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밝혀내는 숨은 ‘심근경색’ 위험 신호
의사들이 가장 예측하기 어려워하던 심근경색의 위험을 인공지능이 조기에 찾아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며 새로운 진단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 의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뤘지만 인간의 심장은 여전히 예측하기 가장 어려운 영역이다. 언제, 누구에게 심근경색이 닥칠지는 지금도 명확히 알 수 없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검진도 받지 않은 채 위험을 안고 살아간다.
최근 번커힐 헬스(Bunkerhill Health), 나녹스 AI(Nanox.AI), 하트렁 테크놀로지스(HeartLung Technologies) 같은 스타트업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이용해 수백만 건의 CT 영상을 분석하고, 그 안에서 심장 질환의 조기 징후를 찾아내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오래된 의료 장비를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해 심근경색 고위험군을 조기에 선별할 수 있다면 공중보건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혁신이 될 수 있다. 다만 이 기술은 아직 대규모 임상을 통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으며,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떻게 적용할지, 또 ‘질병’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에 대한 근본적인 과제도 남아 있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약 2,000만 명이 교통사고 후유증 확인이나 폐암 검진을 위해 흉부 CT를 촬영했다. 이 영상에는 종종 심근경색 위험을 알려주는 관상동맥 석회화(coronary artery calcium, CAC) 흔적이 나타나지만, 방사선 전문의가 작성한 판독 보고서에는 골절, 내상, 암 여부 등 주요 질환을 우선적으로 확인하느라 이러한 징후가 묻히거나 언급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CAC 전용 검사는 심근경색 위험을 예측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임에도 여전히 널리 활용되지 않고 있다. 관상동맥의 내벽에 쌓이는 콜레스테롤, 지방, 염증 등이 굳어져 생긴 경화반(plaque)은 수십 년에 걸쳐 지방질에서 석회질로 변하며 일종의 ‘생애 주기’를 거친다. 경화반이란 혈관 내벽에 쌓이는 지방, 콜레스테롤, 칼슘, 염증 세포 등이 혼합된 덩어리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 심근경색은 석회화된 경화반이 아니라 지방이 많은 초기 단계의 경화반이 갑자기 파열되면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염증 반응이 일어나 혈전이 생기고 결국 혈류가 막히는 것이다. 석회화된 경화반은 비교적 안정적이지만, CAC가 발견됐다는 것은 아직 파열 위험이 높은 초기 경화반이 함께 존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흉부 CT에서는 종종 관상동맥 석회화가 관찰되며, 그 농도는 육안으로도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CAC 수치를 산출하려면 심장 전용 CT 검사가 필요하지만 일상적으로 촬영되는 흉부 CT에서 CAC 수치를 계산해주는 알고리즘이 상용화된다면 이 지표에 대한 접근성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런 알고리즘은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를 감지해 환자와 의사에게 경고를 보내고, 추가적인 진료를 받도록 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현재 AI를 이용해 CAC 수치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은 아직 규모는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이 확산되면 기존 의료체계에서 놓치기 쉬운 고위험군이나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환자를 조기에 발견할 가능성이 커진다.
과거에는 CAC 검사가 실질적인 효과가 거의 없다고 여겨졌고, 건강에 대한 불안이 큰 사람들을 대상으로 마케팅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도 대부분의 미국에서는 보험사가 CAC 검사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인식이 변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전문가 단체가 심혈관 질환 위험도를 보다 정밀하게 평가하고, 콜레스테롤 약 복용을 주저하는 환자들에게 치료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CAC 검사를 권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AI가 산출한 CAC 수치는 방대한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기존에는 포착되지 않던 질환을 찾아내려는 의료계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이 아무리 유망해 보여도 해결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예를 들어 CAC 수치는 모든 인구를 대상으로 한 선별검사 도구로서의 효과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2022년 덴마크에서 시행된 인구 기반 CAC 검사 프로그램 연구에서도 사망률 개선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만약 AI가 이런 정보를 자동으로 제공하게 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까? 이 기술이 널리 도입되면 비정상적인 CAC 수치가 흔히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이런 결과를 누가 후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까? 번커힐 헬스(Bunkerhill Health)의 니시스 칸드왈라(Nishith Khandwala) 공동창업자는 “현재 많은 의료 시스템은 대규모로 우연히 발견된 높은 석회화 수치에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표준화된 절차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처리하려 하면 효과보다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AI가 산출한 수치가 실제로 환자 치료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남아 있다. 증상이 있는 환자의 경우 CAC 수치가 0이라면 잘못된 안도감을 줄 수 있다. 반대로 증상이 없는 환자에게서 높은 CAC 수치가 나올 경우 이후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콜레스테롤 억제제인 스타틴(statin) 외에 리파타(Repatha)나 PCSK9 억제제 같은 고가의 콜레스테롤 저하제가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오히려 일부 환자들이 불필요한 고비용 시술을 선택해 부작용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AI가 산출한 CAC 수치는 미국 내 고령자와 장애인을 위한 공적 의료보험인 메디케어(Medicare)나 대부분의 민간 보험에서 별도의 의료 행위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기술의 사업적 근거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왜곡된 유인 구조’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면 이런 접근은 우리가 ‘질병’을 정의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보스턴의 베스 이스라엘 디커니스 메디컬 센터(Beth Israel Deaconess Medical Center)에서 근무하는 의사이자 AI 전문가인 애덤 로드먼(Adam Rodman)은 “AI가 산출한 CAC 수치는 1980년대 CT 검사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상 징후를 뜻하는 ‘우연종(incidentaloma)’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두 경우 모두 특정 문제의 원인을 찾기 위해 의사와 환자가 계획적으로 검사를 진행하던 기존의 진단 체계를 근본적으로 흔들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다만 로드먼은 “우연종은 여전히 인간이 직접 영상을 판독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우리는 알고리즘이 자체적인 기준으로 질병을 정의하는 ‘기계 기반 질병 분류(machine-based nosology)’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기계가 더 많은 진단을 내리게 되면 인간이 놓쳤던 질병의 징후를 포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로드먼은 “앞으로는 진단의 격차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고성능의 상용 알고리즘을 사용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정확도가 떨어지는 대안을 쓸 수밖에 없는 이중 진단 체계가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다.
위험 요인이 없거나 정기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지 않는 사람에게는 AI가 산출한 CAC 수치가 잠재적인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진단의 방향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가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되고, 그에 따라 어떤 조치가 취해지며, 결국 환자의 건강 상태를 개선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지금으로서는 환자와 AI 판독 결과 사이에서 최종 판단을 내리는 의료진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
이 글을 쓴 비샬 케트팔(Vishal Khetpal)은 심혈관계 질환 전문의 펠로우이다. 이 기사에서 밝힌 내용은 그가 속한 기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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