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테크노 스릴러 영화에서 예측한 우리의 디지털 고립
어윈 윙클러 감독의 스릴러 영화 <네트>(1995)는 컴퓨터 화면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친구로 여기는 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 4월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CEO는 최근 다른 기술 억만장자들이 자주 그러는 것처럼 어떤 팟캐스트 방송에 출연해 장황한 설교를 늘어놓았다. 그는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는 ‘고독’ 문제에 대해 언급하면서 “미국인은 평균적으로 친구가 3명 미만인 것 같지만, 사람은 일반적으로 친구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며 “아마 15명 이상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인간 관계를 숫자로만 설명하는 것의 이상함을 눈치채기 전에 저커버그 CEO는 고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바로 ‘인공지능(AI) 친구’였다. 이상적으로는 메타에서 생성하는 AI 친구들 말이다.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요.”
-앤젤라 베넷, <네트(The Net)>(1995)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인 1995년 어윈 윙클러(Irwin Winkler) 감독의 테크노 스릴러 영화 <네트>(원제: The Net)가 개봉했다. 1995년은 흔히 할리우드가 인터넷을 ‘발견’한 해로 여겨진다. 이 영화의 주연 샌드라 불럭은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는 컴퓨터 전문가인 주인공 앤젤라 베넷 역을 맡았다. 어느 날 앤젤라는 우연히 컴퓨터 보안과 관련된 음모에 관해 알게 되고 삶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음모를 꾸민 자들이 앤젤라에 대한 각종 컴퓨터 기록을 조작해 삶을 체계적으로 파괴하기 시작한 것이다. 앤젤라의 직업은 물론이고 집, 재산, 심지어 신분까지도 완전히 지워진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앤젤라는 컴퓨터 기록 조작으로 신분을 지워버리기에 매우 적합한 삶을 살고 있다. 재택 근무를 하기 때문에 고객을 직접 만난 적도 없고, 어머니는 치매로 딸을 알아보지 못한다. 또한 모든 사회적 관계는 온라인 채팅방에만 존재하며 음식은 배달로만 해결하기 때문에 이웃들도 앤젤라의 얼굴조차 모른다. 앤젤라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동반자’는 눈앞에 있는 컴퓨터 화면뿐이다. 이처럼 이 영화의 설정 자체는 지나치게 극단적이기 때문에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생각해 봐요. 우리가 사는 세계는 모두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어요. 운전면허국 기록, 사회보장번호, 신용카드 기록, 의료 기록 등 모든 게 컴퓨터 안에 있죠. 모든 사람이 저장되어 있어요. 우리 모두에게 전자 정보로 이루어진 작은 그림자 같은 게 붙어 있는 거예요. 누군가 건드리기만을 기다리는 그런 그림자죠. 그리고 이미 누군가 제 그림자를 건드렸어요. 다른 사람들 것도 그렇게 될 거예요.”
-앤젤라 베넷, <네트>
<네트>의 ‘최종 보스’는 사이버 보안 소프트웨어 회사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훨씬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 두려움이 느껴진다. 만약 우리의 모든 데이터가 디지털화되어 있는데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보를 조작하거나 그걸 무기로 악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할리우드가 인터넷에 관심을 보인 이 시기는 흔히 ‘테크노포비아(기술공포증) 스릴러의 시대’라고 불리지만, 사실 이보다는 ‘기술 회의론적 시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이 시대의 영화들은 신기술에 대해 전반적으로 긍정적이고 열광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결국 주인공이 위기를 극복할 때도 신기술이 거의 늘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러한 영화들이 진짜로 우려한 것은 신기술을 통제하는 인간이었다. 따라서 그들에게 어떤 감시와 제약을 가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주제였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시점에서 영화 <네트>의 예측이 가장 잘 맞아떨어진 부분은 바로 앤젤라 베넷이 겪는 ‘디지털 소외’ 현상이다. 영화에서 앤젤라의 신분이 도용되는 상황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고안한 장치들은 이제 우리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우리는 은행 업무, 쇼핑, 식사, 업무, 사회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직접 만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코로나19 봉쇄 기간에는 그런 고립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기도 했다. 코로나 시기를 겪은 젊은 세대는 다른 사람과 직접 대면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2023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고독’이 세계적으로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건강 위협이라고 선언하면서, 노인 4명 중 1명이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고 청소년의 5~15%가 고독을 느낀다고 추정했다. 미국에서 사회적 고립은 비만보다 공중 보건에 더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영화 <네트>는 인터넷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하던 시점에 등장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는 미래의 가능성이 무한하게 느껴지고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전망이 있던 시기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타임캡슐이다.
우리는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는 데 점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고, 그 안에서는 정교하게 조정된 알고리즘이 광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의 관심을 끌려고 한다. 베넷은 영화에서 “우리의 모든 삶은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어서 그 놈들은 제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런 일이 생겨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죠”라고 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2025년의 우리는 모두 앤젤라 베넷이다. 베넷이 디지털 고립으로 인해 신분 도용에 취약해졌듯이, 우리도 우리의 이익에는 관심도 없는 이들로 인해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많은 정책 입안자들이 그렇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고독이 증가한 책임을 기술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물론 기술이 고독 문제를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우리 삶에서 기술이 과도하게 중심이 된 것에는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저널리스트 댄 핸콕스(Dan Hancox)는 자신의 저서 《다수의 힘: 군중은 어떻게 현대 사회를 만들었는가(Multitudes: How Crowds Made the Modern World)》(2024)에서 권력자들이 군중을 악마화하고 타자화해온 방법을 분석하고 우리가 겪는 소외감이 훨씬 더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최근 수십 년간 군중을 피하는 경향이 더 강해진 이유는 공공 공간과 더 넓은 공공 영역, 흔히 도시 공유지라고 불리는 공간들 때문이다. 자금을 적절히 지원받은 도서관부터 쾌적한 공원과 광장, 무료 또는 저렴한 스포츠 및 여가 시설, 안전하고 접근성이 좋으며 저렴한 공공 교통수단, 편안한 거리 시설과 무료 공공 화장실, 활기차고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생활까지, 도시 생활에서 가장 좋은 모든 부분은 공공 영역에 속하며, 모두 슬프고 소외되어 집에만 있는 외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행복한 군중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다.”
거의 반세기 전에 마거릿 대처는 이후 수십 년간의 개인주의를 규정할 신자유주의적 합의를 제시했다. “사회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 남성과 여성, 그리고 가족이 있을 뿐이다. 또한 정부는 사람들을 통해서만 행동할 수 있으며, 사람들은 먼저 스스로를 돌봐야 한다.”
그 철학에 따라 ‘사회적 연결성’은 주의력 경제(attention economy, 사람들의 주의력, 관심을 희소한 상품이나 자원으로 보는 경제이론)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술 기업들에 위탁됐다. ‘알고리즘’은 우리 시대의 변덕스럽고 새로운 신이 되었다. 참여도에 생계가 달려 있는 사람이라면 게시물을 올릴 때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알고리즘을 만족시켜 좋은 결과를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메타에서 제작하는 AI 챗봇을 친구로서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사회에는 ‘AI 동반자’와 친밀한 관계를 맺거나 챗GPT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이 이미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비판적 사고를 AI에 맡겨버리는 현상인 ‘인지적 오프로딩(cognitive offloading, 또는 인지적 외주화)’이 부상하고 있으며, 많은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은 AI 기술에 깊이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AI 친구들’이 환각(언어모델이 존재하지 않는 정보나 사실을 진실처럼 답변하는 현상)을 일으키고,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이 없으며, 아부는 잘하지만 진정한 친구처럼 쓴소리하는 일이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알고리즘이라는 명백한 우려뿐만 아니라, AI가 실제로 누구를 위해 작동하는지도 기억해야 한다. 최근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AI 챗봇인 그록(Grok)은 새로운 지침을 바탕으로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의구심을 제기하고 관련 없는 프롬프트에 대해 ‘백인 학살’을 언급하는 등의 논란을 일으켰다. 이러한 사건은 AI 시스템이 절대 중립적이지 않고, 정치적 중립성도 유지하지 않으며, 언제나 코드를 통제하는 이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필자는 운이 좋은 편이다.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고 괜찮은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하루의 대부분을 그 누구와도 대화하지 않고 보낼 수 있다. 따라서 소셜미디어 뉴스피드를 멍하니 바라보면서 고립감과 불안감, 무력감을 느끼기 쉽다. 아마 우리 모두가 그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앤젤라 베넷’이다. 영화 <네트>의 악당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이러한 고립을 악용하여 신원을 도용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해로운 용도로도 악용될 수 있다. 고독감을 악용하는 자들은 우리가 더 많이 소비하고, 더 오래 일하며, 스스로와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 수 있다. 비판 없이 AI와 ‘우정’을 나누게 되면 이러한 악용이 더 쉬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를 막을 수도 있다. 우리는 관심을 나누어주지 않고, 더 건강한 기기 사용 습관을 실천하고, 나쁜 뉴스에 대한 노출을 제한하고, 에너지 소모가 많은 AI와의 상호작용을 거부하고, 계정을 삭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우리는 실생활에서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가능하다. 조합이나 지역 모임에 가입할 수도 있고, 대화가 필요한지 친구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우리가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권력을 가진 자들이 원하는 일이다. 따라서 이를 거부해야 한다.
영화 <네트>는 인터넷이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하던 시기에 등장했다. ‘닷컴 버블’이 등장하고 붕괴하기 이전, 웹2.0이 등장하기 이전, 폐쇄형 디지털 플랫폼과 ‘죽은 인터넷’ 이론이 등장하기 이전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영화는 미래의 가능성이 무한하게 느껴지고 조심스럽게 낙관적인 전망이 있던 시기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타임캡슐이다.
영화 <네트>는 비교적 최신 영화인 <서치>, <호스트: 접속금지>, <언프렌디드: 친구삭제>, <더 덴> 등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네트>의 가장 큰 유산은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가 밖으로 나가 풀을 만지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며 함께 집단을 이루게 되는 것이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들을 찾아라.”
-더글러스 러시코프(Douglas Rushkoff), 《팀 휴먼(Team Human)》(2019)
이 글을 쓴 톰 험버스톤(Tom Humberstone)은 에든버러에 거주하는 만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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