은 기후 대응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번 사례에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 열 배터리가 석유 회수 증진 과정에 활용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고온의 증기를 지하 유전에 주입해 남은 원유를 뽑아내는 기술로, 결과적으로 화석연료 생산을 지원하는 셈이 된다.
기후 기술이 오히려 화석연료 채굴을 돕는 방식으로 실효성을 입증해야 하는 현실은 다소 모순적이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오히려 오염을 야기하는 산업의 수명을 늘려 탄소 감축 노력을 늦출 수 있다고 지적한다.
론도의 존 오도넬(John O’Donnell) 창립자 겸 최고혁신책임자(CIO)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우리는 지금의 산업 현실에 맞는 탈탄소화 방식을 택한 것”이라며 “석유·가스 기업이 열을 얻기 위해 천연가스를 계속 태우는 대신 태양광 전력을 이용하도록 돕는 편이 훨씬 낫다”고 반박했다. 이어 “저렴한 태양광, 비싼 천연가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정책 환경을 고려할 때 론도의 기술은 고객에게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상용 규모 시스템을 구축할 의지가 있는 고객이 직접 비용을 부담했다는 점이 론도의 기술력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론도는 이미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유럽에서 세 개의 상용 규모 열 배터리 건설을 진행 중이며, 오도넬은 “캘리포니아 프로젝트를 통해 쌓은 경험 덕분에 이후 설비들은 더 빠르고 저렴하게 가동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론도는 더 많은 열 배터리를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는 역량도 확보하고 있다. 현재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는 태국 공장은 최대 2.4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열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고 있다.
열 배터리 기술의 발전을 오랫동안 지켜본 기자로서 필자는 이번 프로젝트가 그간의 흐름 속에서도 분명한 도약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값싸고 내구성이 뛰어난 에너지 저장 기술이 아무리 주목받더라도, 실제로 대규모 시스템을 구축해 현장에서 검증하는 것만큼 확실한 진전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프로젝트가 석유 회수 증진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기후변화의 최악의 영향을 피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화석연료 연소를 중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유·가스 산업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염을 줄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주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오도넬은 “열 배터리는 지금 당장 적용할 수 있는 단순하면서도 실질적인 해법”이라며 “이것이야말로 현재 필요한 기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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