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강화되고 있다
탄소 배출의 주범인 국가와 기업들에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을 어떤 식으로 물을 수 있을까?
미국과 유럽연합 국가들은 이른바 ‘기후 범죄’를 저지르며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엄청난 석유와 가스를 태우면서 ‘탄소 시한폭탄’을 심어왔고, 이 폭탄은 지구에서 가장 가난하고 더운 지역에서 먼저 폭발할 것이다.
한편 솔로몬 제도와 차드처럼 해수면이 낮거나 혹서에 시달리는 지역들은 강대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지만, 위도와 역사적 조건 탓에 지구온난화로 인한 심각한 문제, 즉 점점 강력해지고 있는 사이클론, 폭염, 기근, 홍수 등에 가장 취약하다.
도덕적으로 볼 때 이러한 혼란을 초래한 국가나 기업이 기후 문제로 인해 파괴될 주택과 생명 단축,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질 해안선 등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는 주장은 반박의 여지가 없다. 한 추산에 따르면 주요 국가가 전 세계에 배상해야 할 기후 부채는 200조 달러에 육박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법적으로는 이를 입증하기가 훨씬 어려웠다. 관할권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초기 기후 과학으로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분자가 바다와 시간을 가로질러 어디서 왔는지, 그 기원을 추적할 수 없었다. 막대한 자금력과 최고 수준의 법률팀을 보유한 기업들은 이러한 허점을 유리하게 활용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나 북반구의 저위도에 위치한 개발도상국을 통칭하는 용어)에서 기후 관련 소송이 늘어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영향에 가장 많이 노출된 각국의 정부, 비영리단체, 시민들은 새로운 법정에서 새로운 법적 논리를 계속 시험하고 있으며, 일부 법원은 인권 문제로서 국가와 산업에 책임을 묻는 데 점점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또한 특정 기후 재난의 책임이 누구에게, 어느 정도 있는지를 가려내는 연구도 점점 정교해지고 있다.
사실 아직까지 어떤 법원도 기후 문제를 초래한 당사자에게 기후 관련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적은 없다. 우선 국가의 경우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제기된 소송에 대해 ‘국가면제’가 적용되므로 소송이 성립되기 어렵다. 따라서 대부분의 소송은 탄소 배출의 주범인 화석연료 생산 기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꽤 강력한 방어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 기고한 글에서 컬럼비아 대학교 로스쿨의 마이클 제러드(Michael Gerrard) 교수와 제시카 웬츠(Jessica Wentz) 연구원이 언급했듯이, 석유 및 가스 기업은 전 세계 화석연료를 채굴, 정제, 판매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탄소 배출은 해당 연료를 태우는 차량, 발전소, 공장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기업은 그저 연료를 땅에서 캐낼 뿐이며 누군가 그 연료를 사용하는 것까지는 책임질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기상이변의 피해자들은 점점 더 설득력을 갖춘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새로운 법적 논리와 접근 방식 등을 시도하고 있다. 일례로 최근 필리핀에서는 400여 명의 사망자와 80만 명에 달하는 이재민을 낳은 2021년의 초강력 태풍 ‘오데트’가 발생하는 데 일조했다며 태풍 피해 생존자들이 세계적 석유 기업 셸(Shell)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오데트에 동반된 폭우와 같은 극단적 폭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두 배로 높아졌다는 원인분석 연구 결과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특정 기업의 화석연료와 특정 재난의 연관성을 통해 기업의 책임을 입증하기는 점점 더 수월해지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9월 <네이처>에 발표된 한 연구에서는 21세기에 연쇄적으로 발생한 폭염에 특정 기업들이 얼마나 일조했는지를 산정해내기도 했다.
최근의 여러 판결을 보면 이러한 소송의 승산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유럽인권재판소에 제기된 몇몇 기후 관련 사건에서 나온 결정은 국가가 기후변화의 영향에서 국민을 보호할 법적 의무가 있음을 인정했다. 또한 독일의 한 법원은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아 자신의 재산을 파괴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독일 전력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페루 농부의 사건은 기각했지만, 탄소를 배출하는 ‘오염자(polluter)’에게는 해당 배출과 연관된 기후 피해에 대해 원칙적으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원칙을 시험할 수 있는 소송도 이미 등장했다. 2022년 대규모 홍수로 토지가 침수된 파키스탄 농민 수십 명이 독일의 주요 전력 기업과 시멘트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설령 소송이 실패하더라도 과학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탄소를 많이 배출해온 주요 국가와 기업들은 기후변화로 인해 더 빈번해지고 있는 기후 재난에 대해 그만큼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부유한 국가들은 기후변화의 위협이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에서도 대기 오염을 유발하는 사업 관행을 계속 장려해왔다. 그리고 석유 및 가스 기업은 화석연료에 중독된 세계에 연료를 공급하는 핵심 축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기업들은 자사의 사업이 막대한 사회적, 환경적, 인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피해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거나 사업 방식을 개선하도록 강제하는 규제 도입을 적극 저지해왔다.
탄소 배출의 주범인 국가와 기업들은 탄소 배출과 기후변화의 위험을 알면서도 행동을 바꾸지 않았다. 법치가 존중되는 사회라면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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