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색육·버터의 귀환?…논란 부른 미국의 새 식생활 지침

미국 정부가 새로 발표한 식생활 지침이 기존의 영양 과학 연구와 어긋나는 권고를 제시하며 논란을 낳고 있다.

연초부터 미국 보건 분야에서 중대한 정책 변화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1월 5일 미국 연방 보건 당국은 정기적인 소아 예방접종에 대한 기존 권고를 전면적으로 수정했다. 이에 대해 보건 관련 단체들은 아이들이 예방할 수 있는 질병에 불필요하게 노출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이틀 뒤인 7일에는 또 다른 발표가 이어졌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농무부 관계자들이 새로운 미국인 식생활 지침을 공개한 것이다. 이 지침은 발표 직후부터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식생활 권장 목록에 적색육과 버터, 소기름 등이 포함되었다는 점이다. 이들 식품은 심혈관 질환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영양 전문가들은 그동안 섭취를 줄일 것을 권고해 왔다.

식생활 지침은 식품 지원 프로그램이나 학교 급식 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 파급력이 상당하다. 이번 기사에서는 미국 정부가 최근 국민에게 제시한 식생활 조언 가운데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 그리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을 살펴봤다.

미국 정부의 식생활 지침은 1980년대부터 발간되어 왔다. 이 지침은 5년마다 개정되며, 보통 수년간 과학 연구를 면밀히 분석해 온 영양학자들로 구성된 팀이 개정 과정에 참여한다. 이들은 먼저 과학적 근거를 정리한 보고서를 발표하고, 약 1년 뒤 이를 토대로 최종 확정된 미국인 식생활 지침을 발표한다.

직전 발표된 지침의 대상 기간은 2020년부터 2025년까지였고, 새로운 지침은 2025년 여름에 발표될 예정이었다. 관련 작업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고, 지침의 근거가 될 과학 보고서도 2024년에 공개됐다. 그러나 케네디 장관은 지난해 연방정부 셧다운으로 인해 지침 발표가 미뤄졌다고 밝혔다.

영양학 전문가들은 이번 발표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영양 과학은 지난 5년간 조금씩 발전을 거듭해 왔고, 일부 전문가들은 이러한 성과가 새로운 권고안에 반영될 것으로 기대했다. 일례로 최근 연구들은 알코올 섭취에 ‘안전한’ 수준이란 없다는 주장을 점점 더 강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 초가공식품과 관련된 건강 위험에 대해서도 더 많은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했다(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위험이 있는지, 무엇을 ‘초가공’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워싱턴 DC에 있는 조지 워싱턴 대학교 식품안전 및 영양안보 연구소 식품·영양 정책 담당 부책임자 개비 헤드릭(Gabby Headrick)은 “일부 과학자들은 이번 지침에 환경적 지속 가능성 요소가 반영될 것으로 기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지침에 포함된 권고 가운데 대다수는 일반적인 영양 상식과도 부합한다. 지침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한 자연식 위주의 식단을 권장하고, 고도로 가공된 식품과 첨가당 섭취는 피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단백질, 통곡물, 그리고 ‘건강한’ 지방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하지만 헤드릭은 “모든 권고가 타당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지침은 서두에서 ‘새로운 식품 피라미드’를 제시하는데, 거꾸로 된 삼각형 모양의 이 도식에는 맨 위에 ‘단백질, 유제품, 건강한 지방’이, 반대쪽 끝에 ‘채소와 과일’이 포함되어 있다.

"The New Pyramid" showing an upside-down pyramid shape made of Protein, Dairy& Healthy Fats sharing the top with Vegetables & Fruits with Whole Grains at the bottom tip
USDA

이 그림에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도식의 형태부터 적절하지 않다. 헤드릭은 “영양학자들은 이미 오래전에 1990년대식 식품 피라미드에서 벗어났다”고 말했다. 이런 도식은 혼란을 주기 쉽고, 사람들이 자신의 식단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 과학자들은 건강한 식단을 설명할 때 접시 모형을 사용한다.

헤드릭은 “우리는 지난 10여 년 동안 식생활 지침을 소비자들이 이해하기 쉽고 영양 교육에도 적합한 방식으로 설명하기 위해 ‘마이플레이트(MyPlate)’, 즉 균형 잡힌 식단을 접시 형태로 시각화한 도식을 사용해 왔다”고 설명했다.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도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식품 피라미드에 담긴 내용도 문제다. 이 도식에서는 육류와 전지 유제품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왼쪽 상단 이미지에는 스테이크가 그려져 있고, 피라미드 정중앙에는 버터 한 덩이가 놓여 있다. 이런 구성은 이전 지침에서는 볼 수 없던 내용이며, 바람직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적색육과 전지 유제품도 건강한 식단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영양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사람이 이러한 식품의 섭취량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해 왔다. 두 식품 모두 포화지방 함량이 높아, 미국에서 사망 원인 1위인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2015년 세계보건기구(WTO)는 일부 근거를 토대로 적색육을 ‘인체 발암 추정 물질’로 분류했다.

또 하나 우려되는 점은 지침에서 정의한 ‘건강한 지방’의 범위다. 여기에는 버터와 소기름이 포함되어 있는데, 소기름은 트럼프 행정부의 보건·식생활 슬로건인 ‘MAHA(Make America Healthy Again,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에서 특히 강조하는 식품이기도 하다. 이 두 식품은 일반적으로 올리브유 같은 지방에 비해 건강한 식품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헤드릭은 “올리브유 한 큰술에는 포화지방이 약 2그램 들어 있는 반면, 소기름 한 큰술에는 약 6그램, 버터에는 약 7그램이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녀는 “이미 해당 식품들이 건강 증진에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확인된 상황에서 이를 권하는 것은 상당히 해로운 식생활 권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적색육은 지속 가능한 식품이라고 보기 어렵고, 유제품 역시 마찬가지다. 알코올에 대한 권고 역시 “전반적인 건강 개선을 위해 알코올 섭취를 줄일 것”이라고만 적혀 있어 다소 모호하다. 독자 입장에서는 ‘도대체 어느 정도로 줄이라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지침에서는 미국인들에게 단백질 섭취를 늘리라고 권하면서 체중 1킬로그램당 하루 1.2~1.6그램을 적정 수치로 제시하고 있다. 이는 이전 지침에서 권장하던 양보다 50~100% 높은 수준이다. 호세 오르도바스(José Ordovás) 터프츠 대학교 수석 영양과학자는 “단백질 섭취를 이 정도까지 늘리면 총열량과 포화지방 섭취 역시 건강에 해로운 수준으로 증가할 수 있다”며 “나라면 되도록 낮은 쪽 기준을 따르겠다”고 조언했다.

일부 영양학자들은 이러한 변화의 배경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앞서 2024년에 발표된 과학 보고서에는 이러한 권고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드릭은 “적색육과 포화지방에 대한 과학적 근거 역시 달라진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필자는 이전 식생활 지침 수립에 참여했던 여러 전문가와 2024년 과학 보고서 연구를 주도했던 연구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누구도 새 지침에 대해 실명으로 의견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 일부는 불쾌감을 드러냈고, 한 명은 새 지침이 만들어진 과정이 “불투명했다”고만 짧게 말했다.

오르도바스는 “이들은 수년에 걸쳐 많은 시간을 들여 관련 연구들을 꼼꼼히 검토했다”며 “하지만 자신의 연구 결과가 무시되고,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급조된 다른 내용으로 대체되는 것을 본다면 실망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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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년 01월 14일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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