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 2026에서 확인된 중국 테크 기업들의 자신감
2026년 1월 11일부터 14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 2026’는 중국 기업들이 AI 하드웨어와 클라우드 전반에서 영향력을 본격적으로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준 무대였다.
필자는 CES 2026 개막을 얼마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야 참석을 결정했다. 개막을 앞두고 중국에 있는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출장 계획을 알리는 메시지가 잇따라 도착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보자”는 연락이 몇 차례 이어지자 결국 마음을 바꿨다. 미국에 거주하며 중국 기술 산업을 취재하는 필자에게 CES 기간은 1년에 단 한 번, 장시간 비행 없이도 주요 취재 대상을 한자리에서 모두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시기다.
소비자 가전 전시회(Consumer Electronics Show)를 의미하는 CES는 매년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기술 전시회로, 기업들이 신제품을 공개하고 새로운 기술 동향을 발표하는 자리다. 올해 행사에는 14만 8,000명이 넘는 참관객과 4,100개 이상의 전시업체가 참여했다. 전시는 도시 최대 규모의 전시장인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 전역에서 진행됐으며, 규모가 워낙 커 인근 호텔들까지 행사 공간으로 활용됐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CES에 참가해 왔지만 올해는 그 존재감이 유독 두드러졌다. 전체 참가 기업 4곳 중 1곳이 중국 전시업체였으며, AI 하드웨어와 로봇 등 일부 분야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이 특히 더 강하게 느껴졌다. 전시장에서는 수많은 중국 산업 관계자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중국계 벤처캐피털 인사들도 적지 않았다. CES를 꾸준히 방문해 온 참관객들은 이번 행사가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중국의 존재감을 분명히 체감할 수 있었던 CES라고 전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되긴 했지만, 당시에는 많은 중국 참가자가 비자 발급 거부로 참석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AI가 출장의 가장 보편적인 명분이자 실질적인 이유가 되고 있다.
예상대로 올해 CES의 최대 화두는 AI였으며, 거의 모든 부스 벽면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AI는 모두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핵심 주제이지만 동시에 실체가 불분명한 마케팅 수단으로도 소비되는 면이 있다. ‘AI 기술 탑재’라는 문구는 PC, 스마트폰, TV, 보안 시스템처럼 비교적 설득력 있는 제품부터 슬리퍼, 헤어드라이어, 침대 프레임처럼 다소 어울리지 않는 제품에까지 무분별하게 붙어 있었다.
소비자용 AI 기기는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완성도 또한 제품별 편차가 크다. 가장 흔한 유형은 교육용 기기와 정서적 교감을 내세운 장난감으로, 이는 필자가 최근 기사에서 다룬 것처럼 현재 중국에서 특히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인상적인 제품도 몇 가지 있었다. 중국의 에듀테크 기업 루카 AI는 아기 주변을 돌아다니며 상태를 살피는 로봇 판다를 선보였다. 복슬복슬한 털이 있는 열쇠고리 크기의 AI 로봇 푸조조(Fuzozo)도 전시됐다. 푸조조는 실물 형태가 있는 디지털 반려동물에 가까운 로봇으로, 고유한 성격이 내장돼 있으며 사용자가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달라진다. 다만 이러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들은 소비자가 개인정보 보호 문제를 지나치게 깊이 고민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벤처캐피털 01.VC의 투자자 이언 고는 필자에게 중국의 제조 경쟁력이 AI 소비자 전자제품 분야에서 결정적인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서구 기업들이 하드웨어 분야에서는 중국과의 경쟁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기업들이 두각을 보이는 또 다른 분야는 가전제품이다. 이들이 선보이는 제품은 눈에 띄게 정교해지고 있다. 가정용 로봇, 360도 카메라, 보안 시스템, 드론, 잔디 깎는 기계, 수영장 히트펌프까지 제품군도 다양하다. 미국 가정용 청소 로봇 시장을 사실상 장악하며 다이슨과 샤크의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브랜드 두 곳이 모두 중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서구에서 판매되는 교외 주택용 정원 관리 기기 대부분이 중국 선전에서 생산된다는 점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이처럼 뒷마당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생활 문화가 거의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제품은 디자인이 워낙 세련돼 일부러 확인하지 않는 한 중국산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어렵다. ‘값싸고 획일적’이라는 중국산 제품에 대한 기존의 고정관념은 필자가 현장에서 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CES 행사장을 나설 무렵에는 집 안 가전을 전반적으로 교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가전제품은 이미 안정화된 성숙한 시장이다. 한편 체험 요소가 강조되는 영역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고, 중국 기업들은 인상적인 시연을 선보였다. 모든 로봇이 마이클 잭슨 스타일의 춤부터 K팝, 사자춤까지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고, 일부는 공중제비 동작까지 소화했다. 항저우에 본사를 둔 중국 로봇 기업 유니트리는 관람객이 로봇과 ‘대결’할 수 있도록 복싱 링을 설치하기도 했다. 로봇 파이터들은 성인의 절반 정도 크기였고, 경기 대부분은 로봇의 패배로 끝났지만, 핵심은 승패가 아니었다. 유니트리가 실제로 보여주고자 한 것은 로봇의 안정성과 균형 감각이었다. 로봇들은 떠밀리거나 링 위에서 비틀거리면서도 넘어지지 않았고, 동작 중에 스스로 안정적인 자세를 회복했다. 역동적인 움직임뿐 아니라 정교한 손재주를 보여주는 시연도 이어졌다. 로봇들은 종이 바람개비를 접고, 빨래를 하고, 피아노를 연주했으며, 심지어 에스프레소 위에 스팀 밀크를 부어 우유 거품으로 그림이나 무늬를 만드는 커피 장식 기법인 ‘라테 아트’까지 완성했다.

하지만 이러한 로봇 가운데 상당수는 완성도가 뛰어나 보이더라도 단일 기능에만 특화되어 있다. 전시장에서 선보이는 특정 작업 하나에만 최적화돼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놓여있는 옷의 방향을 바꾼 뒤 다시 티셔츠를 접어보도록 하자 로봇은 곧바로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휴머노이드 로봇은 AI를 텍스트 기반 영역에서 현실 세계로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핵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대형언어모델(LLM)이 발전할수록 시각-언어 모델의 등장은 필연적인 다음 단계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기에는 분명한 난관이 있다. AI를 학습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는 현실 세계 데이터의 양이 텍스트 데이터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휴머노이드 로봇은 실제로 작동하는 구현 대상이자 이동형 데이터 수집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중국은 공급망과 탄탄한 제조 역량, 그리고 연계 산업(전기차, 배터리, 모터, 센서 등)과의 시너지 효과 덕분에 이 분야에서 특히 유리한 위치에 있으며, 최근 기술 전문 매체 ‘레스트 오브 월드(Rest of World)’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이미 휴머노이드 로봇 훈련 산업을 육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다수의 중국 기업은 대규모 생산 능력이 곧 혁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는 근거 없는 주장이 아니다.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과 관련 기술 영역 전반에서 드러나는 자신감은 하나의 획기적인 기술보다는 ‘서구보다 더 빠르게 반복하고 개선할 수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중국 기업들은 단순히 기기 판매에 그치지 않고 기술의 전 단계를 아우르고 있다. 이들은 완제품뿐 아니라 프레임워크, 개발 도구, IoT 구현, 공간 데이터 분야까지 폭넓게 손을 뻗고 있다. 오픈소스 문화도 깊이 뿌리를 내린 모습이다. 항저우에서 온 엔지니어들은 필자에게 중국의 ‘새로운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항저우에서는 매주 AI 기술을 활용해 제한된 시간 안에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아이디어·프로토타입을 만드는 집중형 개발 행사인 ‘AI 해커톤’이 열린다고 전했다.
실제로 CES 2026에서 가장 눈에 띈 혁신은 기기가 아니라 클라우드였다. 플랫폼, 생태계, 기업용 배포 사례, 그리고 클라우드와 온디바이스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AI’ 애플리케이션이 전면에 등장했다. 올해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메인 무대 행사를 선보인 기업은 레노버였다. 이 무대에서는 PC도 함께 다뤄졌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기기 간 경계를 넘나드는 AI 에이전트 시스템 키라(Qira), 그리고 AI 클라우드 공급자를 겨냥한 엔비디아와의 협력 전략이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새로운 데이터센터 플랫폼 베라 루빈(Vera Rubin)을 공개하며 이를 통해 AI 학습 및 운영 비용을 대폭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다. 리사 수AMD CEO 역시 대규모 AI 워크로드를 처리하기 위해 설계된 또 다른 데이터센터 시스템 헬리오스(Helios)를 소개했다. 이러한 제품은 데이터센터에서 AI 연산 수요가 급증하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에 발맞춰 클라우드 서비스를 얼마나 저렴하면서도 강력하게 구현할 수 있는지가 경쟁의 관건임을 시사한다.
중국 관련 참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필자는 이들 사이에 전반적으로 신중한 낙관론이 퍼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필자가 참석한 한 하우스 파티에서는 중국 출신의 벤처캐피털 관계자들과 창업자들이 샌프란시스코의 베이 에어리어로 이주해 온 인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었다. 모두가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이제 중국 소비자만을 상대로 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에서 만들고, 세계 시장에 판매하며, 미국 시장을 시험 무대로 삼겠다는 계획이 새로운 기본 전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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