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용만으로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이유
플라스틱을 생산하면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어릴 적 공주 그림이 그려진 칫솔을 썼던 기억이 있다. 보라색과 청록색이 섞인 칫솔 손잡이가 반짝이로 장식돼 있었다. 아마 그 칫솔도 지금까지 만들어진 대부분의 플라스틱 제품처럼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쓰레기 매립지에 파묻혀 있거나, 그러지 않길 바라지만 바닷속에 버려져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 유엔(UN)의 플라스틱 협약 논의가 결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문득 그 칫솔에 대한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플라스틱 폐기물을 해결하기 위한 구속력 있는 협약을 만들기 위해 각국이 모였으나 어떤 합의도 도출하지 못한 채 협상은 끝이 났다.
플라스틱은 환경 오염의 거대 원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플라스틱이 기후변화에도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글에서는 협상이 결렬된 이유와 앞으로 플라스틱과 관련된 배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살펴볼 것이다.
사실 필자는 다른 글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어느 정도 옹호한 적이 있다. 플라스틱은 놀라울 만큼 유용한 재료로, 안경 렌즈부터 링거 주머니까지 모든 제품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하지만 우리가 플라스틱을 생산하고 사용하는 속도는 그야말로 광적인 수준이다. 1950년 이후 플라스틱 생산은 매년 평균 9%씩 증가해 왔고, 2019년에는 4억 6천만 톤에 달했다. 이 가운데 매년 약 5천2백만 톤이 환경에 버려지거나 소각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엔 환경총회는 2022년 3월 플라스틱 오염을 해결하기 위한 국제 협약을 마련하기로 했다. 바다에 둥둥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쁘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 협상을 거치면서, 플라스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어떤 방식으로 개입해야 할지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바로 플라스틱의 ‘전 생애주기(full life cycle)’라는 표현이었다. 이는 플라스틱의 생산부터 폐기까지의 전 과정 중 수거와 재활용 등의 마지막 단계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모든 단계를 다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에 플라스틱의 생산 자체에 제한을 두자는 움직임이 있었고, 총회 일각에서는 일회용 플라스틱을 금지하는 논의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협상 자리에서 석유 생산국들은 생산 제한에 강력히 반대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대표들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플라스틱 생산 제한은 협상 범위를 벗어난다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 역시 협상을 지연시키고 플라스틱의 전 생애주기를 언급한 조항을 협약에서 삭제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 수출국들은 플라스틱을 둘러싸고 입장이 뚜렷하다. 석유, 천연가스, 석탄 등이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 필요한 에너지원이기도 하지만 원재료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놀랍게도 전 세계 석유 수요의 12%, 천연가스 수요의 8% 이상이 플라스틱의 생산에 쓰이고 있다.
이는 곧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로 이어진다. 로렌스 버클리 국립연구소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플라스틱 생산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2억 4천만 톤으로 전 세계 총배출량의 약 5%에 해당했다.
앞으로 전망은 더 어둡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발표한 자료에서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이 현재 약 20억 톤에서 2060년 40억 톤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추정했다.
2060년까지 플라스틱으로 인한 배출량은 두 배 이상 커질 수 있다

파랑 : 생산 및 전환 / 분홍 : 폐기 단계
이산화탄소 배출량(백만 톤)
Source: Organis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
이 그래프를 보고 받은 충격이 무색하게, 플라스틱 협약 협상은 결론 없이 끝났다.
재활용은 폐기 단계에 있어 훌륭한 수단이다. 앞으로 이와 관련된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면 더 많은 플라스틱을 더욱 편리하게 재활용할 수 있게 될지 모른다.
다만 플라스틱의 폐기 단계에만 집중해서는 이것이 기후 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해결할 수 없다. 플라스틱에서 나오는 배출 대부분이 생산 단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석유와 가스를 피할 수 있도록, 다른 원료와 연료를 사용해 플라스틱을 만드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한다. 또한 생산되는 플라스틱의 양 자체를 더 현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플라스틱 협약이 완전히 무산된 게 아니라 당분간 보류 상태일 뿐이라는 것이다. 관계자들은 협상을 재논의하려는 노력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생산된 플라스틱 중에서 재활용된 것은 10%도 채 되지 않는다. 물 한 병, 몇 번 입고 버린 폴리에스터 셔츠, 어린 시절 쓰던 공주 칫솔이든 간에, 그것들은 여전히 매립지나 지구 어딘가에 남아 있다. 아마 누구나 이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점도 잊지 말자. 그 플라스틱을 만들면서 배출된 온실가스 역시 여전히 대기 중에 남아 기후변화를 가속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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