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반 뚫는 ‘에너지 빔’으로 지열 발전 혁신 나선 콰이즈
지열 에너지 스타트업 콰이즈는 밀리미터파 에너지를 활용해 바위를 뚫는 새로운 방식으로 지열 에너지 활용의 한계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지열 에너지 스타트업 콰이즈(Quaise)가 기존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굴착 기술을 시험 중이다. 밀리미터파 드릴에서 발사된 고에너지 빔으로 바위를 녹여 뚫는 방식으로, 콰이즈는 이 기술이 지열 발전의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넓히는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필자는 텍사스 휴스턴 외곽의 한 채석장에서 콰이즈의 실험 현장을 직접 찾았다. 개조된 트레일러 안에서 지켜본 바로는 평범한 박스 트럭에 실린 밀리미터파 드릴이 현무암 덩어리에 구멍을 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분도 채 되지 않았다. 뜨거운 에너지 빔이 바위를 강타하자 표면이 환히 빛났고, 파편이 튀고 불꽃이 흩날렸으며, 강한 공기압에 흙먼지가 소용돌이쳤다. 실험이 끝난 뒤 트레일러 밖으로 나와보니 바위 표면에는 고온에 녹은 자국이 유리처럼 검게 굳어 있었다.
지구 내부에 존재하는 고온의 열에너지를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 방식인 지열 발전은 일반적으로 지표 가까이에 열원이 존재하고 지질 조건이 적절한 지역에서 가장 효과적이다. 아이슬란드나 미국 서부처럼 지열 활용에 최적화된 지역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론적으로 충분히 깊이 파고들 수만 있다면 지구 어디에서든 지열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제는 그 깊이에 있다. 발전에 필요한 고온에 도달하려면 지하 수 킬로미터 이상을 파고들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화강암처럼 단단한 암반층을 뚫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콰이즈가 내놓은 해법은 기존의 금속 드릴로 암석을 긁어내는 전통적인 방식 대신 고주파 전자기파를 이용하는 ‘자이로트론(gyrotron)’을 활용하는 것이다. 자이로트론은 원래 핵융합 발전에서 플라스마를 섭씨 1억 도 이상으로 가열하는 데 사용되는 장비지만, 콰이즈는 이를 통해 암석을 녹이고 기화시켜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응용하고 있다.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굴착 속도는 빨라지고 비용은 낮아져 지열 발전을 사실상 ‘전 지구적 자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콰이즈의 설명이다.
2018년 설립된 이 회사는 실험실이라는 통제된 환경에서 해당 기술의 작동 가능성을 이미 입증했다. 최근에는 휴스턴 본사 뒤뜰 등 보다 현실적인 조건의 실외 환경에서도 시험을 마쳤다. 이제 콰이즈는 실험실 단계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 자이로트론 드릴을 본격적으로 시험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콰이즈가 기대하는 만큼 기술 혁신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시선을 보낸다. 콰이즈는 올해 대규모 투자 유치에 나섰지만 전반적인 경기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 흐름이 위축되고 있다. 여기에 기후 기술 전반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고, 관세 등의 정책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산업 전반은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콰이즈의 이 과감한 시도는 오랜 역사를 가진 재생 에너지 자원인 지열을 다시금 가속화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은 그 구상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좌우할 결정적인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돌파의 순간
매튜 하우드(Matthew Houde) 콰이즈의 공동 창업자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열 업계에서는 지구 내부에 저장된 에너지만으로도 수만 년, 어쩌면 수십만 년 동안 인류의 에너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그 이후에는 핵융합 같은 대체 에너지원이 준비돼 있을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우리가 존재한다면 말이다”라고 말했다.
하우드 COO는 “지금은 기존 굴착 기술로 고온에 도달할 수 있는 일부 지역에서만 지열 발전이 가능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이 기술을 더 깊은 곳까지 확장해 어디에서든 지열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라며 “핵심은 깊이이고, 시추 깊이를 10~20킬로미터까지 확대할 수 있다면 초고온 지열을 전 세계 어디서든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술적으로는 이론상 가능하지만 인류가 실제로 그 깊이까지 땅을 판 사례는 극히 드물다. 1970년 구소련이 시작한 한 연구 프로젝트가 지하 12킬로미터까지 도달한 적은 있지만, 이 작업에는 거의 20년이 걸렸고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다.
하우드 COO는 “우리는 시추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암석을 시간당 3~5미터의 속도로 안정적으로 뚫을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라고 밝혔다.
이러한 굴착 속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은 단단한 암반층에서 발생하는 ‘비생산적인 시간’이다. 드릴 비트가 마모되거나 장비가 손상되면 지하 깊은 곳까지 내려간 장비를 다시 지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면 굴착 효율은 급격히 떨어진다.
콰이즈가 제시한 해법은 ‘자이로트론’이다. 이 장치는 밀리미터파라고 불리는 고주파 에너지를 방출한다. 파장은 마이크로파와 적외선 사이에 위치하며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마치 레이저처럼 작동한다.
콰이즈는 이 밀리미터파를 이용해 암석을 가열하고 녹여 없애는 방식으로 굴착을 시도하고 있다. 자이로트론에서 나온 에너지는 속이 빈 금속관인 웨이브가이드를 통해 원하는 지점에 집중된다. 이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운 기술적 과제 중 하나는 초고온 상태의 이온화된 플라스마가 생성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이다. 플라스마는 에너지를 소모할 뿐 아니라 웨이브가이드처럼 민감한 핵심 장비를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굴착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추 장치의 웨이브가이드 끝을 목표 암석에서 약 30센티미터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자이로트론으로 약 1분간 밀리미터파를 쏜다. 이 에너지는 웨이브가이드를 따라 암석에 도달해 표면을 급격히 가열하며, 암석은 깨지거나 녹고, 때로는 기화되기도 한다.
자이로트론의 빔이 멈추면 웨이브가이드 끝에 장착된 드릴이 암석 표면으로 내려와 회전하면서 깨진 조각과 녹아내린 잔여물을 긁어낸다. 이후 압축 공기가 이 부스러기들을 지상으로 날려 보내며,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실제로 암석을 뚫는 건 밀리미터파 에너지이고, 드릴과 압축 공기는 녹거나 부서진 잔여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맡는다.
콰이즈는 이 시스템이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휴스턴 본사에서 시연했다. 실험에 사용된 장비는 규모가 작아 일반적인 건설 현장에서 기초 파일을 박거나 연구용 지질 샘플을 채취할 때 쓰는 장비와 유사해 보였다. 자이로트론은 총 100킬로와트의 출력을 내며, 내부 초전도 자석은 섭씨 영하 200도에 가까운 극저온까지 냉각된다. 굴착 과정에서 발생한 암석 파편은 필터 시스템을 통해 포집된다.
콰이즈는 이 실험 장비를 본사에서 철수한 뒤 텍사스 중부의 한 채석장으로 옮겨 본격적인 야외 실험에 돌입했다. 지난 7월 이곳에서 해당 장비를 이용해 깊이 100미터에 이르는 굴착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롤랜드 혼(Roland Horne) 스탠퍼드대학교 지열 연구 프로그램 책임자에 따르면 비기계식 굴착 기술을 개발한 것은 콰이즈가 처음은 아니다. 혼은 “암석을 태워 구멍을 내는 방식은 확실히 인상적이지만 그것만으로 시추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라며 “굴착 장비가 실제 지하 환경에서 작동하려면 극한의 고온과 고압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콰이즈는 지금까지 금속 케이싱 안의 암석 기둥이나 채석장의 암반을 대상으로 굴착을 시연하며 기술력을 입증해 왔다. 하지만 실험실이나 통제된 야외 환경에서 예측 가능한 재료를 뚫는 것과 수 킬로미터 깊이의 실제 지열 시추공을 만들어내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큰 간극이 존재한다.
넘어야 할 과제
콰이즈는 지난 4월 투자사이자 기술 협력사인 네이버스(Nabors)가 보유한 석유·가스 시추 장비에 자사의 두 번째 100킬로와트급 자이로트론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통합했다. 해당 장비는 보통 교육용이나 엔지니어링 개발을 위한 시추 설비로 활용되며 콰이즈의 실험실에서 멀지 않은 네이버스 본사 부지 내 여러 시추 장비 옆에 설치돼 있다. 높이 약 55미터에 달하는 이 시추 장비는 주차장에서도 건물 너머로 그 위용이 보일 만큼 크다.
필자가 지난 4월 현장을 찾았을 당시 콰이즈는 자이로트론 장비 설치를 마친 뒤 초기 점검에 들어간 상태였다. 열반응 전용 종이에 짧은 시간 밀리미터파를 쏘아 장비 설정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이후 5월에는 통합 장비로 직경 약 10센티미터, 깊이 9미터의 굴착에 성공했고, 6월에는 12미터까지 시추 깊이를 늘렸다. 시추 대상은 실험을 위해 지하에 묻어둔 현무암 기둥이었다.
현재 콰이즈는 100킬로와트급 시스템을 기존 시추 장비와 채석장에서 시험 중이지만, 다음 단계는 이보다 10배 더 강력한 ‘1메가와트급’ 자이로트론 시스템이다. 직경 20센티미터 이상의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이 장비는 콰이즈 기술의 상용화를 위한 핵심 버전으로, 2026년부터 본격적인 현장 시추 테스트에 투입될 예정이다.
1메가와트급 시스템은 실제로는 3메가와트 이상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 자이로트론 자체뿐 아니라 냉각 장치, 밀리미터파 드릴에서 발생한 암석 먼지를 밖으로 내보내는 압축기 등 보조 장비를 가동하기 위한 전력까지 포함된다. 이 같은 전력 소모는 현재의 석유·가스 시추 장치와 비슷한 수준이다.
트렌튼 클라두호스(Trenton Cladouhos) 지열 자원 개발 담당 부사장은 “콰이즈는 현재 미국 오리건주 화산 지대 인근에 파일럿 지열 발전소를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이 프로젝트는 기존 방식의 굴착 기술을 사용할 예정으로 주요 목적은 콰이즈가 지열 발전소를 직접 설계하고 운영할 수 있음을 입증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콰이즈는 현재 탐사용 시추정을 건설 중이며 2026년에는 장차 전기를 생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생산정 시추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 발전소는 초기 몇 개의 우물만으로도 약 20메가와트의 발전 용량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지하 암석의 온도는 약 350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콰이즈는 이 파일럿 발전소를 이르면 2028년에 가동할 계획이다.
콰이즈의 카를로스 아라케(Carlos Araque) 최고경영책임자(CEO)는 “이번 오리건 프로젝트로 초고온 암석을 활용해 효율적으로 지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하고 싶다”며 “발전소 가동 이후에는 밀리미터파 기술을 활용해 기존 구멍을 더 깊이 뚫는 작업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추 테스트에서 콰이즈의 밀리미터파 기술이 화강암을 뚫고 들어가는 모습.
QUAISE
아라케 CEO는 “콰이즈가 향후 생산하게 될 에너지를 구매하겠다고 밝힌 고객들이 이미 일부 확보돼 있다”며 “구체적인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대형 테크 기업과 유틸리티 업체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출력이 더 큰 1메가와트급 자이로트론 테스트까지 마무리하려면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현재 기후 기술 산업 전반이 불확실성에 휩싸인 상황도 부담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를 부과하고 기후 기술에 대한 재정 지원을 줄이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열 기술은 다른 분야에 비해 비교적 영향을 덜 받고 있다.
콰이즈가 상업용 발전소 건설에 나서기 전 해결해야 할 기술적 과제도 남아 있다. 그중 하나는 ‘방향성 시추(direction drilling)’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현재 밀리미터파 드릴은 수직 방향으로만 굴착이 가능하지만, 오리건 프로젝트처럼 실제 지열 발전소를 건설하려면 다양한 방향으로 뚫을 수 있는 시추 기술이 필요하다.
연구소에서 검증된 기술을 실제 현장에 적용하는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 지열 에너지를 연구하는 제퍼슨 테스터(Jefferson Tester) 교수는 “이 정도 깊이에서 지열 발전을 추진하는 기업이 마주한 가장 큰 과제는 시추공을 장기간 안정적으로 유지해 발전소를 지속적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콰이즈의 기술은 매우 야심 차고 매력적이지만 지열 산업은 여전히 경제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결국 핵심은 비용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처럼 완전한 상용화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기술에 투자하는 경우 기술보다 먼저 투자자의 인내심이 바닥날 위험이 크다”고 덧붙였다.
콰이즈의 스티브 예스키(Steve Jeske) 프로젝트 매니저는 “우리는 ‘시추’라는 개념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 만큼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다”며 “불가능해 보였던 기술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이 놀랍고 흥미롭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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