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와 성운의 향연… 루빈 천문대, 첫 관측 이미지 공개
역대 최대 규모의 망원경이 설치된 베라 C. 루빈 천문대가 10년에 걸친 우주 관측 대탐사의 첫발을 내디뎠다.
베라 C. 루빈 천문대(Vera C. Rubin Observatory)가 촬영한 첫 이미지가 공개됐다. 수백 개의 사진을 합성해 얻은 이번 이미지에는 다채로운 은하와 성운이 담겨 있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퀸즈 대학교의 메그 슈왐(Meg Schwamb) 행성 과학자 겸 천문학자는 “지금이 바로 루빈 천문대의 새벽”이라고 평가했다.
그동안 루빈 천문대는 거대한 가능성을 지닌 관측 프로젝트로 주목받아 왔다. 우주의 가장 먼 곳에 숨겨진 은하들, 폭발하는 별, 별 사이를 떠도는 물체들, 그리고 지금껏 발견되지 않은 행성들을 찾아낼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탁월한 기술력 덕분에 그 잠재력을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지난 10년의 건설 기간 동안 이 프로젝트는 어디까지나 이론에 머물러 있었다. 슈왐은 “모든 것이 추상적이었던 시간”이라고 회고했다.
그리고 최근 그 가능성은 말 그대로 눈부신 실체를 드러냈다.
루빈 천문대가 포착한 우주는 이전 관측과는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은하를 둘러싼 흐릿한 물질의 구조나 은하 사이를 잇는 별빛의 다리 등 밤하늘의 다채로운 풍경이 정밀하게 담겨 있다. 워싱턴 대학교의 페드로 베르나르디넬리(Pedro Bernardinelli) 천문학자는 “정말 놀라운 이미지”라고 말했다.
루빈 천문대는 짧은 시간의 관측만으로도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소행성을 2,000개 이상 발견했다. 우리 태양계 안에서도 가장 어두운 구석에 숨어 있던 천체들을 탐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NSF-DOE 베라 C. 루빈 천문대
최근 공개된 이미지는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과 에너지부(DOE)의 지원을 받은 루빈 천문대는 앞으로 최소 10년에 걸쳐 관측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러나 이 순간 그리고 이 인상적인 첫 이미지는 지난 10여 년에 걸친 정교한 노력의 결실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기념할 만하다.
베르나르디넬리는 “루빈 천문대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현재”라고 말했다.
루빈 천문대는 암흑 물질(dark matter)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를 발견한 천문학자 고(故) 베라 루빈을 기려 명명되었다. 암흑 물질은 현재까지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물질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한 중력 효과를 통해 은하들을 결속시키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암흑 물질과 함께 우주의 팽창을 가속하는 암흑 에너지(dark energy) 또한 여전히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러한 문제는 단일한 연구 방법이나 특정 천체만의 분석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다.
이러한 배경에서 루빈 천문대는 밤하늘에서 변화하거나 반짝이는 모든 현상을 기록하도록 설계되었다. 칠레의 세로파촌(Cerro Pachón) 산맥에 위치한 이 천문대에는 3,200메가픽셀 디지털카메라(무게 약 3,200킬로그램)가 설치되어 있어 광범위한 밤하늘을 정밀하게 촬영할 수 있다. 집 크기의 반사경 구조물은 매우 멀고 희미한 별빛까지 포착하며 정교한 연결 장치와 피스톤 장치는 망원경이 빠르고 정밀하게 방향을 전환하도록 한다. 관측 작업은 다국적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대부분 자동화되어 있고, 수집된 이미지는 빠르게 처리되며, 새로운 천체가 감지될 경우 관련 천문학자에게 즉시 알릴 수 있다.
이러한 기술력 덕분에 루빈 천문대는 며칠에 한 번씩 밤하늘 전체를 촬영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은하 사이의 어두운 영역이나 이전에는 감지되지 않던 활동까지 포착할 수 있다. 유스라 알사이야드(Yusra AlSayyad) 루빈 천문대 영상처리 책임자는 “하늘은 정지된 공간이 아니다. 소행성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초신성은 폭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10년간 계속될 이 관측 작업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의 모습을 3차원 영화처럼 기록하게 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최초의 은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 은하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혹시 태양계 주변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행성은 없을까?’와 같은 수많은 천문학적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루빈 천문대가 처음 촬영한 우주는 예상대로 수많은 은하와 별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미지의 해상도, 범위, 깊이는 천문학자들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크리스토퍼 콘셀리스(Christopher Conselice)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 외은하 천문학자는 “이 이미지들은 정말 놀랍다. 매우 인상 깊다”고 감탄했다.
총 678장의 개별 촬영 이미지를 조합해 만든 사진에는 트리피드 성운과 라군 성운이 담겨 있다. 두 성운은 발광 가스와 먼지가 밀집되어 별이 탄생하는 영역이다. 또 다른 이미지에는 루빈 천문대가 관측한 처녀자리 은하단의 일부가 포착되었는데 상대적으로 가까운 소용돌이 은하는 파란빛을, 매우 먼 초기 은하들은 붉은빛을 띠고 있다.
이러한 이미지에 담긴 풍부한 세부 정보는 이미 과학적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콘셀리스는 “은하가 합쳐지거나 상호작용할 때 별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끌려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여러 은하에서 뻗어 나온 희미한 빛의 흐름은 은하 주변의 후광이나 은하 간 다리 형태로 나타나며 이들 은하의 과거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흔적이다.
이러한 이미지에는 초신성도 다수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초신성은 거대한 별이 생을 마감하며 폭발하는 현상으로, 행성과 생명체에 필요한 무거운 원소를 우주에 공급할 뿐 아니라 우주의 팽창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초신성을 연구하는 아나이스 몰러(Anais Möller) 호주 스윈번 공과대학교 천체물리학자는 “나는 아주 먼 은하에서 폭발하는 별을 찾는다”고 말했다. 초신성은 기존의 하늘 관측 자료에서도 많이 포착되었지만 해당 별이 어떤 은하에 속했는지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몰러는 “루빈의 뛰어난 해상도 덕분에 이제 폭발한 별이 어디서 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NSF-DOE 베라 C. 루빈 천문대
머나먼 우주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루빈 천문대는 우리 태양계 안을 빠르게 이동하는 소행성 2,104개를 새로 발견했다. 이 중에는 지구 궤도와 가까운 궤도를 도는 소행성 7개도 포함되어 있다. 인상적인 수치이지만 루빈 천문대에는 시작에 불과하다. 루빈 천문대는 불과 몇 달 안에 100만 개 이상의 새로운 소행성을 찾아내 현재까지 알려진 소행성의 총수를 두 배로 늘릴 것으로 기대된다. 향후 10년간의 조사 기간 동안 루빈은 근지구 소행성 8만 9,000개,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의 소행성 370만 개, 그리고 해왕성 너머의 얼음 천체 3만 2,000개를 식별할 것이다.
마리오 유리치(Mario Jurić) 워싱턴 대학교 천문학자는 “몇 시간 관측만으로 2,000개가 넘는 숨겨진 소행성을 발견하는 것은 루빈 천문대에 ‘아주 간단한 작업’이었다”며 “소행성들을 뚜렷이 관측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루빈 천문대의 태양계 종합 조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는 과학적 가치다. 이 바위와 얼음 덩어리들은 태양계 형성 초기의 잔재이며 천문학자들은 이를 통해 우리가 속한 우주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밝힐 수 있다.
둘째는 안전 문제다. 지구로 향하는 소행성 하나가 도시 하나 또는 여러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과학자들은 궤도를 바꾸거나 파괴할 수 있는 방어 기술을 개발 중이지만 위치를 알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루빈 천문대는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소행성을 식별함으로써 지구 방위 역량을 기존의 어떤 지상 망원경보다 효과적으로 강화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전반적으로 이번 루빈의 첫 관측 결과는 수많은 천문학자의 오랜 기대를 확실히 충족시켰다. 몰러는 “루빈은 기존 관측의 점진적 개선이 아니라 한 세대를 뛰어넘는 도약”이라고 평가했다. 이 엄청나게 효율적이고 거대한 관측소는 머지않아 과학계에 엄청난 양의 천문학적 발견을 쏟아낼 것이다. 이어 그는 “두렵기도 하지만 정말 기대가 된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10년은 숨 가쁘게 지나갈 것이다. 슈왐의 표현처럼 “루빈의 롤러코스터는 이제 막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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