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통치약인가 위험한 실험인가…펩타이드 열풍의 두 얼굴
펩타이드는 체중 감량과 노화 방지 등을 내세우며 미국 사회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상당수 제품은 효능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규제 사각지대 속에서 커지는 ‘만병통치약’ 신화가 새로운 건강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체중을 감량하고 싶은가? 근육질 몸매를 만들고 싶은가? 정신을 또렷하게 유지하고 싶은가? 건강 인플루언서들은 대체의학 분야에서 최신 만병통치약으로 떠오른 ‘펩타이드(peptide)’를 복용하라고 권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를 주입하거나 흡입하기도 하며, 여러 성분을 조합해 ‘울버린 스택(Wolverine stack)’처럼 마치 슈퍼히어로의 이름을 딴 강력한 처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울버린 스택은 뛰어난 회복력을 지닌 마블 캐릭터 ‘울버린’과 여러 약물을 층층이 쌓듯 조합한다는 의미의 ‘스택’을 결합해 만든 용어다
노화 연구자 맷 케벌라인(Matt Kaeberlein) 교수가 펩타이드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은 것은 몇 년 전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주로 대체의학과 건강보충제를 적극 활용하는 기능의학 의사들이 펩타이드를 사용했다”면서 “하지만 최근 6개월 사이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펩타이드는 미국 사회에서 이제 거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헬스테크 스타트업 슈퍼파워(Superpower)에서는 직원들이 금요일마다 무료로 펩타이드 주사를 맞을 수 있다. 피닉스의 한 건강식품 매장 앞 인도에는 ‘펩타이드 판매’ 간판이 세워져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태권도 도장에서는 펩타이드 도매업체가 설명회를 연다. 소셜미디어에서도 펩타이드는 어디에나 등장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인기는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은 미 식품의약국(FDA)의 펩타이드 규제를 끝내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펩타이드 상당수의 효능이나 위험성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가장 인기 있는 펩타이드 중 일부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을 거친 적이 없으며, 인체 사용이 아니라 연구 목적으로만 판매된다. 다른 일부는 큰 성공을 거둔 체중 감량 약물을 불법으로 모방한 제품들이다. 이러한 제품 대다수는 중국산이기 때문에 이 점을 우려하는 입법자들도 있다. 최근 톰 코튼 상원의원은 마틴 마커리 FDA 국장에게 “중국에서 불법으로 들어오는 펩타이드를 단속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규제 감독이 부재한 상황에서 일부 소비자들은 제품이 정품인지 확인하기 위해 구매한 펩타이드를 별도로 독립 기관에 보내 검사하기도 한다.
펩타이드란 무엇인가?
펩타이드는 단백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아미노산이 짧게 연결된 물질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의 줄기세포 연구자 폴 뇌플러(Paul Knoepfler) 교수는 펩타이드에 대해 “과학자들은 일반적으로 펩타이드를 아주 작은 단백질 조각으로 생각하지만, 펩타이드와 단백질을 명확히 구분하는 정확한 기준은 없다”고 설명했다. 인슐린과 인간 성장호르몬 역시 펩타이드에 해당하며, 옥시토신과 같은 일부 신경전달물질도 펩타이드에 속한다.
그러나 건강 인플루언서들이 말하는 펩타이드는 대개 최근 유행하는 특정 화합물을 가리킨다. 이러한 펩타이드 화합물은 주사제, 알약, 비강 스프레이 등의 형태로 가공돼 판매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FDA 승인을 받은 처방약이다. 예를 들어 GLP-1 계열 약물은 당뇨병과 비만 치료제로 승인됐고, 사용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온라인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다. 많은 사이트에서 GLP-1 미세용량 제품을 판매하며 노화 방지, 인지 기능 저하 감소, 염증 완화 등의 효과를 주장한다.
그러나 그 외의 많은 펩타이드들은 실험 단계에 있다. 미국 시애틀에 본사를 둔 장수 기술 기업 옵티스팬(Optispan)의 CEO이기도 한 케벌라인 교수는 “대부분의 펩타이드는 승인받지 않은 쪽에 속한다”고 말했다. 여기에는 TB-500, CJC-1295, 이파모렐린처럼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고 알려진 약물과 BPC-157, GHK-Cu처럼 조직 재생과 상처 치유를 돕는다고 알려진 화합물 등이 포함된다. 우려를 낳고 있는 것은 주로 이러한 미승인 펩타이드 화합물들이다. 600개가 넘는 약국을 대표하는 약국조제연합(Alliance for Pharmacy Compounding)의 CAO(chief advocacy officer)인 약사 테닐 데이비스는 “누구나 연구용 펩타이드를 판매하는 온라인 상점을 설립할 수 있다”며 “하지만 약병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실험적 약물을 복용하는 이들은 피트니스 전문가나 생물학적 기술을 활용해 신체를 개선하려는 바이오해커, 수명연장 기술의 열성적인 지지자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케벌라인 교수는 지인이 의사를 통해 미승인 펩타이드를 처방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면서 “평범한 중상류층 여성인 그 지인의 사례를 통해 이 현상이 주류로 상당히 확산됐다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설명했다.
펩타이드의 효능은?
각종 주장을 종합하면 펩타이드의 효능은 매우 다양하다. GHK-Cu는 상처 치유와 콜라겐 생성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BPC-157은 조직 재생을 촉진하고 염증을 줄인다고 하며, TB-500은 혈관 형성을 돕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주의할 점이 있다. 이러한 효능에 대한 근거는 대부분 동물 실험과 온라인 후기에서 나온 것일 뿐 인간 대상의 임상시험 결과가 아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해밀턴에 있는 맥마스터 대학교의 스튜어트 필립스(Stuart Phillips) 근육생리학 교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펩타이드의 효과를 입증하는 인간 대상의 임상시험 결과는 없다”면서 “따라서 펩타이드의 효능에 대한 주장은 거대한 사기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케벌라인 교수는 “일부 실험적 펩타이드는 실제로 상처 치유나 재생 효과를 보일 수도 있다”면서 “예를 들어 BPC-157의 경우 동물 실험 데이터는 설득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람에게 적용한다고 생각하면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적정 용량은 얼마인가? 얼마나 오래 복용해야 하는가? 가장 적절한 투여 방식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엄격한 임상시험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케벌라인 교수는 “그런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의사들은 각자 임의로 치료 방식을 정해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분말 형태의 펩타이드를 직접 용해해 집에서 스스로 혼합 주사를 만들어 투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승인되지도 않은 펩타이드 치료 광고가 왜 보이는 걸까?
미국 연방법은 승인받지 않은 의약품을 기업이 마케팅하는 것을 금지한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의 펩타이드에도 해당된다. 펩타이드는 건강보조식품이 아니라 ‘저분자 화합물’로 규제되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콜라겐 펩타이드와 크레아틴 펩타이드는 분말 형태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다.) 해당 법은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약물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연구 목적으로 펩타이드를 제조하는 실험실까지는 막지 못한다. 데이비스 CAO는 “현재 시장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펩타이드는 ‘연구용’이라고 표시해 판매하는 온라인 업체를 통해 유통된다”고 설명했다. 약병에는 대개 ‘연구용’ 또는 ‘인체 사용 금지’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데이비스 CAO는 “인체 사용을 목적으로 이러한 제품을 홍보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웹사이트를 보면 구매자가 사실상 이 제품들을 스스로 사용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 매우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관행은 합법이 아니지만 단속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질 뿐이다. 데이비스 CAO는 “FDA는 경고장을 보내고 회사를 폐쇄하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온라인 기반이기 때문에 이들을 따라잡기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는 불법 마케팅을 지속할 유인이 충분하다. 뇌플러 교수는 “연구에 돈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도 수백만 달러를 벌 수 있다”며 “그야말로 돈만 노린 장사”라고 지적했다.
컴파운딩 약국(compounding pharmacy)은 약사가 직접 활성 성분을 혼합해 맞춤형 의약품을 제조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된 미국의 약국 형태이다. 이러한 컴파운딩 약국에서는 펩타이드를 조제해 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펩타이드는 조제 대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사실 이전에도 그랬지만, 2023년 FDA는 안전성 우려를 이유로 여러 일반적인 실험용 펩타이드를 ‘조제 불가 원료 목록’에 명시적으로 추가했다. 데이비스 CAO는 이에 대해 “기존 정책에 다시 한번 강조 표시를 한 셈”이라고 평했다.
많은 GLP-1 계열 약물은 컴파운딩 약국을 통해 구할 수 있다. 과거에는 해당 약물이 품귀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관행이 용인됐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약물 공급이 안정되면서 대량 마케팅을 중단하라는 규제 당국의 압박도 커지고 있다.
위험성 큰 펩타이드
연구용으로 판매되는 펩타이드는 규제 감독이 거의 없는 실험실에서 제조된다. 데이비스 CAO는 “연구용 등급의 펩타이드를 온라인에서 구매하면 약병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며 “어떤 멸균 절차를 거쳤는지, 어떤 불순물이 들어 있는지도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필립스 교수는 일부 사람들이 순도를 확인하기 위해 독립 기관에 펩타이드를 보내 검사한다고 들었다면서 “사람들은 마치 자랑거리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이 물질이 음지에서 거래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펩타이드 검사 스타트업 핀릭 애널리틱스(Finnrick Analytics)는 173개 업체에서 판매된 15종의 펩타이드 샘플 5,000여 건의 순도와 효능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업체마다, 심지어 같은 업체라도 생산되는 묶음마다 품질 차이가 상당했다. 예를 들어 64개 업체에서 판매된 BPC-157 샘플 약 450건을 검사한 결과, 일부는 BPC-157이 전혀 들어 있지 않았다. 성분이 제대로 포함된 경우에도 순도는 약 82~100%까지 다양했다.
더 우려스러운 점은 핀릭 애널리틱스에서 검사한 전체 펩타이드 샘플의 8%에서 세균 세포벽의 일부로 발열과 오한, 심한 경우 패혈성 쇼크를 유발할 수 있는 ‘엔도톡신’이 검출됐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우려가 단순한 가설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2025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한 장수 컨퍼런스에서 펩타이드 주사를 맞은 여성 두 명은 병원에 입원해 인공호흡기를 착용해야 했다. 두 사람 모두 회복했지만, 펩타이드 자체에 반응했던 것인지 약병 속 불순물 때문이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케벌라인 교수는 “모든 펩타이드가 안전하고 자연에서 유래됐을 것이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무엇을 하든 어느 정도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라면서 “실험적 약물을 복용하고 싶다면 그것 또한 개인의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규제되지 않은 실험적 치료의 문제는 그 이점과 위험성을 평가하기가 극도로 어렵다는 데 있다. 그는 “비율로 보면 일부에 불과하더라도 악의적인 판매자들은 결국 악의적으로 행동하면서 실제 위험성과 이점을 제대로 이해할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 제품을 부정직하게 판매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약물과 마찬가지로 펩타이드도 부작용 위험이 있다. 승인된 의약품의 경우 부작용에 관한 정보는 설명서에 상세히 기재돼 있다. 그러나 많은 실험용 펩타이드는 부작용이 무엇인지 파악할 만큼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부 연구자들은 “성장이나 혈관 형성을 촉진하는 펩타이드가 암의 성장도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스포츠 선수가 펩타이드를 사용할 경우 건강 문제뿐 아니라 출전 정지 위험도 있다. BPC-157과 같은 일부 펩타이드는 세계반도핑기구(World Anti-Doping Agency)의 금지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펩타이드 관련 규제가 바뀔 가능성은?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2025년 5월 케네디 주니어 장관은 수명연장 기술의 열성적인 지지자이자 바이오해커인 게리 브레카(Gary Brecka)의 팟캐스트 ‘디 얼티밋 휴먼(The Ultimate Human)’에 출연해 “줄기세포, 킬레이션 약물(chelation drug), 펩타이드 등 대체의학을 상대로 하는 FDA의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킬레이션 약물은 일종의 ‘금속 자석’ 같은 역할을 하며, 체내에 쌓인 납·수은·비소 등 중금속이나 특정 미네랄과 결합해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약물을 말한다.
뇌플러 교수는 케네디 장관이 BPC-157이나 GHK-Cu와 같은 인기 펩타이드의 조제를 허용하도록 FDA를 압박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는 “그렇게 되면 공중보건에 큰 위험이 초래되는 동시에 조제업체와 건강 인플루언서 같은 이들에게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FDA는 GLP-1 모방 약물에 대해서는 강경 대응에 나서는 모습이다. 2월 초 마티 마카리(Marty Makary) FDA 국장은 소셜미디어 X에 “FDA 승인 제품과 유사하다고 주장하며 불법 복제 약물을 대량 마케팅하는 기업에 대해 신속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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