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핵융합 발전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이한 현상
핵융합 발전 분야는 구상만으로 이미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러나 점점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핵융합 기술에 의존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미국의 핵융합 기업인 커먼웰스퓨전시스템즈(Commonwealth Fusion Systems, 이하 ‘커먼웰스’)가 버지니아주에 건설 예정인 첫 상업용 핵융합 발전소에서 전력을 구매할 또 다른 고객사를 확보했다고 9월 말 발표했다. 해당 시설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구매하기 위한 10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기업은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에니(Eni)였다.
그러나 사실 핵융합 발전에 필요한 ‘핵융합로’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커먼웰스가 자사의 토카막(tokamak). 즉 핵융합 발전에서 초고온 플라스마를 가두는 장치 설계가 의도한 대로 작동하는지 실증하기 위해 건설 중인 소형 핵융합로도 마찬가지다.
핵융합 발전 분야는 현재 ‘이상한’ 국면에 접어들었다. 투자자들은 발전소 건설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으며, 일부 기업들은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발전소에서 전력을 구매하겠다며 거대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기업들이 실제로 가동하여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핵융합로를 완성하기도 전에 벌어지고 있다. 물론 신기술 개발에는 자금이 필요하지만 이처럼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면 핵융합 발전 기술에 대한 기대가 왜곡될 수도 있다.
거의 3년 전 미국의 로런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awrence Livermore National Laboratory) 산하 국립점화시설(National Ignition Facility)은 핵융합 에너지 분야에서 매우 중대한 성과를 달성했다. 과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레이저를 사용해 연료를 1억℃까지 가열하는 데 성공했고, 연료 속 수소 원자들이 융합되면서 투입된 레이저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방출한 것이다.
국립점화시설의 실험 결과로 핵융합 발전 분야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 실험으로 핵융합로가 순에너지(투입한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 생산)를 달성할 수 있음이 마침내 증명됐다. 물론 이전에 플라스마 물리학자들이 모델 연구를 통해 핵융합로의 가능성을 제안한 바 있지만, 이를 현실에서 실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그러나 국립점화시설의 성과는 상업용 핵융합 발전 분야에는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해당 시설의 레이저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소모했고, 실험 환경은 극도로 복잡했으며, 실험의 전체 과정도 찰나의 순간 동안 지속됐을 뿐이었다. 핵융합 발전소를 실현하려면 순간적으로 순에너지를 달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느 정도 지속성이 있어야 하며, 무엇보다도 경제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따라서 국립점화시설의 실험 성공 소식 이후 모든 시선은 커먼웰스, 헬리온 에너지(Helion Energy), 잽 에너지(Zap Energy)와 같은 기업들로 향했다. 사람들은 상업적으로 실현 가능한 핵융합로의 가능성을 누가 먼저 증명할 것인지, 또는 거기서 더 나아가 누가 가장 먼저 핵융합 발전소를 건설하고 가동시킬 것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그런 성과를 달성하지 못했다.
어떤 면에서는 많은 핵융합 기업들이 기술적 진전을 이뤘다. 커먼웰스는 고온 초전도 자석을 제작하고 테스트한 뒤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잽 에너지는 시험 시스템에서 3시간 연속 가동을 시연했고 이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검증한 성과다. 헬리온 에너지는 7월 워싱턴주에 발전소 건설을 시작했다. (중국에서는 정부 지원으로 핵융합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이는 모두 중요한 성과이며, 이들 외의 다른 기업들도 많은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버클리 대학교의 에드 모스(Ed Morse) 원자력공학 교수가 필자에게 했던 말처럼, 아직 그 누구도 핵융합로를 보유하지 못했다. (모스 교수가 언급한 대상은 커먼웰스였지만, 사실 나머지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투자금은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커먼웰스는 올해 초 8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조달했으며, 이제는 건설 예정인 발전소에서 전력을 구매하겠다는 대형 고객사 두 곳과 계약을 체결했다.
아직은 구상에 불과한 핵융합로에서 전력을 구매하겠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 브레이크스루 연구소(Breakthrough Institute)의 애덤 스타인(Adam Stein) 원자력 에너지 혁신 분야 책임자는 “잠재적 구매자들의 관점에서 해당 계약은 양측에 이익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에니가 커먼웰스에 대한 신뢰를 표명하면, 커먼웰스가 실제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에니는 커먼웰스에 직접 투자하고 있으므로, 커먼웰스가 성공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스타인 책임자는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자본을 좋은 조건으로 조달할 수 있다면, 결국 에니가 구매하게 될 전력이 더 저렴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핵융합 분야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러한 막대한 자금을 화석연료 기업과 기술 대기업들이 제공하고자 한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다만 외부에서 이러한 대규모 투자를 어떻게 해석할지가 우려될 따름이다.
크리스 라이트(Chris Wright) 미국 에너지부 장관은 핵융합 기술을 지지하며 기대를 품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9월 초 그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핵융합이 곧 전 세계에 전력을 공급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핵융합 발전 분야에 큰 기대감을 품은 사람은 이 외에도 많이 있으며, 실제로 핵융합은 흥미로운 기술이다. 그러나 엄청난 투자금에도 불구하고 핵융합 산업이 여전히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라이트 장관이 핵융합 발전을 칭송하는 동안 트럼프 행정부는 풍력과 태양광을 포함한 다른 에너지 기술에 대한 지원을 대폭 삭감하고 있으며, 이들의 안전성, 비용, 효율성에 대한 허위정보를 유포하고 있다.
점차 증가하고 있는 전력 수요를 충족하고 발전 분야의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려면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 실제로 존재하는 수많은 대안이 있는데도 검증되지 않은 미래 에너지 기술에만 모든 희망을 거는 것은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는 위험한 행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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