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고된 몰락? 2025년 우리를 실망시킨 ‘최악의 기술’ 8선
사이버트럭과 아첨하는 AI, 그리고 휴머노이드 로봇 '네오'까지. 혁신을 표방하며 등장한 이 기술들은 결국 기대를 저버리고 ‘2025년 최악의 기술 실패작’ 리스트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한 해 동안 가장 어처구니없었던 기술 실패 사례들을 돌아보는 시간이다.
올해 기술계를 관통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정치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시 백악관에 입성했을 당시 재생에너지, 암호화폐 등 여러 산업이 그의 행정명령 한 줄에 흔들렸다. 파장은 취임 전부터 시작됐다. 트럼프는 당선인 시절 자신의 이름을 딴 디지털 토큰 ‘$TRUMP’를 직접 홍보하며 노골적인 상업 행위를 벌였고, 이 토큰은 올해 ‘최악의 기술’ 목록에 올랐다.
기술적 실패에는 늘 배울 점이 있다고 하지만 기술이 권력에 종속되는 순간 교훈은 단순해진다. 애초에 손대지 않는 편이 더 나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연방 기관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비용 삭감을 추진한 ‘DOGE 프로그램’을 주도했지만 결과는 혼란뿐이었다. 시민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테슬라 차량이 거리에서 불타는가 하면, 기대를 모았던 사이버트럭 운전자들은 환영 대신 비난을 받았다.
머스크는 시간이 지난 뒤 이를 후회한다고 밝혔다. 그는 12월 한 인터뷰에서 “돌아갈 수 있다면 DOGE를 추진하는 대신 내 회사에 집중하고 싶다”며 “그랬다면 사람들이 자동차에 불을 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5년은 유난히 후회가 많이 남은 해였다. 그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사례들을 정리했다.
가정용 로봇 ‘네오’

식기세척기에 설거지 할 그릇을 넣어주고 문까지 열어주는 금속 로봇 집사를 떠올려보자. SF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다. 이런 모습이 현실에서 구현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약 30kg 무게의 휴머노이드 로봇 네오(NEO)는 첫 제품 평가에서 기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네오를 개발한 1X 테크놀로지스(1X Technologies, 이하 ‘1X’)는 “네오가 어떤 집안일이든 안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지만 실제 시연 결과는 그 약속과 거리가 멀었다.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가 직접 시험해 본 결과 네오는 스웨터 한 벌을 접는 데 2분이 걸렸고, 호두 하나도 제대로 깨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시연 내내 로봇의 모든 동작이 VR 헤드셋을 쓴 사람의 원격 조작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관심이 있다면 예약 구매는 가능하다. 1X는 네오를 2만 달러(약 2,900만 원)에 사전 판매 중이다. 2026년 초 출시 예정이다.
아첨하는 AI

샌프란시스코는 누군가 형편없는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아무도 정색하며 말리지 않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0년간 이 도시의 최대 역작인 챗GPT 역시 자주 그런 식으로 행동하곤 한다.
2025년 오픈AI는 사용자의 아주 평범한 질문에도 ‘탁월한 통찰’이라며 아첨하는 업데이트 버전을 출시했다. 이러한 ‘전자 예스맨’ 노릇은 우연이 아니라, 아첨에 현혹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노린 회사의 철저한 제품 전략이다.
그러나 이는 기만적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한 방식이다. 챗봇이 사용자의 망상을 부추기고 최악의 충동을 방조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에는 자살과 같은 극단적인 사례까지 포함되어 있다.
오픈AI는 지난 4월 지나치게 순응적으로 반응하는 모델의 업데이트를 되돌리며 “해당 업데이트가 의심을 강화하고, 분노를 키우며, 충동적 행동을 부추기고, 부정적 감정을 극대화하는 부작용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필자가 최근 챗GPT에 스스로도 터무니없다고 생각한 아이디어를 입력하자 “정말 좋은 생각이네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이어울프’를 복원한 기업

거짓말일수록 더 그럴듯하게 꾸미라는 말이 있다. 텍사스의 바이오테크 기업 콜로설 바이오사이언스(Colossal Biosciences, 이하 ‘콜로설’)에서 공개한 하얀 털의 동물 세 마리는 딱 그런 인상을 남겼다. 콜로설은 이 동물들이 만 년 전 멸종된 다이어울프를 복원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공학적 성취만 놓고 보면 눈에 띄는 실험이긴 했다. 회색늑대의 유전자를 변형해 털을 완전히 흰색으로 만들고, 오래된 다이어울프 뼈에서 추출한 DNA 일부를 더한 것이다.
그러나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갯과 동물 전문가들은 이 동물들이 “다이어울프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콜로설의 과장된 홍보가 실제 멸종위기종 보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IUCN은 “멸종된 동물을 복원하는 기술을 즉시 활용 가능한 대안처럼 제시하는 것은 건강하게 기능하는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더 시급한 과제를 가리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콜로설은 반박 성명을 내고 “온라인 반응 분석 결과 98퍼센트가 우리의 주장에 동의했다”며 “이들이 다이어울프라는 사실은 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mRNA에 대한 정치적 탄압

코로나19 팬데믹에서 세상을 구한 기술이 지금은 예상치 못한 대접을 받고 있다. 팬데믹 당시 미국은 mRNA 백신 기술에 과감히 투자했고, 이 새로운 방식은 기록적인 속도로 백신을 개발해 내며 기대에 완벽히 부응했다.
그러나 현재 미국 보건 당국을 이끄는 반백신 성향의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Robert F. Kennedy Jr.)가 등장하면서 mRNA는 순식간에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됐다. 케네디는 지난 8월 차세대 백신 개발을 위한 수억 달러 규모의 계약을 전격 취소했다. 팬데믹 당시 대표적 백신 기업이었던 모더나(Moderna)는 이후 주가가 고점 대비 90퍼센트 이상 폭락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문제는 이런 움직임이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 몸을 이루는 핵심 분자인 mRNA에 대한 공격은 암 치료, 희귀 질환 유전자 교정 등 mRNA 기반 의학 연구 전반의 속도를 늦출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업계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한 업계 단체는 지난 8월 성명에서 “과학적 근거 없이 mRNA 기술을 비난하고 연구 지원을 끊는 것은 자신에게도 손해가 될 줄 알면서도 상대방에게 해를 주려는 어리석은 행동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린란드어 위키백과

위키백과(위키피디아)는 총 340개 언어판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올해 그 수가 하나 줄었다. 그린란드어 위키백과가 폐쇄됐기 때문이다.
이누이트 계열 언어인 그린란드어 사용자는 약 6만 명에 불과하며, 온라인 백과사전에 관심을 둔 사용자층은 훨씬 적었다. 이 때문에 많은 문서가 오류와 무의미한 문장으로 가득한 기계 번역물에 의존하게 됐다.
방문자가 거의 없는 웹사이트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태는 멸종위기 언어인 그린란드어에 ‘언어 붕괴의 악순환’을 불러올 수 있다. 잘못된 위키백과 문서가 새로운 AI 학습 데이터로 사용될 경우 언어가 더 빠르게 훼손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자들은 이러한 우려를 근거로 지난 9월 그린란드어 위키백과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테슬라 사이버트럭

필자가 일론 머스크의 사이버트럭을 둘러싼 혹평 대열에 뒤늦게 합류한 데는 이유가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이 과감한 디자인의 전기차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전기 픽업트럭이었다. 그래서 혹시 흥행으로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그러나 상황은 금세 달라졌다. 테슬라의 올해 판매량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인 약 2만 대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문제는 전기 픽업트럭 시장 전체가 침체돼 있다는 점이다. 12월 포드는 전기 픽업트럭 ‘F-150 라이트닝(Lightning)’ 생산 계획을 전면 철회했다.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자 머스크는 사이버트럭을 스페이스X처럼 자신이 운영하는 다른 기업의 법인 차량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대통령의 ‘쓰레기 코인‘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취임을 불과 며칠 앞둔 당선인 시절 ‘$TRUMP’라는 디지털 화폐를 출시했다. 홍보 자료에는 주먹을 불끈 쥐고 “싸우자, 싸우자, 싸우자”라고 외치는 그의 상징적 모습이 담겼다.
이는 실제 화폐가 아니라 밈코인으로 분류되는 일종의 ‘쓰레기 코인(shitcoin)’이었다. 밈코인은 대부분 실질적 가치가 없는 판매용 기념품에 가까우며, 거래할수록 손실을 보는 경우가 많다. 발행자는 이익을 챙기는 반면 구매자는 손해를 본다는 점에서 일각에서는 이를 ‘합의된 사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백악관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캐롤라인 레빗(Karoline Leavitt)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5월 “대통령이 직위를 이용해 사익을 취하고 있다는 주장은 미국 국민들이 보기에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논란을 일축했다.
애플의 ‘탄소 중립’ 워치

2023년 애플은 최초의 탄소 중립 제품이라며 배출량이 ‘제로’라는 시계를 공개했다. 재활용 소재와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고, 삼림을 보전하거나 대규모 유칼립투스 숲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여러 환경 단체와 전문가들은 이를 실질적인 환경 개선보다는 친환경적인 것처럼 보이기 위한 과장된 홍보, 즉 ‘위장 친환경 행위(greenwashing)’라고 지적했다. 올해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애플을 상대로 허위 광고 소송이 제기됐고, 독일 법원은 “상업용 유칼립투스 조림지가 실제로 이산화탄소를 안정적으로 저장한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애플은 해당 시계를 탄소 중립 제품이라고 광고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논란이 커지자 애플 마케팅팀은 한발 물러섰다. 최신 애플워치 포장에는 더 이상 ‘탄소 중립’이라는 문구가 들어가지 않는다. 다만 애플은 “지나친 문제 제기는 오히려 기후 대응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이러한 법적 공방은 실효성이 없을 뿐 아니라 기업의 신뢰할 만한 기후 행동을 막는 결과만 낳는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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