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내세운 류코보린은 정말 자폐증 치료 효과가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타이레놀을 자폐증의 원인으로 지목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최근 열린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정부가 자폐증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동기 백신과 타이레놀의 주성분인 아세트아미노펜이 자폐증이 늘어나는 원인이라며, 임산부들에게 이 약을 복용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타이레놀을 절대 복용하지 말라. 임신 중에는 특히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에 많은 과학자와 보건 당국자들은 당혹감과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아동기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반박됐기 때문이다.
코네티컷주 뉴헤이븐에 있는 예일대 뇌·마음건강센터 소장이자 아동심리학자인 제임스 맥파틀랜드(James McPartland)는 “수많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연구를 통해 백신이 자폐증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가설은 과학적으로 설득력이 없는 주장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일부 연구에서는 타이레놀과 자폐증 사이에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엄격한 설계로 수행된 주요 연구에서는 둘 사이에 아무런 연관성도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 행정부는 또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류코보린(leucovorin)을 자폐 아동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몇몇 소규모 연구에서 이 약물이 가능성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필라델피아 드렉셀대학교 A.J. 드렉셀 자폐연구소의 심리학자인 매튜 러너(Matthew Lerner)는 “지금까지 나온 연구들은 모두 아주 초기 단계에 불과하며, 아직 치료 효과를 확실히 입증하기에는 미흡하다”며 “류코보린이 신속 승인 절차에 오를 만큼 충분한 근거가 마련된 상황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250명 이상의 과학자로 구성된 자폐증 연구자 연합(Coalition for Autism Researchers)은 성명에서 “이번 기자회견은 평생을 자폐증 이해에 헌신해 온 우리 연구자들에게 심각한 우려를 안겨주었다”며 “제시된 데이터는 타이레놀이 자폐증을 유발한다거나 류코보린이 치료제라는 주장을 뒷받침하지 않는다. 오히려 근거 없는 공포를 키우고, 단순한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잘못된 희망을 불러일으킬 뿐이다”라고 비판했다.
여기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쟁점이 많다. 차근차근 살펴보자.
자폐증이 정말 ‘급증’했는가?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맥락에서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물론 자폐증으로 보고된 유병률은 증가했다. 1995년에는 약 500명 중 1명이었지만, 현재는 31명 중 1명꼴로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상당 부분 진단 기준 변화에서 비롯된다. 2013년에 발간된 최신판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에서는 기존에 별도로 분류되던 다섯 가지 진단을 하나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로 통합했다.
이에 따라 진단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또 러너는 오늘날 자폐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수십 년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는 미디어 속에서도 자폐증이 자주 다뤄지고, 뉴스, 금융, 비즈니스, 할리우드 등 다양한 분야에서 스스로 자폐스펙트럼임을 공개하는 유명인들도 많다”고 말했다.
타이레놀이 정말 자폐증과 관련이 있을까?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과 아동의 자폐증 간 연관성을 보고한 연구들도 있다. 이러한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여성들에게 임신 중 과거 아세트아미노펜 복용 경험을 물은 뒤, 약을 복용한 여성의 아이들이 복용하지 않은 여성의 아이들보다 자폐증을 진단받을 가능성이 높은지 비교했다.
하지만 이러한 역학 연구는 해석이 까다로워 주의해야 한다. 편향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한 여성이 감염이나 발열, 자가면역질환 때문에 약을 썼다면 실제 위험 요인은 아세트아미노펜이 아니라 이러한 기저 질환일 수 있다.
런던위생열대의학대학원의 역학자인 이안 더글러스(Ian Douglas)는 “이러한 기저 원인들 자체가 자폐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또한 자폐증에 대한 유전적 소인이 큰 여성이 다른 의학적 질환을 지니고 있어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잠재적 편향을 통제하기 위해 시도한 연구도 두 건 있다. 임신 두 번 중 한 번은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하고, 다른 한 번은 복용하지 않은 경우를 비교한 형제자매 연구다. 가장 큰 규모의 연구는 2024년에 발표된 것으로, 1995년부터 2019년 사이 스웨덴에서 태어난 약 250만 명의 아동을 조사했다. 초기 분석에서는 아세트아미노펜을 복용한 여성의 아이들에게서 자폐증 및 ADHD 위험성이 약간 더 높게 나타났으나, 형제자매를 기준으로 다시 분석하자 연관성은 사라졌다.
사실 학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자폐증 발병의 주된 원인이 유전적 요인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쌍둥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폐증 위험의 60%~90%가 유전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다만 환경적 요인도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러너는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환경 속 독성물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가장 강력한 환경적 예측 요인 가운데 하나는 아버지의 연령”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부계 연령이 40세 이상일 때 자폐증 발생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임신부는 안전을 위해 타이레놀 복용을 삼가야 할까?
아니다. 아세트아미노펜은 임신 중 복용해도 안전하다고 인정된 유일한 일반의약품 진통제로, 필요할 경우 복용해야 한다. 미국산부인과학회(ACOG)는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 사용에 대해 “의사와 상의 후 필요할 때, 적절한 용량을 복용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복용하지 않아서 손해 볼 것은 없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실제로 임신 중 고열은 임신부와 태아 모두에게 위험할 수 있다. 스티븐 플라이쉬만(Steven Fleischman) ACOG 회장은 성명을 통해 “대체로 임신 중 아세트아미노펜을 사용해야 하는 상태는 단순히 약 복용 예상되는 위험보다 훨씬 더 위험하며, 임신부와 태아 모두에게 심각한 질병과 사망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류코보린은 과연 자폐증 치료에 효과가 있을까?
폴린산(folinic acid)이라고도 불리는 류코보린은 엽산의 한 형태로, 합성 엽산과 마찬가지로 비타민B군에 속한다. 엽산은 시금치 같은 잎채소나 콩류에 풍부하며, 류코보린은 수년간 일부 항암제의 부작용을 줄이거나 빈혈 치료제로 사용되어 왔다.
엽산이 태아의 뇌와 척추 등 신경관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임신 중 엽산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면 척추이분증 같은 신경관 결손 기형의 위험이 높아진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식품에 엽산이 추가로 첨가되어 있으며,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임신부에게 엽산 보충제 복용을 권고하고 있다. 러너는 “임신 중 산전 종합비타민을 복용하고 있다면 이미 엽산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맥파틀랜드는 “자폐인의 상당수가 엽산 관련 문제로 인해 자폐가 된다는 주장은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으며, 학계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2000년대 초, 독일의 한 연구진은 엽산 결핍으로 인해 신경 발달에 문제가 생긴 소수 아동의 사례를 보고했다. 뉴욕 브루클린 소재 SUNY 다운스테이트 의과대학의 생물학자 에드워드 콰드로스(Edward Quadros)는 “이 아이들은 태어날 때는 정상적으로 보였지만, 1~2년 후 자폐와 매우 유사한 양상의 신경학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이 해당 아동들에게 폴린산을 투여하자 일부 증상이 호전되었고, 특히 6세 미만 아동에게서 효과가 두드러졌다.
문제 증상이 나타난 아동들의 경우 혈액 속 엽산 수치는 정상 범위였지만, 뇌와 척수를 둘러싼 체액에서는 엽산 수치가 낮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그 원인이 혈액에서 뇌척수액으로 엽산을 전달하는 과정에 있다고 보았다. 콰드로스와 몇몇 연구자들은 이 결핍이 자가면역 반응 때문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즉 엽산 수송을 돕는 수용체를 겨냥한 항체가 형성되어 엽산의 혈액-뇌 장벽 통과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다만 고용량의 폴린산을 투여하면 또 다른 수송체가 활성화되어 엽산이 뇌로 들어갈 수 있다고 콰드로스는 설명했다.
류코보린이 효과가 있다는 경험담도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류코보린을 자폐증 치료제로 시험한 연구는 단 네 건의 소규모 임상시험에 불과하다. 각 연구는 용량과 평가 지표가 상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관된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이에 자폐과학자연합(Coalition of Autism Scientists)은 “류코보린이 자폐증 증상을 개선할 수 있다는 근거는 약하다”고 평가했다. 학계 성명에서는 “류코보린이 자폐증에 효과적이고 안전한 치료제인지 판단하려면 훨씬 더 정교하고 강력한 과학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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