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거물의 베팅…크리스퍼 아기 기술에 투자 선언

암호화폐 억만장자이자 코인베이스 CEO인 브라이언 암스트롱이 크리스퍼 기반 배아 편집 기술에 대한 투자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생명 과학계는 새로운 자금처에 주목하면서도 기술의 안전성과 윤리적 한계를 경계하고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Coinbase)로 억만장자가 된 CEO 브라이언 암스트롱(Brian Armstrong)이 인간 배아 유전자 편집을 전문으로 하는 미국 스타트업에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계획이 실제로 이행된다면 의학계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아이디어에 대한 최초의 대규모 상업적 투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암스트롱은 지난 6월 2일 엑스(X)에 올린 글을 통해 유전 질환처럼 치료가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배아 편집(embryo editing)’ 기술 개발팀을 구성하기 위해 유전자 편집 및 생물정보학 전문가를 찾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분야에서 미국을 선도할 대표 기업이 나타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풍부한 자금 여력을 가진 후원자가 공개적으로 지원 의사를 밝힌 것은 2018년 중국에서 세계 최초의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태어난 이후 인간 배아 편집 기술이 금기시되어 왔다는 점에서 중대한 변화로 해석된다. 당시 비밀리에 진행된 실험은 국제적인 공분을 샀고 이를 주도한 과학자는 실형을 선고받았다.

디터 엘리(Dieter Egli) 컬럼비아대학교 유전자 편집 과학자에 따르면 암스트롱의 구상은 배아의 DNA를 더욱 안전하고 정교하게 수정할 수 있게 된 최근의 기술 발전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엘리의 연구팀은 암스트롱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한 바 있다.

‘염기 편집(base editing)’이라 불리는 이 기술은 DNA의 염기 하나를 정교하게 바꿀 수 있다. 이전의 편집 기술은 DNA 이중 나선을 절단하는 방식이었으며 이로 인해 DNA가 손상되거나 유전자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엘리는 “우리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훨씬 정확히 알게 되었다”며 “아직 모든 연구가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상황 자체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제한된 연구비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배아의 유전자를 설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배아 편집 기술은 사회적으로 거센 비판을 받아왔고 이로 인해 연구 자금을 확보하기도 어려웠다. 실험실에서 배아를 연구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실제로 유전자가 편집된 아기를 탄생시키는 것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전자 편집 아기와 관련한 금지 조항의 일환으로 식품의약국(FDA)이 관련 신청을 검토하거나 접수하는 것 자체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앞으로 바뀔 수 있다. 특히 과학자들이 유전자 편집 기술의 의학적 활용 가능성을 입증하거나 억만장자 후원자가 이를 위해 로비에 나선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암스트롱은 게시글에 7년 전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에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 이미지를 첨부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질병 치료를 위한 유전자 조작에는 매우 긍정적이었지만 배아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는 대부분 반대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어떤 기업도 공개적으로 배아 편집 기술을 추진한 적이 없으며, 연방 정부 역시 배아 연구에 연구비를 전혀 지원하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배아 유전자 편집 연구를 수행한 기관은 엘리의 연구소와 오리건 보건과학 대학교(OHSU) 단 두 곳뿐이다.

이들 기관은 대부분 민간 기부금과 대학의 자체 자금이라는 제한된 예산에 의존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해당 기관 연구자들은 기술 발전을 위한 충분한 자금력을 갖춘 기업의 참여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미국 생식의학회(ASRM) 회장으로 활동했던 폴라 아마토(Paula Amato) 오리건 보건과학 대학교 생식의학 전문의는 “솔직히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인력과 자금이 필요하다”며 “기술 대기업으로부터 나온 자금이라도 상관없다”고 덧붙였다.

이론적으로 배아 편집은 심각한 소아 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적 결함을 교정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배아 유전자 검사만으로도 이러한 결함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DNA 편집 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미충족 수요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많다.

오히려 이 기술이 더 큰 시장성을 가질 수 있는 분야는 심장 질환이나 알츠하이머병처럼 흔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을 지닌 인간을 만들기 위한 유전적 개입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질병 치료’보다는 ‘신체 능력 향상’에 가까운 접근이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크고, 유전적 변화가 후손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최근 여러 바이오 기업과 학계 단체들은 유전될 수 있는 인간 유전자 편집 기술을 10년간 유예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이 기술이 실질적인 의학적 용도는 거의 없으면서 예측 불가능한 장기적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원하는 유전자를 ‘프로그래밍’하거나 해로운 유전자를 제거할 수 있는 능력이 새로운 형태의 ‘우생학’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인류의 진화 방향 자체를 바꿔놓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무한한 자금력

암스트롱은 MIT 테크놀로지 리뷰가 보낸 투자 계획 관련 인터뷰 이메일에 답하지 않았다. 그가 CEO로 있는 코인베이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코인베이스는 2021년 상장한 암호화폐 거래소이며 <포브스>는 암스트롱의 재산 규모를 약 100억 달러(약 13조 6,000억 원)로 추산하고 있다.

암스트롱은 이미 전부터 과학 및 생물학 분야에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수많은 기술 기업가 중 한 명으로, 때로는 급진적인 아이디어에도 과감히 투자한다. 그는 앞서 ‘뉴리밋(NewLimit)’이라는 회사를 공동 창업했으며 블룸버그는 이를 “수명 연장 벤처”라고 표현했다. 뉴리밋은 올해 노화된 세포를 배아 상태에 가까운 형태로 재프로그래밍하는 연구를 위해 1억 3,000만 달러(약 1,800억 원)의 추가 자금을 확보했다.

암스트롱과 함께 뉴리밋을 공동 창업한 인물은 투자자 블레이크 바이어스(Blake Byers)다. 그는 생명공학적 접근이나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업로드하는 방법 등과 같은 ‘불멸(immortality)’ 연구에 전 세계 GDP의 상당 부분을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인물이다.

이후 암스트롱은 지난해 말부터 보조 생식 기술과 관련된 새로운 벤처 사업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내비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그는 엑스를 통해 자신과 바이어스가 인공 자궁, 배아 편집, 차세대 체외수정 기술을 연구 중인 기업가들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이 게시물은 이른바 금기시된 기술을 주제로 한 비공개 만찬에 참석할 사람들을 모집하는 내용이었다. 참가 신청은 구글 폼을 통해 이뤄졌으며 지원자들은 “당신이 개발한 가장 멋진 기술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에 답해야 했다.

이 만찬에는 엘리 연구소에서 배아 염기 편집을 연구 중인 스테판 예라베크(Stepan Jerabek) 박사후 연구원도 참석했다. 또 다른 참석자인 루카스 해링턴(Lucas Harrington)은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편집 기술 개발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의 지도 아래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수학한 유전자 편집 과학자다. 해링턴은 자신이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벤처 그룹 사이파운더스(SciFounders) 역시 배아 편집 전문 기업 설립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해링턴은 이메일에서 “우리는 배아 편집이 안전하게 수행될 수 있는지를 실증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업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으며 이를 추진할 회사를 성장시키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면서 “이 기술을 안전하게 검증하려면 숙련된 과학자와 임상의들이 참여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해링턴은 유전자 편집 기술의 빠른 발전 속도를 근거로 이 기술에 대한 금지나 유예 조치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이다. 그는 “이러한 조치로는 실제 기술 적용을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이로 인해 해당 분야가 ‘음지화’되면서 기술이 안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면서 “여러 바이오해커 단체들이 비밀리에 소규모 자금을 조달해 이 기술을 개발하려 하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이에 반해 암스트롱은 X를 통해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보다 투명한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엘리는 “이제는 꽤 진지한 단계에 들어선 것 같다. 그들은 실제로 무언가를 추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암스트롱이 자신의 연구실에도 자금을 지원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암스트롱이 이 주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사회적 분위기를 가늠하고 대중의 반응도 살펴볼 수 있으며 공론의 장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평가했다.

편집 오류

2015년 중국에서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유전자 편집 기술을 적용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처음 보도되자 전 세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이론적으로 인간 유전자를 얼마나 쉽게 바꿀 수 있는지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2년 후인 2017년에는 미국 오리건주에서 환자의 난자와 정자를 이용해 만든 실험용 배아에서 위험한 DNA 돌연변이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도 나왔다.

그러나 이 소식은 사실 과장된 것이었다. 엘리를 비롯한 연구자들이 정밀 분석한 결과 크리스퍼 기술은 세포 내에서 큰 염색체 조각을 삭제하는 등 심각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음이 밝혀졌다. 이 외에도 세포마다 편집 결과가 달라지는 모자이크(mosaicism) 현상도 문제가 되었다. 겉보기에는 정밀한 DNA 편집 기술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예기치 못한 손상을 남길 수 있는 위험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세 명의 유전자 편집 아기가 태어난 이후 크리스퍼 아기의 윤리성을 둘러싼 대중 논쟁은 한층 더 격렬해졌다. 반면 연구자들은 훨씬 더 근본적인 과학적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다.

이후 미국 실험실과 중국의 일부 연구소들은 염기 편집 기술로 연구 방향을 선회했다. 이 기술은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적고 이론적으로 단일 유전자를 넘어서 여러 유전적 이점을 배아에 동시에 부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기업의 역할

일부 연구자들은 병든 성인을 치료하는 것보다 배아를 편집하는 편이 훨씬 간단하다고 확신한다. 현재 유일하게 승인을 받은 유전자 편집 치료제는 유전적으로 발생하는 혈액 질환인 겸상 적혈구병 치료에 사용되며 그 비용은 무려 200만 달러(약 27억 원)가 넘는다. 반면 배아 단계에서 유전자를 편집할 경우 비용이 대폭 낮아질 수 있으며, 특히 배아가 형성되는 초기 단계에 편집이 이뤄지면 인체의 모든 세포에 유전적 변화가 적용될 수 있다.

엘리는 “책을 인쇄하기 전에 원고를 교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지극히 당연한 접근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유전자 편집 기술이 실제로 인간 아기의 탄생에 적용되기까지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단백질과 가이드 RNA 분자가 포함된 정교한 편집 시스템을 설계하고 배아에서 원치 않는 DNA 변이를 체계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절차를 개발하는 등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암스트롱이 실제로 회사를 설립해 자금을 투입한다면 이러한 산업적 과업을 실행하는 데 적합한 주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엘리는 “기술을 완벽하게 최적화해 아무 문제없이 작동하는 수준까지 고도화해야 한다”며 “이것이 바로 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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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6월 10일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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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일: 2025년 06월 10일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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