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AI 시대, 저작권 우려가 창의성 발목 잡는다

모든 창의적인 작업은 기존 아이디어를 새롭게 엮는 과정이다. 왜 굳이 AI를 활용한 작업에만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해야 할까?

지난가을 필자는 이사회 참석을 위해 방문한 암스테르담에서 여유 시간이 생겨 즉흥적으로 반 고흐 미술관을 찾았다. 본래 출장 중 짧게나마 생기는 자유 시간은 세계 곳곳의 예술을 만나볼 수 있는 뜻밖의 선물이다. 필자는 전시장을 거닐다가 1887년에 그려진 <기생(에이센 모작)(The Courtesan (after Eisen))> 앞에 멈춰 섰다. 이 작품은 일본 목판화 작가 케이사이 에이센(Keisai Eisen)의 작품을 모사하여 그린 것으로, 반 고흐는 당시 <파리 일뤼스트레(Paris Illustré)>라는 잡지를 통해 이 이미지를 처음 접했다. 그는 에이센의 구도를 그대로 차용한 뒤 개구리, 학, 대나무 등에 자신의 스타일대로 강렬한 테두리를 덧붙여 이를 재해석했다.

그림을 바라보며 필자는 문득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에 “케이사이 에이센 풍의 목판화를 반 고흐 스타일로 재해석해 줘”라는 프롬프트를 입력하면 이런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나아가 만약 반 고흐가 아직 살아있고 더욱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기 위해 생성형 AI 도구를 활용했다면 에이센이나 그의 유족이 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오늘날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불과 2년 전 미국 대법원은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이 사진작가 린 골드스미스(Lynn Goldsmith)가 촬영한 팝스타 프린스(Prince)의 사진을 활용해 제작한 실크스크린 연작이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해당 작품들이 원본에서 충분히 변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정 이용(fair use)’으로 볼 수 없다고 보았다. 공정 이용이란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일정 범위 내에서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얼마 후 필자는 보스턴 미술관에서 열린 살바도르 달리 전시를 관람했다. 필자는 달리를 늘 상상력이 넘치는 천재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성을 지닌 예술가로 여겨 왔다. 그런데 전시에는 피터르 브뤼헐(Pieter Bruegel)의 <일곱 가지 대죄(Seven Deadly Sins)> (1558년) 등 16세기 네덜란드 판화들이 함께 소개되었고 이는 달리의 <8 대죄 연작(8 Mortal Sins Suite)>(1966년)에 분명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였다. 두 작가의 작품은 스타일 면에서는 다르지만 그 계보는 명백했다. 실제로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였던 달리는 브뤼헐을 자신과 마찬가지로 기묘한 꿈의 논리를 표현한 예술가로 평가했다. 그 순간 필자는 달리를 완전히 독창적인 창작자로만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과거의 유산을 창의적으로 재해석한 예술가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브뤼헐은 달리가 자신의 작품을 ‘기괴하게’ 재구성한 것을 영광으로 여겼을까, 아니면 소송을 제기해야 했을까?

이후 밀라노에서 열린 피카소 전시를 찾았을 때 필자는 흥미로운 시각 자료 하나를 발견했다. 미술사학자 알프레드 바(Alfred Barr)가 현대 미술의 계보를 정리한 도식도였다. 이 자료는 큐비즘, 즉 입체파 같은 모더니즘 운동이 이전 세대의 예술에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흔히 피카소를 현대 미술의 독보적이고 혁신적인 인물로 기억하지만 이 도식은 그가 고야(Goya), 엘 그레코(El Greco), 세잔(Cézanne), 아프리카 조각가 등 수많은 예술가에게서 영향을 받았음을 명확히 드러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필자는 문득 생각했다. ‘이 모든 예술적 요소를 AI 모델에 입력했다면 큐비즘이라는 결과물이 탄생할 수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AI가 또 하나의 위대한 예술 혁신을 만들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세 도시에서 세 명의 대표적인 예술가를 만났던 이 일련의 경험은 필자가 이미 품고 있던 더 깊은 고민과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최근 필자는 스포티파이(Spotify)의 창립자인 다니엘 에크(Daniel Ek)와 음악 저작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에크는 현재의 저작권 체계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지적하며 음악의 편곡이나 가사가 대부분의 의약품 특허보다 더 오랜 기간 보호를 받는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 논의의 최전선에 있는 인물로, 생성형 AI가 이미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중 일부는 훌륭하고 상당수는 형편없다. 그러나 거의 모든 곡이 기존 음악의 구조와 패턴을 차용하고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이미 음악계에서는 이전 곡의 일부를 차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소송이 빈번하다. 그렇다면 기존 자료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AI 기반 창작물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법은 이 새로운 형태의 예술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질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생성형 AI의 결과물은 누구의 소유가 되어야 할까? 프롬프트를 입력한 사용자일까, 모델을 개발한 개발자일까, 아니면 학습에 활용된 예술을 만든 창작자일까? 지금까지 예술의 가치를 정해왔던 비평가, 큐레이터, 감식가들은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아니면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예술 권력이 등장하게 될까? 원래 예술이 타인의 작업을 차용하고 재해석하는 과정을 통해 진화해 온 것이라면 생성형 AI의 재조합 역시 그렇게 낯설지만은 않은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소송이 빈번한 오늘날의 문화 속에서 저작권법은 과연 지금의 형태를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미국 저작권청(US Copyright Office)은 이처럼 민감한 소유권 문제에 대한 논의를 이미 시작했으며 인간의 창작 기여도가 충분히 입증되는 경우에만 생성형 AI의 결과물도 저작권 보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기술의 진화 속도는 이미 법과 제도를 한참 앞서가고 있다.

생성형 AI에 대한 반응은 업계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영화계는 비교적 유연한 편이다. 흔히 ‘아카데미’로 불리는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s)는 최근 영화 제작자가 생성형 AI를 활용하더라도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상) 후보 자격이 박탈되지 않으며 해당 기술의 사용 여부를 공개할 의무도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오스카를 수상한 <더 브루탈리스트(The Brutalist)>를 비롯해 여러 화제작이 AI를 제작 과정에 적극 활용했다.

반면 음악계는 여전히 독창성의 기준을 둘러싸고 논쟁 중이다. 최근 영국 싱어송라이터 에드 시런(Ed Sheeran)을 상대로 제기된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다. 2016년 그는 마빈 게이(Marvin Gaye)의 히트곡 ‘렛츠 겟 잇 온(Let’s Get It On)’의 공동 작곡가인 에드 타운센드(Ed Townsend)의 유족으로부터 표절 혐의로 피소되었다. 그들은 시런의 곡 ‘띵킹 아웃 라우드(Thinking Out Loud)’가 해당 곡의 멜로디, 화성, 리듬을 모방했다고 주장했다. 재판은 2023년에 열렸으며 시런은 법정에서 기타를 들고 직접 논란이 된 코드 진행(I–iii–IV–V)을 연주했다. 그리고 그 동일한 코드 기반 위에 만들어진 다양한 곡들을 메들리로 엮어 연주했다.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 네 개의 코드는 작곡의 기본 단위라는 것이다. 배심원단은 짧은 심의 끝에 시런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재판 후 시런은 이렇게 말했다. “이 코드들은 작곡의 기본 요소이다. 코드 자체나 그 진행 방식은 그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마치 파란색이 누구의 소유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확한 비유다. 기타든, 붓이든, 생성형 알고리즘이든, 창작은 언제나 과거의 것을 바탕으로 새롭게 조합하며 이루어져 왔다.

필자는 이 글이 위대한 예술 작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챗GPT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미술관을 돌며 스마트폰에 기록해 둔 메모, 동료들과의 대화 내용을 정리한 녹취록, 그리고 이전에 썼던 글들을 AI 모델에 입력해 필자의 문체를 학습시켰다. 이후 생성형 AI를 활용해 초안을 작성했고 손으로 수차례 수정한 뒤 편집자의 도움을 받아 몇 주에 걸쳐 다듬었다.

아직 이 글 안에는 AI가 생성한 문장이 그대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많이 수정한 탓에 필자도 어느 부분이 AI의 결과물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아마 독자나 AI 감지 프로그램도 찾아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한다(실제로 영어 문법 교정기인 그래머리(Grammarly)는 이 글에 포함된 AI가 생성한 문장 비율이 ‘0%’라고 분석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여전히 생성형 AI의 사용에 불편함을 느낀다. AI를 활용하는 것을 부정행위처럼 여기거나 그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미 그 단계를 지났다. 필자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학생들 대부분이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본다. 학술 연구 역시 대부분 문헌 검토와 요약 작업을 AI 모델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주요 매체에 실리는 수많은 글 역시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생성형 도구의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을 것이다.

왜 그럴까? 우리는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효율을 높이는 도구를 누구보다 먼저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생성형 AI는 워드프로세서, 검색 엔진, 그래머리 같은 편집 도구의 연장선에 있다. 이제 질문은 “누가 AI를 쓰고 있는가?”가 아니라 “왜 아직도 쓰지 않는가?”이다.

물론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애틀랜틱(Atlantic)>의 CEO 니컬러스 톰슨(Nicholas Thompson)은 AI의 도움을 받은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창작자와 비창작자의 경계가 흐려지기 때문이라는 논리다. 충분히 타당한 지적이다. AI는 방대한 기존 자료를 재조합해 결과물을 만들고 그 결과는 때때로 모방적이거나 기계적이라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필자는 창의성의 역사를 돌아볼 때마다 중요한 사실 하나를 떠올린다. 반 고흐는 에이센의 작품을 새롭게 그려냈고, 달리는 브뤼헐의 아이디어를 계승했으며, 시런은 음악의 보편적 구조를 옹호했다. 이 모든 사례는 창작의 핵심이 결국 기존의 것들을 새롭게 엮어내는 일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Schumpeter) 역시 “혁신이란 새로운 발명이 아니라 기존 아이디어의 새로운 결합”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만약 모든 창작물의 영향 관계를 일일이 추적해 소유권을 정하려 한다면 창의성은 오히려 위축될 것이다.

필자는 처음부터 이 도구들이 지닌 변화의 가능성을 믿어왔다. 하지만 이 기술이 이렇게 빠르게 확산되어 산업 전반은 물론 필자의 일상 업무에까지 깊이 스며들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저작권 제도는 완전한 독창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미 있는 개입’이다. 이 기준은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프롬프트를 고민하고, 입력 데이터를 선별하며, 결과물을 다듬는 모든 활동은 분명한 창작 행위다. 매체는 달라졌지만 기존의 재료를 이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는 인간의 본능은 변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쓴 니틴 노리아(Nitin Nohria)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조지 F. 베이커 주니어(George F. Baker Jr.) 교수이자 전 학장이다. 그는 오픈AI를 포함한 여러 주요 AI 기업에 초기 투자를 한 스라이브 캐피털(Thrive Capital)의 의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편집 지침에 따르면 생성형 AI는 해당 도구의 기능을 보여주는 목적의 기사에 한해 초안 작성에 사용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도 그 사용 사실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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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24일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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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일: 2025년 06월 24일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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