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함이 트렌드가 된 시대, ‘AI 슬롭’의 등장
온라인을 뒤덮고 있는 ‘AI 슬롭’은 단순한 저품질 콘텐츠를 넘어, 사용자들이 소비하고 변주하며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대중문화의 초안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 온라인에서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어안렌즈로 찍은 듯한 CCTV 화면이 반복해서 눈에 들어온다. 거실 구석이나 밤의 집 앞 진입로, 텅 빈 식료품점을 비춘 거친 질감의 와이드샷이다. 그러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갑자기 벌어진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기상천외한 복장을 하고 현관 앞에 나타나는가 하면, 자동차가 종이처럼 스스로 접히더니 그대로 달려가 버리기도 한다. 고양이가 들어와서는 마치 현대판 동화 속 장면처럼 대형 설치류인 카피바라나 곰과 함께 어울려 놀기도 한다.
이러한 ‘가짜 CCTV’ 스타일의 영상은 요즘 사람들이 ‘AI 슬롭(AI slop)’이라고 부르는 콘텐츠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되었다. 온라인에서 짧은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에게 슬롭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상처럼 느껴진다. 틱톡과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플랫폼 곳곳에서 종종 앞뒤가 맞지 않는 AI 생성 영상들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지난 9월 앱 형태로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모은 오픈AI의 소라(Sora), 구글의 비오(Veo) 시리즈, 런웨이(Runway)가 만든 AI 모델 같은 새로 등장한 도구들이 있다. 덕분에 이제 스마트폰 화면을 몇 번만 터치하면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슬롭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각인된 순간을 꼽자면 2025년 여름 화제가 된 ‘트램펄린에서 깡충대는 토끼 영상’을 들 수 있다. 필자를 포함해 온라인 문화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마저 이 영상에서 처음으로 AI에 속아 넘어갔다. 이후 트램펄린 위에서 온갖 동물과 사물이 튀어 오르는 거의 비슷한 영상이 끝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형편없게만 보였다. 온라인이 슬롭으로 뒤덮이며 인터넷이 엉망이 되었고, 그 책임의 상당 부분이 AI에 있다는 불만은 각종 칼럼에서도, 일상의 대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필자도 한동안 이런 분위기에 동의하며 AI 영상이 보이면 재빨리 넘기곤 했다. 알고리즘에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단체 채팅방에서 친구들이 이상하면서도 웃기고, 허무맹랑한데도 은근한 기지가 살아 있는 AI 영상을 계속 공유하기 시작하자 생각이 달라졌다. 정작 필자가 거부하려던 것이 무엇인지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 감정의 근원을 찾기 위해 필자는 최근 영상 제작자, 창작자용 도구를 만드는 기업 관계자, 새로운 미디어가 어떻게 문화가 되는지 연구하는 전문가를 만났다. 그 과정을 거치며 생성형 AI가 모든 것을 망가뜨릴 것이라는 단정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우리는 어쩌면 너무 빨리 AI 슬롭을 깎아내렸는지도 모른다. 표면만 보고 지나치기보다 지금 이 순간 실시간으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창작 방식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AI 슬롭 열풍
‘AI 슬롭’은 텍스트와 오디오, 이미지를 모두 가리킬 수 있다. 하지만 2025 특히 두드러지게 확산된 건 소셜 플랫폼을 잠식한 짧은 AI 영상이다. 짧은 문장 형태의 프롬프트를 대형언어모델(LLM)에 입력하면 영상이 바로 생성된다. 이 모델들은 방대한 데이터세트를 학습해 다음 프레임의 모습과 소리를 예측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텍스트 모델이 채팅 답변을 생성하는 과정과 비슷하지만 속도가 훨씬 느리고 훨씬 더 많은 전력을 소비한다.
2022년에서 2023년 사이 등장한 초기 텍스트 기반 영상 생성 모델은 흐릿한 움직임 몇 초를 만들어내는 수준에 그쳤다. 사물이 나타났다 사라지거나, 인물이 화면 곳곳으로 순간이동하듯 튀었고, 손가락이 어색하게 뒤틀리거나 얼굴이 녹아내린 듯 허물어진 장면은 AI 영상의 흔한 단서였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소라 2(Sora 2), 비오 3.1(Veo 3.1), 런웨이(Runway)의 젠 4.5(Gen-4.5) 같은 신형 모델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현실적인 질감과 끊김 없는 움직임을 구현하고 프롬프트도 훨씬 정확하게 반영해 최대 1분 길이의 영상을 만들 정도로 발전했다. 일부 모델은 주변 소리나 짧은 대사까지 함께 생성한다.
AI 기업들은 이 텍스트 기반 영상 생성 모델을 영화 제작의 미래로 홍보해 왔다. 영화 촬영 현장과 스튜디오, 전문 스토리텔러를 위한 도구라고 강조했고, 초기 데모도 와이드 화면과 드라마틱한 카메라 무빙을 중심으로 공개했다. 오픈AI는 소라를 ‘월드 시뮬레이터(world simulator)’라고 소개하며 영화 제작자들에게 영화 수준의 단편을 선보였다. 구글 역시 지난해 스토리보드와 긴 장면까지 제작할 수 있는 비오 3를 공개하며 영화 제작 워크플로를 정면으로 겨냥한 전략을 내놓았다.
이런 접근은 모두 사람들이 실제처럼 보이는 AI 영상을 만들고 싶어 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기술이 쓰이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결과물은 영화 스튜디오가 아니라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6인치 화면에서, 더 작고 기묘하며 어쩌면 더 흥미로운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 기술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고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이미 활용하고 있다. 어도비(Adobe)가 지난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창작자의 86퍼센트가 이미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흐름을 이끄는 주체는 전문 창작자만이 아니다.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 평범한 사람들, 다시 말해 스마트폰 하나만 가진 사용자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그 결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간디와 춤을 추는 장면부터 칼끝이 닿자마자 버터처럼 녹아내리는 크리스털, ‘왕좌의 게임’을 중국 허난 오페라 스타일로 재해석한 영상까지 온갖 기묘한 영상들이 쏟아지고 있다. 어딘가 몽환적이고 때로는 우습지만, 대부분은 말도 안 될 만큼 기괴하다.
마이크로 트렌드(Micro-trend)는 원래 틱톡이나 릴스처럼 속도감이 강한 포맷에서 등장한 현상이지만 AI가 등장하면서 이 흐름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이디어 복제를 가로막던 장벽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트램펄린에서 뛰는 토끼 영상처럼 하나의 바이럴 콘텐츠가 순식간에 무한 변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제는 촬영 의상도 장소도 필요 없이 프롬프트만 조금 고쳐 생성 버튼을 누르면 바로 공유할 수 있는 영상이 나타난다.
대형 기술 기업들도 이러한 흐름을 새로운 소셜 미디어 형태로 확장하려 하고 있다. 소라 앱은 사용자가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AI 버전을 영상 속에 삽입할 수 있게 했고, 메타의 바이브스(Vibes) 앱은 사용자의 피드를 끊임없는 AI 영상으로 채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물론 이런 손쉬운 제작 환경으로 인해 무해한 영상만큼이나 어두운 슬롭도 대량으로 생성되고 있다. 소라에서는 이미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는 딥페이크가 무더기로 생성돼 킹 재단이 결국 관련 영상을 전면 차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틱톡과 엑스(X)에서는 여성과 소녀가 목이 졸리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 소라 워터마크와 함께 다량 유통되고 있으며, 이 장면만 반복해 게시하는 계정도 나타났다. 여기에 파시즘을 연상시키는 시각적 스타일과 밈을 교묘하게 꾸며 10대 이용자의 추천 피드에 흘려보내는 이른바 ‘나치슬롭(Nazislop)’까지 등장했다.
그럼에도 짧은 AI 영상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앱과 AI 창작자용 디스코드 서버, 튜토리얼 채널이 계속 생겨나고, 커뮤니티 분위기도 점차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운 영상을 만들려는 시도에서 벗어나 AI 특유의 기이함을 기꺼이 수용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다. 필자는 매일같이 ‘AI 슬롭’의 경계를 밀어붙이는 창작자들을 보면서 그중 몇 명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슬롭 창작자와의 만남
가짜 CCTV 영상이 인기를 끌듯, 많은 AI 바이럴 영상도 현실과 동떨어진 기묘한 분위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건축 디자이너에서 전업 AI 아티스트로 전향한 원후이 림(Wenhui Lim)은 “AI 영상 창작자들 사이에는 얼마나 더 기괴한 영상을 만들 수 있는지 겨루는 분위기가 생겨났다”고 말했다.
AI 영상 도구는 이런 초현실적 연출을 손쉽게 구현한다. 일반적인 신체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동작이나 실제 카메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장면까지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그래서 풍자나 코미디, 패러디, 실험적 영상처럼 비현실적인 요소가 핵심인 장르에서 특히 강점을 보인다. 필자가 인터뷰한 여러 AI 창작자들은 이런 특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레드랜즈에 사는 드레이크 가리베이(Drake Garibay)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2025년 초 소셜미디어에서 유행한 ‘바디 호러’, 즉 신체 훼손 등을 다룬 공포물 스타일의 AI 영상에 자극받아 창작을 시작했다. 그는 생성형 미디어 도구 컴피UI(ComfyUI)를 탐색하다가 매주 몇 시간씩 기묘한 작품을 만드는 데 빠져들었다. 인간과 동물이 섞인 기형적 하이브리드가 그의 단골 소재다. 그는 “이 작업에 완전히 빠져들었다”며 “예전부터 예술에 관심이 있었는데, AI 영상 도구가 보여주는 가능성에 정말 놀랐다”고 말했다.
2025년 초부터 가리베이는 자신의 실험작을 꾸준히 온라인에 올리고 있다. 틱톡에서 화제가 된 ‘따끈한 AI 슬롭 요리하기(Cooking up some fresh AI slop)’라는 영상에는 사람들이 끈적한 반죽을 냄비에 붓는 장면이 등장한다. 반죽은 갑자기 인간의 얼굴로 변하더니 곧 머리와 몸통까지 생겨나 끓는 냄비에서 튀어나온다. 이 영상은 조회 수 830만 회를 넘어섰다.
AI 영상 기술은 발전 속도가 너무 빨라 창작 전문가조차 따라가기 벅찰 정도다. 실험해 볼 여지는 여전히 광범위하게 남아 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출신의 디지털 아티스트 대릴 안셀모(Daryl Anselmo)는 기술이 등장하던 초기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영상을 만들어 2021년 이후 매일 온라인에 작품을 올리고 있다. 그는 클링(Kling), 루마(Luma), 미드저니(Midjourney) 등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새로운 방식으로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AI 도구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일 자체가 때로는 보상이 된다”며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작업 중 아직 발견되지 않은 분야가 분명 남아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 가능성이 나를 설레게 한다”고 말했다.
안셀모는 지난 4년간 쌓아온 영상을 ‘AI 슬롭’이라는 하나의 프로젝트로 묶어 파리 그랑 팔레 이메르시프(Grand Palais Immersif)를 포함한 여러 전시 공간에서 공개했다. 각 영상은 분위기와 구성이 치밀하게 잡혀 있어 단순 밈이라기보다 실험적 예술 단편에 가깝다. 시간이 흐르며 그의 작품 세계는 점점 어두운 분위기로 기울었고, 소재도 풍경이나 인테리어에서 가리베이가 빠져들었던 바디 호러 쪽으로 옮겨갔다.
그의 대표작 ‘agi를 느껴보라(Feel the agi)’는 초현실적 로봇이 스스로의 두개골을 벌리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다. 최근 공개한 또 다른 작품 ‘토트 앤 보더드(Tot and Bothered)’는 자정 무렵의 식당을 배경으로 의인화된 테이터 톳(Tater Tot) 캐릭터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빈티지 색감과 느리고 몽환적인 사운드트랙이 어우러져 늦은 밤 꾸는 꿈처럼 아련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러한 AI 시스템의 또 다른 장점은 창작자가 반복 등장하는 공간과 캐릭터를 손쉽게 구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림은 자신이 태어난 싱가포르의 ‘아줌마 문화’를 모티프로 삼아 만든 AI 영상 계정 ‘나이스앤티스(Niceaunties)’의 제작자이기도 하다. 그녀는 “싱가포르에서 ‘아줌마’라는 말은 다소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는다”며 “늘 선을 넘는 구식의 잔소리꾼으로 비치지만 동시에 매우 지혜롭고 유머러스하며 스스로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이들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녀의 유쾌한 영상 속에서는 나이 든 아시아계 여성들이 과일이나 사물, 건축물과 결합하거나 환상의 공간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이 펼쳐진다. 인스타그램에서 1,350만 회 이상 조회된 ‘앤틀란티스(Auntlantis)’는 은발의 아줌마들이 바닷속 쓰레기 처리 공장에서 일하는 공업용 인어로 재탄생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비슷한 유형의 AI 영상 계정으로는 에릭 수에레즈(Eric Suerez)와 아담 바저스타인(Adam Vaserstein)이 운영하는 ‘그래니 스필스(Granny Spills)’가 있다. 화려한 멋쟁이 노부인이 길거리 인터뷰에 등장해 거침없는 인생 조언을 늘어놓는 설정의 콘텐츠다. 이 계정은 출시 석 달 만에 인스타그램 팔로워 180만 명을 모았고 거의 매일 새 영상을 올리고 있다. 영상마다 노부인의 얼굴은 조금씩 다르지만 분홍색을 중심으로 한 색감과 옷차림은 거의 유지된다. 두 제작자는 “대본 작성부터 장면 구성까지 모든 작업을 AI로 처리한다”며 자신들의 역할을 “창작자라기보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런 프로젝트는 굿즈 제작이나 미니 시리즈, 확장된 세계관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래니 스필스의 두 제작자는 다양한 시청자층을 겨냥해 흑인과 아시아계 노부인 버전의 캐릭터를 추가로 만들었다. 이제 이 노부인들은 서로 같은 가상의 세계를 공유하는 것처럼 크로스오버 영상에도 등장하며 채널 간 트래픽을 이끌고 있다.
비슷한 흐름으로 온라인 트렌드에 참여하는 일도 훨씬 쉬워졌다. 2025년 초 유행한 ‘이탈리안 브레인롯(Italian brainrot)’이 대표적이다. Z세대와 알파세대가 특히 열광한 이 영상들은 ‘봄바르디로 크로코딜로(Bombardiro Crocodilo)’나 ‘트랄라레로 트랄랄라(Tralalero Tralala)’처럼 가짜 이탈리아식 이름을 단 인간·동물·사물 혼합 캐릭터들을 등장시켰다. 밈 데이터베이스 ‘노 유어 밈(Know Your Meme)’에 따르면 이 유행은 가짜 이탈리아어를 흉내 낸 몇몇 틱톡 사운드에서 시작됐다. 이후 참여자가 눈에 띄게 늘며 마치 모두가 함께 꾸는 거대한 환상처럼 번져갔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캐릭터와 설정, 세계관을 덧붙이며 하나의 기이한 우주를 공동으로 확장시켰다.
이 흐름을 꾸준히 추적해 온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콘텐츠 제작자인 데님 마주키(Denim Mazuki)는 “이탈리안 브레인롯이 처음 나타났을 때 정말 흥미로웠다”며 “사용자들이 함께 세계관을 만들었다는 점이 이 트렌드의 핵심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캐릭터는 스튜디오나 개인 창작자가 아니라 온라인에 늘 접속해 있는 사용자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트렌드는 새롭고 정교한 도구의 등장으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오픈아트(OpenArt)는 영상 생성뿐 아니라 장면별 스토리텔링까지 지원하는 플랫폼으로 사용자가 내러티브를 세밀하게 조정할 수 있게 한다.
오픈아트에서 영상을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다. 사용자는 AI로 생성한 캐릭터 이미지 몇 장과 ‘공원에서 춤추는 고양이’처럼 짧은 문장을 입력하면 된다. 그러면 플랫폼이 장면 분할(scene breakdown)을 생성하고 사용자는 이를 각 장면별로 다듬는다. 이후 여러 주요 모델로 결과물을 생성해 비교하며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다.
코코 마오(Coco Mao)와 클로이 팡(Chloe Fang) 오픈아트 공동 창업자는 “이탈리안 브레인롯 유행에 참여하려는 일반 사용자들을 겨냥해 튜토리얼 영상을 후원하고 바로 활용 가능한 템플릿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이용자의 80퍼센트 이상이 기술적 배경이 전혀 없는 사용자”라고 말했다.
슬롭에 대한 변론
‘슬롭’이라는 단어가 지금과 같은 의미로 온라인에서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10년대 초반이다. 폐쇄적이고 독한 농담으로 악명 높았던 미국 커뮤니티 ‘4chan’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담 알렉식(Adam Aleksic) 인터넷 언어학자는 “단어가 퍼지면서 의미도 함께 바뀌었다”며 “오늘날 슬롭은 의심 없이 소비하는 대중을 겨냥해 저품질로 대량 생산된 무언가를 깎아내릴 때 쓰는 말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제 사람들은 체인점 샐러드 같은 음식부터 의미 없는 업무 보고서까지 온갖 것에 이 표현을 붙인다.
하지만 쓰임새가 넓어졌음에도 슬롭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상은 여전히 AI다. 품질과 무관하게 거의 모든 AI 생성물을 가볍게 폄하하는 데 쓰이는 일종의 편리한 약어가 된 것이다. 케임브리지 사전이 새로 제시한 정의 역시 이런 인식을 굳힌다. 사전은 슬롭을 “인터넷에 올라오는 매우 저품질의 콘텐츠, 특히 AI가 만든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AI 창작자들 사이에서 ‘슬롭’이 민감한 꼬리표가 된 것은 그리 놀랍지 않다. 안셀모는 오히려 이를 반쯤 아이러니하게 받아들이며 지난 몇 년간 이어온 자신의 아트 프로젝트 제목을 ‘AI 슬롭’이라고 붙였다. 그는 “이 시리즈는 실험용 스케치북 같은 작업”이라며 “모델을 밀어붙이고, 일부러 깨뜨려 보고, 새로운 시각 언어를 만들어가며 슬롭을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AI에 깊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다”며 “이게 ‘예술’인지 아닌지를 따지는 데에도 별 관심이 없다”고 했다.
끓는 냄비에서 인간 얼굴이 튀어나오는 바이럴 영상을 만든 가리베이 역시 ‘슬롭’을 장난스러운 표현으로 쓴다. 그는 “AI 슬롭 아트는 이상하고 기묘한 요소가 잔뜩 들어 있어 그저 충격 효과만 노린 얕은 작업처럼 보이기 쉽다”며 “하지만 수준 높은 결과물을 만들려면 훨씬 더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래니 스필스를 만든 수에레즈와 바저스타인도 비슷한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들은 “우리 작업이 슬롭이라 불리는 건 달갑지 않다”며 “그 표현이 흔히 AI 생성 콘텐츠 전체를 비하하는 방식으로 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본을 직접 쓰거나 프레임을 직접 그리지 않는다 해도 예술적 판단과 선택은 우리가 한다”며 “‘슬롭’이라는 꼬리표는 창작을 위해 기울인 노력을 보지 않는 말”이라고 했다.
실제로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창작자에게 AI 영상 제작은 결코 ‘한 번의 클릭’으로 끝나는 과정이 아니다. 원하는 화면을 만들기 위해 기술 이해, 시행착오, 예술적 감각이 모두 필요하다. 림은 “1분짜리 영상 하나에도 몇 시간, 때로는 며칠이 걸린다”고 말했다. 안셀모 역시 “모델이 내놓는 출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과정 자체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프롬프트 하나 넣고 끝내는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수많은 시도가 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슬롭’이라는 말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다. 알렉식은 “저급하다는 걸 알면서도 즐기게 되는 데서 오는 사용자의 죄책감, 기대에 못 미치는 콘텐츠를 만든 창작자를 향한 불만, 그리고 슬롭을 퍼뜨리는 알고리즘에 대한 불안이 한데 얽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슬롭이 이렇게 퍼지는 데 알고리즘과 플랫폼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사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감정은 생성형 AI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플랫폼에 의해 취향이 조종되고 주의가 유도되는 환경 속에 있었고, 그 과정에서 쌓인 불만이 새롭고 눈에 띄는 대상인 AI에 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완전히 오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익숙한 질서가 흔들리고 원하지 않은 방향으로 밀려나는 듯한 감각에 맞서 인간의 의지를 지키고 싶어지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 인식은 AI 영상 도구를 먼저 받아들인 창작자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고 있다. 필자가 만난 모든 AI 영상 창작자는 도구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악성 메시지와 댓글을 받았다. 대부분 “AI 창작자가 이미 생계가 어려운 예술가들의 기회를 빼앗고 있다”며 그들의 작업을 ‘사기’나 ‘쓰레기’로 몰아붙였다.
이 반발은 전혀 근거 없는 감정만은 아니다. 브루킹스 연구소(The Brookings Institution)는 최근 연구에서 “2022년 생성형 AI 도구가 등장한 이후, 한 주요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AI 영향에 노출된 직군의 프리랜서 계약이 약 2퍼센트 감소하고 수익은 5퍼센트 줄었다”고 밝혔다.
캘리포니아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의 디지털아트 부교수이자 아티스트인 민디 수(Mindy Seu)는 “‘AI 슬롭’이라는 말에는 창작 과정이 지나치게 쉽게 이루어진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며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 노동이 지워진 것처럼 들리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불편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제는 예술 분야에서 AI 활용이 아직 매우 초기 단계라는 데 있다. 모범 사례도 거의 없고, 안전장치도 부족하다. 그리고 필자 역시 허술한 AI 영상을 볼 때 느끼는 일종의 부끄러움 같은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일정한 낙인이 따라붙는 건 역사적으로 흔한 일이다. 특히 기존의 수작업 영역을 침범하는 듯 보일 때 더욱 그렇다. 수는 “디지털아트·인터넷아트·뉴미디어가 각종 문화 기관에서 인정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이 기관들이 오랫동안 ‘무엇이 예술인가’를 판단해 온 중심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예술가에게 AI는 지금 그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 수는 “기술이 크게 도약할 때마다 ‘예술가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창작자들이 AI를 예술가를 대체하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창작 방식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그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마오는 “앞으로 생성형 영상 도구를 익히는 능력이 창작자에게 필수적인 기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과거 한 세대에게 포토샵을 배운다는 것이 그래픽디자인과 거의 동의어였던 것처럼 이 도구들도 결국 배워야 하는 기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많은 사람이 ‘AI 슬롭’이라고 부르는 현상을 일종의 ‘민주화’로 본다. 희귀한 기술이 장인의 손기술에서 벗어나 창작 기획에 가까운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원하는 이미지를 정확한 언어로 설명하고 모델이 이해할 단서를 제시하는 능력이 중요해지면서, 감식안과 비평적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창작의 중심에 가까워지고 있다.
여기에는 단순한 기획을 넘어서는 요소도 있다. 인간의 창작 의도가 작품에 어떤 방식으로 반영되는가에 대한 문제다. 림은 “스타일을 흉내 내는 건 너무 쉽다”며 “나이 든 아시아계 여성 캐릭터가 이것저것 하는 영상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내가 왜 이 작업을 하는지는 사람들이 잘 모른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이어 “그렇기 때문에 따라 하기는 쉬워도 일관성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드 기반 이미지 생성 연구를 이끄는 잭 리버맨(Zach Lieberman) MIT 미디어랩 교수는 “AI 창작이 흥미로운 이유는 그 발상의 방향성 자체에 있다”고 말했다. 수년간 코드로 이미지를 만들어 매일 스케치를 올려온 그는 “수학적 논리가 아름다움의 적은 아니다”라며 “젊은 세대는 AI를 결국 또 하나의 도구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블랙박스에 가까운 AI 모델에 의존할수록 예술가가 작품의 세부를 직접 조율하던 통제력이 줄어드는 점은 여전히 불안하다”고 밝혔다.
새로운 온라인 문화
많은 사람에게 AI 슬롭은 인터넷에서 이미 질렸던 요소들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존재처럼 보인다. 투박하고, 시끄럽고, 인간 창작물을 몰아내는 느낌까지 준다. 이는 AI가 온갖 창작물을 출처도, 맥락도, 기여도도 없이 흡수해 평균값으로 갈아내고, 말 그대로 ‘수학적으로 평균적인’ 결과물을 내도록 훈련됐기 때문이다. 미국 기술 전문 매체 <더 버지(The Verge)>의 찰스 풀리엄-무어(Charles Pulliam-Moore) 기자는 이 흐름을 인터넷 문화를 오래 규정해 온 ‘공식처럼 반복되는 파생성’이라고 설명한다. 상상력이나 독창성, 심지어 흥미조차 찾기 어려운 콘텐츠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터넷 문화의 매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필자는 인터넷 문화를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형편없어 보일 때조차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다. 어떤 취향이든 파고들 틈이 있고, 그 속에 나만의 관심사를 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온라인에 머물다 보면 슬롭을 소비하는 감각이 ‘정복’이 아니라 일종의 ‘수용’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사용자에게는 플랫폼이나 알고리즘을 바꿀 힘이 거의 없고, 그들의 작동 방식을 통제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수용이 포기를 뜻하진 않는다. 더 강한 흐름 앞에서 잠시 몸을 맡기는 것에 가깝다. 좋은 스크롤링은 원래 통제의 문제가 아니다. 서핑처럼 흐름을 타는 일에 가깝고, 때때로 우스운 지점에 떠밀려 가더라도 완전히 혼자는 아니다.
대량 생산된 클릭 유도형 ‘낚시’ 콘텐츠는 늘 존재했다. 달라진 점은 이제 그것이 실시간으로, 그리고 예전에는 상상조차 어려웠을 규모로 생성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반응하는 방식이 다시 트램펄린 위에서 뛰던 토끼 영상과 같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또 다른 문화를 낳는다. 어쩌면 AI 슬롭은 알고리즘적 논리에 대한 ‘수용’이 만들어낸 산물일지도 모른다. 진지함은 찾아볼 수 없고, 초현실적이며, 때로는 기괴할 정도로 화려한 모습으로 인터넷과 우리의 관계를 비춘다. 너무나 평범하고 무성의하며 인간미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평균적이지만, 그 극단적인 밋밋함이 다시 묘한 매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AI 슬롭을 좋아한다는 것은 인터넷이 망가졌음을, 즉 문화의 기반이 기회주의적이고 착취적으로 변했음을 인정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그런 잔해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놀이와 웃음을 즐기고, 그 안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낼 방법을 발견하곤 한다.
지난가을, 토끼 영상에 속았던 때로부터 몇 달 뒤였다. 필자는 중국의 인기 소셜 미디어 레드노트(Rednote)를 스크롤하다 중국 창작자 무 톈란(Mu Tianran)의 AI 슬롭 풍자 영상을 보게 됐다. 널리 퍼진 영상 하나에서 그는 길거리에서 배우들을 인터뷰하며 “당신이 AI로 생성된 존재라는 걸 아나요?”라고 묻는다. AI가 만든 길거리 인터뷰 영상 유행을 그대로 패러디한 것이다. 배우들은 시선은 카메라 옆을 향하고, 웃음은 한 박자 늦고, 몸짓은 미묘하게 어긋나 있어 얼핏 보면 AI 같지만 그들은 실제 사람이었다.
이 영상을 보고 있자니 ‘AI 때문에 인간의 창의성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은 도무지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AI가 사람들에게 즐기고, 비틀고, 조롱할 또 다른 스타일을 하나 더 건넨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이 모든 것도 괜찮을지 모른다. 무언가를 모방하고, 재구성하고, 농담을 던지려는 충동은 여전히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으로 남아있으며, AI가 결코 이를 앗아갈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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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They’re not cooking it. They’re SPAWNING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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