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연구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이유
오늘날 세상을 움직이는 혁신은 단기 성과 중심의 제품 개발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이어진 기초과학 연구가 일궈낸 결실이다.
벨 전화 연구소(Bell Telephone Laboratories)의 물리학자 존 바딘(John Bardeen),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은 1947년 12월 얇은 금선과 반도체 물질로 알려진 게르마늄을 이용해 작은 전자 장치를 제작했다. 이 발명품은 훗날 ‘트랜지스터’라 불리게 되었고, 1956년 이들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다. 전기 신호를 증폭하고 전환할 수 있었던 트랜지스터는 당시 대부분의 전자기기에 사용되던 크고 깨지기 쉬운 진공관을 대체하며 전자공학의 판도를 바꿨다.
그들이 처음부터 특정 제품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반도체에서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게르마늄 결정에서의 표면 상태와 전자 이동성을 실험했을 뿐이다. 그들은 수개월간의 시행착오와 개선 과정을 거치며 양자역학에서 얻은 이론적 통찰을 고체물리학의 실험과 결합했다.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기초적이고 학문적이며 수익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질 수 있는 연구였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결국 오늘날의 정보화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트랜지스터의 중요성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 컴퓨터, 인공위성, MRI 스캐너, GPS 시스템, 인공지능(AI) 플랫폼 등 거의 모든 기술의 토대가 되고 있다. 빠른 속도로 전류를 제어하고 경로를 조절하는 트랜지스터의 기능은 현대뿐 아니라 미래의 컴퓨팅과 전자공학에 없어서는 안 될 핵심 요소이다.
이러한 혁신은 사업 계획이나 제품 제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호기심이 이끄는 개방적 연구와 실용화 노력, 그리고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노력의 가치를 존중하는 기관의 지원이 빚어낸 결실이었다. 수년에 걸친 시행착오와 학문 간 협업, 비록 성과가 보장되지 않더라도 자연을 이해하는 일이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47년 말 최초의 성공적인 시연 이후, 벨 연구소는 특허 출원과 추가 개발을 진행하면서 트랜지스터 발명을 비밀에 부쳤다. 이 발명은 1948년 6월 30일 뉴욕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상에 공개되었고, 이후 <피지컬 리뷰(Physical Review)>에 실린 기념비적인 논문을 통해 그 과학적 원리를 설명했다.
트랜지스터는 어떻게 작동할까? 기본적으로 트랜지스터는 반도체로 만들어지며, 초기에는 게르마늄이, 이후에는 실리콘이 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재료는 구조와 전하를 미세하게 조작함으로써 전기를 통과시키거나 차단할 수 있다. 일반적인 트랜지스터에서는 장치의 한 부분(게이트)에 작은 전압을 가하면, 다른 부분(채널)을 흐르는 전류의 흐름이 허용되거나 차단된다. 바로 이 단순한 제어 메커니즘이 수십억 배로 확장되면서 휴대전화로 앱을 실행하고, 노트북에서 이미지를 처리하며, 검색 엔진이 밀리초 단위로 답을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초기의 트랜지스터는 게르마늄을 사용했지만, 연구자들은 곧 실리콘이 산업적 생산에 훨씬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리콘은 열에 더 강하고 습기를 잘 견디며, 매장량도 훨씬 풍부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50년대 후반에는 실리콘으로의 전환이 본격화되었고, 이는 집적회로의 개발과 오늘날의 디지털 세계를 움직이는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발명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손톱만 한 크기의 칩 하나에는 수백억 개의 실리콘 트랜지스터가 들어 있으며, 각각의 크기는 대부분의 바이러스보다도 작은 나노미터 수준이다. 이 미세한 스위치들은 초당 수십억 번씩 켜졌다 꺼지면서 연산, 데이터 저장, 음향 및 영상 처리, AI에 필요한 전기 신호의 흐름을 제어한다. 이는 오늘날 사용되는 거의 모든 디지털 기기의 기본적인 구조를 이룬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산업 규모는 5천억 달러(약 695조 원)를 넘어섰다. 물리학 연구실에서 실험용 시제품으로 출발한 장치가 이제는 경제, 국가 안보, 의료, 교육, 그리고 전 세계적 소통을 떠받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나 트랜지스터의 탄생 스토리는 우리가 잊기 쉬운 더 깊은 교훈을 담고 있다.
트랜지스터 기술 발전을 이끈 기초 지식의 상당 부분은 연방정부가 지원한 대학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1950년대 벨 연구소에서 진행된 트랜지스터 연구 가운데 약 4분의 1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나머지 연구비 중 상당 부분도 미국 전화 시스템을 독점하던 AT&T가 벌어들인 수익으로 충당되었다.
1945년 배너버 부시(Vannevar Bush)가 트루먼 대통령의 요청으로 작성한 보고서 <과학: 끝없는 개척지(Science: The Endless Frontier)>는 미국 정부가 기초 연구에 투자하는 오랜 전통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러한 투자는 원자력과 레이저에서 의료 기술과 AI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과학 분야에서 꾸준히 결실을 맺어 왔다. 또한 기초 연구를 통해 학습한 여러 세대의 학생들은 대학 연구실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기존 기술의 한계를 뛰어넘는 발전을 이끌어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초 과학 연구와 이를 수행할 인재 교육을 위한 재정 지원은 점차 압박을 받고 있다. 새 행정부가 제안한 연방 예산안에는 에너지부(DOE)와 국립과학재단(NSF)에 대한 대규모 예산 삭감이 명시되어 있으며(의회가 이를 수정할 가능성은 있다), 국립보건원(NIH)은 이미 19억 달러(약 2조 6,400억 원) 이상의 연구 보조금을 취소하거나 보류했다. 또한 NSF의 STEM 교육 프로그램도 7억 달러(약 9,700억 원) 이상 삭감되었다.
그 결과 일부 대학은 대학원 신입생 선발을 중단하고, 인턴십을 취소하며, 여름 연구 기회를 축소해야 했다. 이는 젊은 세대가 과학과 공학 분야에서 경력을 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단기적 성과와 즉각적인 수익만을 좇는 시대에 수십 년 후에야 결실을 맺을지도 모르는 연구를 정당화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연구야말로 미래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반드시 지원해야 하는 영역이다.
‘인공지능’이라는 용어를 만든 수학자 겸 컴퓨터 과학자인 존 매카시(John McCarthy)의 사례를 떠올려 보자. 그는 1950년대 후반 MIT에서 최초의 AI 연구 그룹 중 하나를 이끌며 오늘날까지 과학 연산 및 AI 응용 분야에서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 리스프(Lisp)를 개발했다. 당시에는 실용적인 AI가 요원해 보였지만, 그러한 초기 기초 연구는 오늘날 AI 중심의 세상을 가능하게 한 초석이 되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초기 열기가 식은 뒤, 신경망은 소위 ‘AI 겨울(AI winters)’이라 불리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대중적 관심에서 멀어졌다. 제한된 데이터, 부족한 연산 능력, 이론적 한계로 인해 발전이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제프리 힌턴(Geoffrey Hinton)과 존 홉필드(John Hopfield) 같은 연구자들은 연구를 이어갔다. 202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홉필드는 1982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SA)>에 실린 논문에서 혁신적인 신경망 모델을 최초로 제시했다. 그의 연구는 집단적 연산과 무질서한 자기계의 동작 사이의 깊은 연관성을 밝혀냈다. 이러한 기초 연구는 같은 해 노벨상을 받은 힌턴을 포함한 다른 동료들의 연구와 함께 오늘날의 딥러닝 혁명의 씨앗이 되었다.
오늘날 신경망이 발전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이유는 당초 게임용으로 설계되었지만 현재는 AI의 대규모 행렬 연산에 사용되는 그래픽 처리 장치(GPU) 덕분이다. 이러한 칩들 역시 수십 년간 축적된 재료과학과 고체물리학의 기초 연구에 의존하고 있다. 고유전율 소재, 변형 실리콘 합금과 같은 연구가 없었다면 지금의 초효율 트랜지스터 개발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멤리스터, 상변화 및 2차원 소재, 스핀전자소자(spintronic device)와 같은 새로운 영역을 탐구하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지금 이 글을 휴대전화나 노트북으로 읽고 있다면 여러분은 누군가가 호기심을 바탕으로 감행한 모험의 결실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대학과 연구실에서는 겉보기에는 따분하거나 때로는 난해해 보이는 연구들이 조용히 진행되며, 50년 후 우리 삶의 주요 영역을 바꿀 혁명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필자가 편집인으로 몸담고 있는 주요 물리학 저널에서도 각 논문마다 연구자들의 끈질긴 노력과 헌신을 확인할 수 있다. 엔비디아(Nvidia),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아마존, 알파벳(Alphabet) 같은 대기업이 이끄는 현대 경제는 소박한 트랜지스터와 지식에 대한 열정을 지닌 과학자들의 호기심 없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개발될 트랜지스터는 더 이상 스위치처럼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양자 소재, 유무기 혼합 소재, 계층적 구조 소재 같은 신소재로 개발되거나 아직 상상조차 하지 못한 새로운 도구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한 전제 조건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탄탄한 기초 지식, 충분한 연구 자원, 호기심과 협력을 기반으로 한 자유로운 탐구,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이들의 재정적 지원이다.
이 글을 쓴 줄리아 R. 그리어(Julia R. Greer)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교의 재료 과학자다. 그녀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의 ‘35세 이하 혁신가’로 선정(2008년)된 바 있으며 현재는 해당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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