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항법 기술, 군 GPS 교란 문제 해결책 될까?
GPS의 취약성이 증가하면서 원자 기반의 양자항법 도구들이 주목받고 있다.
2025년 9월 말 스페인 국방장관을 태우고 리투아니아 기지로 향하던 스페인 군용기가 로켓이나 대공포가 아닌 전파 송신을 통한 GPS 교란 공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격을 받은 군용기는 무사히 착륙했지만, 이는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가 광범위하게 전개한 GPS 교란 활동의 영향을 받은 수천 건의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됐다. 이처럼 GPS 교란으로 불편이 초래되고 실제 대형 사고가 발생할 위험도 커지면서 GPS가 얼마나 취약한 시스템인지가 분명해지고 있다. 그 결과, GPS를 교란시키는 전파 방해(jamming)와 스푸핑(spoofing), 즉 대상이 다른 위치에 있는 것처럼 GPS 수신기를 속이는 행위 등의 방법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의 군수 업체들은 더 강력하고 정교한 신호를 사용하는 새로운 GPS 위성을 도입하고 있으며, 엔지니어들은 이동통신 신호나 시각 데이터 같은 다른 정보원을 기반으로 개선된 항법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외에도 연구자들이 새롭게 주목하고 있는 또 다른 접근법이 있다. 바로 ‘양자항법(quantum navigation)’이다. 양자항법은 빛과 원자의 양자적 성질을 활용해 초고감도 센서를 만들어, 위성에 의존하지 않고도 항공기나 차량 등이 독자적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GPS 교란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면서 양자항법에 관한 연구도 급속히 진전되면서 현재 많은 연구자와 기업들이 새로운 장치와 기술을 시험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나서고 있다. 최근 몇 달간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국방혁신단(DIU)은 양자항법 기술을 군용 항공기 및 차량에 적용해 시험하고 실제 작전 배치를 준비하기 위한 새로운 연구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변화 추적하기
가장 직관적인 항법은 출발 지점부터 이동 속도, 방향, 시간을 기록해 어디로 가는지를 추적하는 것이다. ‘관성항법(inertial navigation)’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개념적으로는 단순하지만 실제로 정확히 구현하기는 어렵다. 측정값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미세한 오차가 있을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오차가 누적되어 큰 오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영국 양자기반 위치·항법·타이밍 허브(QEPNT)의 더글러스 폴(Douglas Paul) 연구 책임자는 “기존의 특수 관성항법 장비는 100시간 이동 후 위치가 최대 20km까지 어긋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스마트폰에 흔히 쓰이는 저가 센서는 단 1시간 만에 그 두 배가 넘는 수준의 오류가 발생한다.
폴 연구 책임자는 “1분간 비행하는 미사일을 유도한다면 이러한 장치로도 충분할 수 있지만 여객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지적했다.
더 정확한 관성항법 방식은 아원자 입자의 양자 거동을 기반으로 하는 센서를 활용해 가속도, 방향, 시간 등을 훨씬 정밀하게 측정한다.
미국 기업 인플렉션(Infleqtion)과 같은 여러 회사들은 항공기나 차량 등의 이동 방향을 추적하는 ‘양자 자이로스코프’와 이동 거리를 밝혀낼 수 있는 ‘양자 가속도계’를 개발하고 있다. 인플렉션이 개발한 센서는 ‘원자 간섭계(atom interferometry)’라는 기법을 기반으로 한다. 우선 루비듐 원자 빔에 정밀한 레이저 펄스를 쏘아 원자들을 두 개의 경로로 분리하고, 이후 다른 레이저 펄스로 원자들을 다시 결합시켜 검출기로 측정하는 방식이다. 원자들이 이동하는 동안 항공기나 차량 등이 회전하거나 가속하는 경우, 두 경로 사이에 미세한 위상 차이가 발생해 검출기로 해석할 수 있다.
인플렉션은 2024년 영국의 군사 시험장에서 맞춤 개조된 항공기로 이러한 센서들을 시험했다. 그리고 2025년 10월에는 펄스 방식 대신 원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차세대 센서를 실제 환경에서 최초로 시험했다. 차세대 센서를 사용하면 항법 정보를 끊김 없이 확보할 수 있어 측정 공백 시간을 제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인플렉션은 또한 항공기나 차량 등의 이동 거리를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티커(Tiqker)’라는 원자시계도 보유하고 있다. 티커는 특정 주파수에 맞춰진 적외선 레이저를 사용해 루비듐의 전자를 들뜨게 만들어 전자들이 알려진 일정한 속도로 광자를 방출하도록 하는 일종의 광학 시계다. 원자시계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맥스 페레즈(Max Perez) 부사장은 “티커는 약 200만 년에 1초 정도밖에 오차가 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한 티커는 표준 전자 장비 랙에 들어갈 만큼 크기가 작다. 이 시계는 영국에서의 항공기 비행 시험, 미국 뉴멕시코주에서의 미 육군 지상 차량 시험, 그리고 10월 말에는 드론 잠수정 시험까지 통과했다.
페레즈 부사장은 “티커는 시험을 진행한 모든 조건 속에서도 아무 문제없이 작동했다”며 “이는 이전 세대의 광학 시계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인플렉션은 언젠가 마이크로칩에서 생성되는 레이저를 활용해 더 작고 견고한 원자시계를 제작하고자 한다.
자기장
위성 기반 항법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항공기나 차량 등이 완전히 고립되는 것은 아니다.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자기장과 중력장도 위치를 파악하는 데 유용한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자기장과 중력장은 위치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며, 그 차이(‘이상(anomaly)’라고 한다)는 다양한 지도(이상도)에 기록되어 있다. 자기장이나 중력장을 국지적으로 정밀하게 측정한 뒤 그 값을 이상도와 비교하면, 양자항법 시스템은 해당 항공기나 차량 등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
호주 스윈번 공과대학교에서 항법에 관해 연구하는 앨리슨 킬리(Allison Kealy) 교수는 자기장이나 중력장을 활용하는 이러한 접근법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킬리 교수의 연구팀은 ‘NV 다이아몬드(nitrogen-vacancy diamond)’라는 물질을 사용한다. NV 다이아몬드에서는 결정 격자 내의 탄소 원자 하나가 질소 원자로 대체되고 그 옆의 탄소 원자 하나는 완전히 제거된다. 이러한 ‘NV 결함’ 부위에 존재하는 전자들의 양자 상태는 자기장에 매우 민감하다. 이 전자들을 정밀하게 자극하여 전자가 방출하는 빛을 관찰하면 다이아몬드가 놓인 위치의 자기장 세기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지구상에서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다.
킬리 교수는 이러한 ‘양자 자기계’가 기존 자기계에 비해 몇 가지 큰 장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중 하나는 지구 자기장의 세기뿐 아니라 방향까지 측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추가 정보는 위치를 판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킬리 교수와 여러 동료 연구자들은 지난해 말 호주에서 비행 시험을 통해 양자 자기계를 성공적으로 테스트했다. 또한 올해와 내년에 걸쳐 추가 실험도 진행할 계획이다. 킬리 교수는 “이제 이론 모델을 제시하고 통제된 환경에서 실험하는 단계를 벗어나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단계에 들어서면서 매우 흥미로운 시점에 도달했다”며 “이는 매우 큰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고감도 시스템
호주의 양자 기술 기업인 Q-CTRL(큐컨트롤)과 같은 다른 연구팀들은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잡음이 많은 양자 센서로 견고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양자항법을 실제로 활용하려면 실험실의 평온하고 통제된 환경에서 정밀하게 다듬어진 고감도 센서들을, 급격히 방향을 전환하고 난기류로 흔들리며 파도에 따라 출렁이는 항공기나 차량 등에 탑재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러한 조건들은 모두 센서의 작동을 방해한다. 이뿐 아니라 항공기나 차량 자체도 자기계에 문제를 일으킨다. Q-CTRL의 마이클 비어쿡(Michael Biercuk) CEO는 이에 대해 “항공기는 금속으로 만들어졌고 내부에도 수많은 배선이 있다는 점이 문제”라면서 “일반적으로 측정하려는 신호보다 잡음이 100~1,000배 정도 더 많다”고 설명했다.
Q-CTRL의 엔지니어들은 지난해 특수 장비를 갖춘 세스나(Cessna) 항공기로 자기항법 시스템 시험을 진행한 뒤, 머신러닝을 활용해 시험 데이터를 분석하며 잡음 속에서 유의미한 신호를 걸러내려고 했다. 비어쿡 CEO는 “시험 결과, 기존의 전략급 관성항법 시스템보다 최대 94배까지 더 정확하게 항공기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지난 봄 동료평가를 거치지 않은 논문 형태로 발표됐다.
8월 Q-CTRL은 방위산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아이언스톤 오팔(Ironstone Opal)’이라는 이름의 소프트웨어 강화 자기항법 제품을 개발하는 계약 두 건을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수주했다. Q-CTRL은 또한 방산업체 노스롭 그루먼(Northrop Grumman), 록히드 마틴, 항공우주 제조사 에어버스 등의 협력사들과 함께 자기항법 기술을 시험하고 있다.

노스롭 그루먼에서 양자 시스템을 설계하는 마이클 라슨(Michael S. Larsen) 박사는 “노스롭 그루먼은 Q-CTRL과 협력해 실제 환경의 물리적 요구사항들을 견딜 수 있는 자기항법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며“자기항법을 비롯한 양자 센서 기술은 GPS를 사용할 수 없거나 성능이 저하된 환경에서도 항법 정보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Q-CTRL은 아이언스톤 오팔을 실제 배치에 적합하도록 더 작고 견고한 형태의 케이스에 탑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비어쿡 CEO는 이에 대해 “아이언스톤 오팔의 첫 배치는 마치 과학 실험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2026년에 첫 상용 제품을 인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센서 융합
이처럼 양자항법이 위성 기반 항법의 합리적인 대안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위성 자체도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다. 최신 GPS III 위성에는 L1C와 L5라는 새로운 민간용 신호가 포함되어 있는데, 이 신호들은 기존 신호보다 더 정확하고 전파 방해나 스푸핑에도 훨씬 강할 것으로 기대된다. 두 신호 모두 2020년대 후반에 완전 운용될 예정이다.
미국과 동맹국에서는 군사용으로 이보다 훨씬 더 강력한 GPS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도구에는 현재 배치가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GPS 신호인 M코드(M-code)와 소규모 지리적 범위에만 제한적으로 제공되는 집중형 GPS 빔인 RMP(Regional Military Protection, 지역군사보호) 등이 포함된다. RMP의 경우 2027년에 첫 발사가 예정되어 있는 GPS IIIF 세대 위성들이 궤도에 오르면 사용 가능해질 예정이다. 록히드 마틴의 대변인은 “M코드를 탑재한 새로운 GPS 위성은 이전 세대보다 8배 더 강력하지만, GPS IIIF 모델은 60배 더 강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계획으로는 GPS가 사용하는 지구 중궤도(MEO) 대신, 스페이스X의 인터넷 위성군인 스타링크가 위치한 저궤도(LEO)의 항법 위성을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 저궤도에 있는 물체들은 지구에 더 가깝기 때문에 신호도 더 강하고, 그만큼 전파 방해나 스푸핑도 더 어렵다. 또한 저궤도 위성은 하늘을 가로질러 이동하는 속도가 더 빠르기 때문에 스푸핑이 한층 더 까다로워질 뿐만 아니라 GPS 수신기도 위치를 더 빠르게 포착할 수 있다. 네덜란드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로트피 마사르웨(Lotfi Massarweh) 위성항법 연구원은 이에 대해 “위성이 저궤도에 있으면 신호 수신이 빨라서 몇 분 만에 정확한 위치를 얻을 수 있다”며 “이는 엄청난 도약”이라고 강조했다.
마사르웨 연구원은 “결국 항법 정보를 위해서는 위성이나 양자 센서, 또는 그 외의 단일 기술만 단독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결합해야 한다”며 “늘 ‘센서 융합’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항공기나 차량 등이 어떤 항법 기술을 활용하게 될지는 필요한 환경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여객기, 잠수함, 도심의 고층 건물 사이를 달리는 자율주행차 등은 모두 주변 환경도, 필요한 기술도 다르다. 양자항법은 그중 한 가지 선택지로서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마사르웨 연구원은 “만약 양자 기술이 이론으로 구현 가능한 수준만큼 실제로 구현된다면, 그래서 수십 분이 아니라 일주일 이상 안정적으로 작동한다면, 항법 분야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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