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된 감시, 기술은 어떻게 폭력의 도구가 되었나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이 폭력의 수단으로 악용되면서 이를 막기 위한 사회적 대응이 뒤따르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여전히 제도적 한계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메사추세츠주에 사는 조이아(Gioia)는 첫 아이를 낳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 안 곳곳에 베이비 모니터가 설치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남편에게 이유를 묻자, 그는 “내가 직장에 있는 동안 둘을 지켜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조이아가 모니터를 꺼두면 그는 곧바로 화를 냈다.

셋째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무렵 두 사람은 이혼했지만 전남편은 여전히 그녀를 감시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 크리스마스에는 막내에게 스마트워치를 선물했다. 조이아는 이 시계를 기술에 밝은 친구에게 보여줬고, 친구는 위치 추적 기능이 켜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제의 기능은 시계의 ‘소유자’만이 끌 수 있었고 소유자는 다름 아닌 전남편이었다.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요청한 그녀는 “딸한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다”며 “아이는 선물을 받고 무척 기뻐했지만 그게 사실은 우리 위치를 추적하려는 장치라는 건 알 수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결국 시계를 빼앗지 않기로 했다. 다만 외출할 때는 잃어버릴 수 있으니 집에 두고 나가자고 설득해 딸이 시계를 착용하지 않도록 유도했다.

조이아는 이 사건을 포함해 전남편이 각종 기술을 이용해 자신을 감시하고 스토킹했던 수많은 사례를 가정법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양육권을 온전히 확보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법원이 기술을 통한 통제와 감시를 폭력의 연장선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이아는 당시 느꼈던 깊은 좌절감을 토로했다. 그녀는 “차라리 그 사람이 내 팔을 부러뜨리고 얼굴을 때렸다면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며 “그러면 사람들이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반응은 ‘기술 기반 학대(Tech-Facilitated Abuse)’를 겪는 이들 사이에서 흔하게 나타난다. ‘가정폭력 종식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National Network to End Domestic Violence)’는 기술 기반 학대를 ‘디지털 도구, 온라인 플랫폼, 전자 기기 등을 이용해 타인을 통제하거나 괴롭히고, 감시하거나 해를 끼치는 행위’로 정의한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쉽게 포착되지 않는 방식의 학대에는 상대방의 기기에서 개인정보를 몰래 빼내는 스파이웨어(spyware)나 몰래카메라를 통한 감시, 상대방의 사적인 이미지를 동의 없이 소셜미디어에 게시하는 행위, 온라인 계좌에 무단으로 접속해 예금을 인출하는 행위, 그리고 조이아의 사례처럼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위치 추적 등이 포함된다.

기술이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오늘날, 기술 기반 학대는 대부분의 친밀한 관계 내 폭력 사례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전문가들조차 이 복잡한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2024년 10월, 기술 기반 학대 피해자와의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진행된 호주의 한 연구에 따르면, 경찰이나 피해자 지원 담당자처럼 일선에서 이 문제를 직접 다루는 이들 사이에 기술 기반 학대에 대한 이해의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경찰이 관련 신고를 반복적으로 묵살하거나, 이러한 사례를 친밀한 관계 내 폭력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또한 피해자의 전자 기기를 점검하고 분석할 수 있는 컴퓨터 전문가 등 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예산 역시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이 함께 지적됐다.

기술 기반 학대에 대한 이해 부족은 특히나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그 양상이 워낙 다양하고 빠르게 진화하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끊임없는 경계심이 필수적이다. 인터넷과 연결된 주택과 차량이 보편화되고 위치 추적이 일상화되면서, 기술을 이용한 감시와 괴롭힘의 방식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도 필자는 소름 끼치는 사례들을 여럿 접했다. 한 가해자는 원격으로 스마트홈의 출입문을 잠그고 일부러 난방을 지나치게 높여 피해자를 괴롭혔다. 또 다른 여성은 가해자의 통제를 피해 먼 지역으로 도피했지만, 넷플릭스에 로그인하자 계정 사용자 이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욕설과 함께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섬뜩한 메시지가 떠 있는 일을 겪었다.

2022년 일부 영어권 국가에서 실시한 기술 기반 학대 관련 연구들을 분석한 결과,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지는 이 학대 행위들이 1980년대 미국 미네소타주 덜루스에서 개발된 ‘권력과 통제의 수레바퀴(Power and Control Wheel)’ 모델과 정확하게 맞물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모델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경제적·정서적·언어적으로 위협하거나 자녀를 이용해 통제하는 등 수많은 폭력 양상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도구다.

해당 연구를 이끈 셰필드대학교의 선임 강사 미카엘라 로저스(Michaela Rogers)는 “기술 기반 학대 피해자들이 겪는 후유증으로 피해망상, 불안, 우울,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자존감 저하, 자해 충동 등을 목격했다”며 “이러한 학대는 피해자의 삶 전반에 깊이 파고들어 크나큰 영향을 남긴다”고 설명했다.

기술 기반 학대는 개인이 감당하기엔 버겁고 대응 또한 쉽지 않다. 피해자를 돕는 지원 단체와 활동가들이 손을 내밀고 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기술적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다. 게다가 기술 기업이 새로운 제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을 권한도 없다. 일부는 기업과 협력해 보호장치를 개발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지만, 기업이 가해자에게 실질적 책임을 묻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적 제도 마련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더디지만, 지난 몇 년간 각 영역에서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스마트자동차 기술이나 애플 에어태그(Apple AirTags) 같은 위치 추적 장치를 스토킹이나 괴롭힘에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애플, 메타를 비롯한 일부 기술 기업은 제품의 안전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피해자 지원 전문가를 영입하고 있으며, 피해자와 생존자 지원 단체들 역시 보다 전문적인 기술 교육을 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기술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은 이런 상황을 ‘두더지 잡기 게임’에 비유했다. 스마트폰 위치 공유의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겨우 확산되면 곧이어 스마트자동차가 등장하고, 에어태그를 이용한 스토킹이 금지되면 법망을 피해 더 정교하게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새로운 장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기술 환경 속에서, 뉴욕시 코넬테크(Cornell Tech)의 ‘기술 학대 종식을 위한 클리닉(Clinic to End Tech Abuse, CETA)’과 같은 기술 기반 학대 전문 기관들은 보다 지속적인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그동안 피해자 지원 단체들 사이에서 부차적인 문제로 여겨졌던 기술 기반 학대는 이제야 비로소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심각한 ‘친밀한 관계 내 폭력’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술 지원 자원봉사

7년 전 CETA의 루스벨트 아일랜드 캠퍼스(Roosevelt Island campus)의 작고 하얀 방에서 두 명의 컴퓨터 과학자가 첫 번째 의뢰인과 마주 앉았다. 그 의뢰인은 가해자가 자신의 아이폰에 저장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며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 도저히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두 과학자 중 한 명인 토머스 리스텐파트(Thomas Ristenpart)는 “약 한 시간 반 정도 함께 점검한 끝에 iCloud 가족 공유 설정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설명했다.

당시만 해도 CETA는 미국 내에서 기술 기반 학대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단 두 곳의 클리닉 중 하나였으며, 지금까지도 이 분야의 최전선에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CETA는 마치 두 개의 원이 겹치는 벤 다이어그램의 작은 교집합을 연상시킨다. 한쪽은 컴퓨터 과학자, 다른 한쪽은 가정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사회복지 전문가를 의미한다. 현실에서는 이 두 집단이 거의 교차하지 않기 때문에, CETA처럼 기술과 사회복지를 연결하는 기관은 극히 드물다.

기술 전문가들은 대개 사회복지 비영리단체보다는 수익성 높은 기업이나 연구기관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두 명의 학자가 기술 기반 학대를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이를 평생의 연구 과제로 삼았다는 사실은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그들의 노력은 실제 성과로 이어졌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리스텐파트는 CETA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친밀한 관계 내 폭력에서 활용되는 인터넷 스파이웨어 생태계를 분석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 설립자인 니콜라 델(Nicola Dell)과 처음에는 휴대폰에 침투한 감시 소프트웨어를 탐지하는 도구를 개발해 피해자들을 돕고자 했다. 하지만 곧 그 도구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칫 잘못 사용할 경우, 감시가 탐지됐고 이를 차단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가해자가 알아차리게 되면 오히려 피해자가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close-up of a hand holding an Apple AirTag
2023년 12월 오하이오주는 에어태그를 이용한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플로리다주 역시 추적 장치를 범죄에 이용하거나 범죄를 돕는 데 사용한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검토 중이다.
ONUR BINAY/UNSPLASH

이에 따라 리스텐파트와 델은 기술보다는 강압적 통제(coercive control) 그 자체에 주목하게 됐다. 이들은 피해자들과 일상적으로 접촉하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약 14차례의 그룹 인터뷰를 진행했고, 뉴욕의 가정법률지원센터(Family Justice Centers), 반폭력 프로젝트(Anti-Violence Project) 등 단체들과 협력해 의뢰인을 소개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CETA는 온라인으로 전환됐고, 현재까지도 비대면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델은 “지금의 CETA 서비스는 원격 기술 지원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빅테크 종사자들을 포함한 소수의 자원봉사자들이 의뢰인의 기본 정보를 전달받은 뒤, 전자 기기에서 원치 않는 위치 공유 설정을 해제하는 등의 문제 해결 방법을 단계별로 안내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원격 지원이 가능했던 이유는 대부분의 가해자가 사용하는 공격 방식이 기기를 분해해야만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고도화되어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델은 “대체로 사람들은 기술을 설계된 그대로의 방식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유모차에 에어태그를 몰래 넣어 피해자의 동선을 추적하거나, 공동 온라인 계좌의 관리자 권한을 이용해 상대방의 금융 정보를 들여다보는 식이다.

CETA가 기술 중심의 피해자 지원 단체로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기술 기반 학대는 반가정폭력 단체들이 수십 년 전부터 맞서 싸워온 문제다. 신디 사우스워스(Cindy Southworth)는 1990년대 가정폭력 대응 활동을 시작했을 당시, 가해자들이 차량의 주행 거리계를 이용해 피해자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사례들을 목격했다. 예컨대 마트에 간다고 말한 운전자가 실제로는 멀리 떨어진 곳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이 누적된 주행 거리로 드러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그녀가 펜실베이니아 가정폭력 대응 연합(Pennsylvania Coalition Against Domestic Violence)에 합류했을 무렵, 피해자 지원 단체들은 발신자 표시 기능에 주목하고 있었다. 사우스워스는 “발신자 표시 기능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기능이었지만, 그 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될 경우 되레 위험 요소가 될 여지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기술 발전과 함께 가해자들이 이를 악용하는 방식 역시 날로 교묘해졌다. 사우스워스는 피해자 지원 커뮤니티가 기술에 취약하다는 점을 인식한 뒤, 2000년 가정폭력 종식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 산하에 ‘안전망 프로젝트(Safety Net Project)’를 설립했다. 이 프로젝트는 피해자 보호를 위한 기술 활용법은 물론, 가해자가 이를 악용했을 경우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돕는 종합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현재 프로젝트는 웹사이트를 통해 다양한 자료를 공유하고 있으며, 강력한 비밀번호 설정이나 보안 질문을 작성하는 요령 등 구체적인 전략도 마련돼 있다. 프로젝트 책임자인 오더스 가넷(Audace Garnett)은 보안 질문 작성 시 주의할 점을 설명하며 “연인 사이였던 사람이라면 상대방 어머니의 결혼 전 성씨 같은 정보쯤은 알고 있을 수 있다”며 “기본적인 보안 수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빅테크의 안전 장치

사우스워스의 활동은 이후 기술 기업에 대한 자문으로까지 이어졌다.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의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기술적 대응 방안을 빅테크와 함께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2020년에는 페이스북(현 메타)에 여성 안전 총괄 책임자로 합류했다. 사우스워스는 “페이스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사적인 이미지 악용’에 대한 회사의 대응 방식 때문이었다”며 “2012년 당시 페이스북은 최초로 ‘성 착취 범죄’에 대한 정책을 마련한 기업이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그녀는 ‘리액티브 해싱(reactive hashing)’ 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는 이미지에 ‘디지털 지문’을 삽입해, 한 번만 신고하면 동일 이미지가 온라인상에서 반복적으로 유통되는 것을 차단하는 기술이다.

최근에는 ‘사이버플래싱(cyberflashing)’도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 노골적인 사진을 일방적으로 전송하는 행위로, 메타는 이를 막기 위해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하지 않은 계정이 사진, 영상, 음성 메시지를 보내지 못하도록 설정을 변경했다. 그러나 메타의 학대 방지 정책은 여전히 사후 대응 위주라는 지적이 많다.

메타는 자사 플랫폼에 올라온 괴롭힘이나 폭력을 조장하는 위협적 게시물은 정책에 따라 삭제된다고 주장했지만, 올해 초 표현 관련 정책을 더 완화하며 모순된 행보를 보였다. <CNN> 보도에 따르면 이제는 여성을 ‘가정용 물건’이라고 표현하거나, 과거에는 금지됐던 트랜스젠더 및 동성애 혐오 발언 게시가 가능해졌다.

문제는 동일한 기술이 선의와 악의를 가리지 않고 양쪽 모두에 활용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위치 추적 기능은 어떤 이에게는 가해자의 스토킹 도구가 되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가해자의 동선을 파악할 수 있는 생존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술 기업은 이러한 기술 기반 학대를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질문에 연구자들과 법률 전문가들은 고개를 저었다. 한 전문가는 가해자들이 자녀 보호 기능을 성인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를 언급하며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도입된 기능을 완전히 없앨 수도 없고, 소비자들이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기업이 전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안전망 프로젝트의 가넷은 “기술은 처음부터 안전을 고려해 설계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미 광범위하게 보급된 제품의 경우 뒤늦게 이를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인정했다.

일부 컴퓨터 과학자들은 비교적 효과적인 보안 체계를 갖춘 사례로 애플을 꼽았다. 애플의 폐쇄형 생태계는 외부 앱의 침입을 차단하고, 사용자가 추적당하고 있을 경우 이를 경고하는 기능이 탑재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동시에 “그 어떤 조치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구글, 메타, 에어비앤비, 애플, 아마존 등 주요 기술 기업들은 지난 10년간 기술 기반 학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안전 자문 위원회를 조직하고 대응책을 마련해 왔다. 우버에서 여성 및 개인 안전 분야를 총괄하는 리즈 댕크(Liz Dank)는 “우버의 자문단은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며 맞춤형 안전 기능 개발에 기여해왔다”고 밝혔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 중 하나가 ‘PIN 인증’ 기능이다. 승객은 탑승 전 앱에서 생성된 고유 번호를 기사에게 제시해야 하며, 이를 통해 지정된 차량이 맞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애플은 총 140쪽 분량의 ‘개인 안전 사용자 가이드(Personal Safety User Guide)’를 발간해, 위험한 관계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응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이 가이드에는 추적 차단 방법, 증거 수집 요령, 원치 않는 추적 알림 설정법 등 각종 실용적인 정보가 담겨 있으며 관련 페이지로 연결되는 링크도 함께 안내되어 있다.

그러나 창의적인 가해자들은 이러한 예방책마저도 집요하게 우회한다. 애플은 에어태그 출시 이후 비동의 추적 사례가 잇따르자, 추적 대상자에게 알림을 보내고 기기에서 소리가 나도록 하는 보안 기능을 도입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Elizabeth, 신변 보호를 위해 성은 공개하지 않았다)는 최근 자신의 차량 바퀴 안쪽 틈에서 전남편이 숨겨놓은 에어태그를 발견했다. 기기는 자석과 테이프로 감싸져 있었는데, 엘리자베스는 “그가 테이프를 사용한 이유는 보안 기능에서 나는 소리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전했다.

뒤쫓기에 급급한 법적 제도

기술 기업들이 기술 기반 학대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역할은 결국 법 집행 기관이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의 대응은 모두 제각각이다. 강압적 통제 분야 전문가이자 심리학자인 리사 폰테스(Lisa Fontes)는 원치 않는 사적인 이미지가 유포된 피해 사례와 관련해 “경찰이 피해자에게 ‘그러게 왜 그런 사진을 줬느냐’고 말하는 것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가 설치한 보모 카메라(nanny cam)를 피해자가 들고 경찰서를 찾아갔을 때도 ‘그 사람이 이 장비를 샀다는 증거도, 실제로 감시했다는 증거도 없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제도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설립된 뉴욕시 퀸스 가정법률지원센터는 성별 기반 폭력과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해 법률·심리·수사 등 다양한 지원을 통합적으로 제공한다. 실제로 이 센터의 미로 같은 복도를 따라가다 보면 변호사, 사회복지사, 사건 담당자들이 뒤섞여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피해자가 복잡한 절차를 혼자 감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도된 설계라고 할 수 있다. 필자가 이 센터를 방문했을 당시에도 수잔 제이컵(Susan Jacob) 총괄이사의 안내로 그런 장면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고, 센터를 나설 무렵에는 수갑을 찬 한 남성이 경찰에 호송되는 모습을 마주치기도 했다.

현재 CETA는 이 센터로 서비스를 이전 중이며, 향후 뉴욕시 내 다른 네 개의 자치구에 있는 센터들로도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이다. 기술 클리닉이 이처럼 센터 내부에 함께 입주하게 되면, 기술 전문가와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이 같은 공간에서 긴밀하게 협업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소셜미디어 게시물이나 발신자 위조 전화를 활용한 익명성 기반의 괴롭힘은 가해자의 신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기술 전문가의 분석이 뒷받침되면 수색 영장이나 접근 금지 명령을 청구하는 데 필요한 실질적인 증거를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기술 기반 학대 의혹에 대한 법 집행 기관의 대응은 제각각이다. 경찰이 피해자에게 ‘그러게 사진을 왜 줬느냐’고 말하는 걸 들은 적도 있다.” 

강압적 통제 전문가 및 심리학자 리사 폰테스

기술과 관련된 사건을 자주 다뤄온 변호사라 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현재 대부분의 미국 주에서는 원격 또는 은밀한 추적 행위, 동의 없이 사적인 이미지를 유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으며, 사생활 침해·컴퓨터 범죄·스토킹 관련 법률을 활용해 기술 기반 학대의 일부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2023년 12월 오하이오주는 에어태그를 이용한 스토킹 행위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플로리다주 역시 추적 장치를 범죄에 이용하거나 범죄를 돕는 데 사용한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진화하는 기술에 대응하려면 더욱 정교하고 구체적인 입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퀸스 가정법률지원센터의 가족법률 프로젝트 부국장 린지 송(Lindsey Song)은 “기술이 먼저 등장하면 사람들이 사용하기 시작하고, 곧이어 가해자들이 악용하는 법을 알아낸다”며 “법과 정책은 늘 그 뒤를 허겁지겁 따라간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캘리포니아주는 스마트 차량을 이용한 괴롭힘 문제에 있어 가장 선도적인 입법을 추진해 왔다. 2024년 9월 서명된 상원 법안 1394호는 커넥티드 카(connected vehicle)에 누군가가 원격으로 접근하면, 사용자에게 이를 알리고 접근을 차단할 수 있는 기능을 반드시 제공하도록 의무화했다. 법안을 공동 발의한 아킬라 웨버 피어슨(Akilah Weber Pierson) 상원의원은 “이 문제가 얼마나 흔한 일인지 설명하자 많은 의원이 충격을 받았다”며 “편의를 위해 설계된 기술이 피해자를 추적하고 통제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자, 법안에 대한 지지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연방 차원에서도 일부 진전이 있었다. 2022년 제정된 ‘안전한 통신법(Safe Connections Act)’은 이동통신사에 가정폭력 피해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가해자의 요금제에서 독립할 수 있도록 조치할 의무를 부과했다. 2024년부터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이 법에 스마트 차량 기반 학대를 어떻게 포함시킬 수 있을지 검토 중이다. 또 올해 5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동의 없이 성적 이미지를 온라인에 게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 외의 분야에서는 실질적인 진전이 미미한 상황이다. ‘가정폭력·데이트폭력·성폭력·스토킹 피해자를 위한 기술 안전법(Tech Safety for Victims of Domestic Violence, Dating Violence, Sexual Assault, and Stalking Act)’은 미국 법무부 산하 여성폭력방지사무소(Office on Violence Against Women)에서 기술 기반 학대 클리닉을 최대 15개소 설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2023년 11월 하원에 발의된 이후 현재까지 아무런 진척 없이 계류 중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닌 ‘학대’

입법이 더디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술 기반 학대 피해자를 보호하는 일은 여전히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의 손에 달려 있다. 위스콘신대학교(University of Wisconsin)의 컴퓨터공학과 라훌 채터지(Rahul Chatterjee) 조교수는 보다 실질적인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는 대학원 시절 CETA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1년 ‘매디슨 기술 클리닉(Madison Tech Clinic)’을 설립했다. 현재는 숨겨진 카메라나 감시 장비를 탐지할 수 있는 물리적 장치를 개발 중이다. 라즈베리 파이(Raspberry Pi)나 ESP32 같은 저렴한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설계해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채터지는 온라인에서 ‘기술 기반 학대 방지용’이라고 광고하는 제품들을 수도 없이 접해왔다. 예를 들어 고작 20달러에 판매되는 무선 주파수 탐지기나,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카메라를 감지할 수 있다고 홍보하는 적색광 장치 등이다. 그러나 그는 “전부 엉터리였다”며 “실험실에서 직접 테스트해봤지만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학술 연구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이 같은 기술 클리닉들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다행히 2024년 CETA의 공동 설립자 델은 맥아더 재단(MacArthur Foundation)으로부터 80만 달러의 지원을 받아, 이 자금 일부를 새로운 CETA형 클리닉 설립에 활용할 계획이다. 퀸스에서 기술 클리닉을 운영 중인 비영리단체 ‘가족을 위한 안식처(Sanctuary for Families)’ 소속 변호사 제니퍼 프리드먼(Jennifer Friedman)은 “첫해 운영을 위해 CETA로부터 시드 펀딩을 받았지만 현재는 프로그램 유지를 위한 후속 재정 확보에 힘쓰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클리닉들은 기술이 악용된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경각심을 일깨우고 있지만, 이번 취재가 전하려는 핵심은 ‘기술 자체가 위험하다’는 경고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해를 끼치려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새로운 수단을 찾아내 이를 악용한다는 점이다. 

안전망 프로젝트 책임자 가넷은 “기술 기반 학대는 기술이 아닌 학대의 문제”라며 “기술이 있든 없든 피해는 여전히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별 기반 폭력과 친밀한 관계 내 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세심한 입법,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된 반폭력 프로그램, 그리고 CETA와 같은 클리닉이 지속될 수 있도록 돕는 학술 연구 등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 전까지 조이아와 같은 피해자들은 ‘임시 처방’에 의존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그녀는 전남편이 추적 장치를 숨겨둔 장비를 선물했을 가능성에 대비해, 아이들에게는 집에서만 사용하는 스마트폰과 스포츠 장비를 별도로 마련해 주었다. 그녀는 “추가 비용이 들더라도 집 안에서만 쓸 물건을 따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최근 휴대폰을 새로 구입하면서 번호도 바꾼 그녀는 “이런 일을 겪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믿어줘야 한다”며 “분명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고, 그것도 아주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덧붙였다.

이 글을 쓴 제시카 클라인(Jessica Klein)은 필라델피아를 기반으로 친밀한 관계 내 폭력, 암호화폐 등 다양한 주제를 취재하는 프리랜서 기자다.

The post 일상이 된 감시, 기술은 어떻게 폭력의 도구가 되었나 appeared first on MIT 테크놀로지 리뷰 | MIT Technology Review Korea.


발행일: 2025년 06월 23일 21:00
원본 URL: https://www.technologyreview.kr/%ec%9d%bc%ec%83%81%ec%9d%b4-%eb%90%9c-%ea%b0%90%ec%8b%9c-%ea%b8%b0%ec%88%a0%ec%9d%80-%ec%96%b4%eb%96%bb%ea%b2%8c-%ed%8f%ad%eb%a0%a5%ec%9d%98-%eb%8f%84%ea%b5%ac%ea%b0%80-%eb%90%98%ec%97%88%eb%82%98/
수집일: 2025년 06월 23일 21:01
출처: https://www.technologyreview.kr/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