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의 ‘실리콘 방패’는 과연 대만을 지킬 수 있을까?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 TSMC는 해외 확장과 대만 안보 수호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문제는 이 두 역할의 충돌 위험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겨울 오후, 타이베이의 한 회의실에서 스무 살 안팎의 여성 두 명이 친구를 바닥에서 질질 끌어 옮기고 있었다. 체크무늬 바지와 갈색 스웨트셔츠 차림으로 바닥에 누워 있던 친구는 부상을 당했거나 숨진 사람인 척 연기하고 있었다. 여성 중 한 명은 팔을, 다른 한 명은 다리를 붙잡아 결국 그녀를 옮기는 데 성공했지만 어색한 훈련 탓에 웃음이 터져 잠시 긴장이 풀리기도 했다. 세 사람은 약 40달러(약 5만 6,000원)를 내고 이곳에서 일요일을 보내며 대만인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 질문은 대만 정치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집권당은 50년 넘게 대만에 눈독을 들여왔다. 최근 들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 공산당이 단 한 번도 지배한 적 없는 이 섬나라를 ‘되찾겠다’는 구상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커지면서 일부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이제 중국이 원한다면 언제든 대만을 봉쇄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침공 여부는 결국 손익 계산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 안팎의 많은 사람들은 대만의 반도체 제조업이 중요한 억지력을 갖는다고 본다. 대만은 세계 반도체의 대부분과 인공지능(AI) 작업에 필요한 최첨단 칩의 90% 이상을 생산한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Bloomberg Economics)는 대만이 봉쇄될 경우, 중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에 첫해에만 5조 달러(약 7,000조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국제사회는 대만 해협에서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로 인한 비용이 너무 막대하기 때문이다.”
라이칭더 대만 총통
미국 메릴랜드주 정도 크기에 불과한 대만이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된 이유는 바로 TSMC의 창의성과 기술력 덕분이다. 지난 7월 시가총액 1조 달러(약 1,400조 원)를 돌파한 이 반도체 제조업체는 대만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차지하도록 만든 주역이다. 애플과 대표적인 칩 설계업체인 엔비디아도 TSMC의 고객사이며 이 회사의 칩은 우리가 사용하는 아이폰, 노트북, 그리고 챗GPT를 구동하는 데이터 센터에 포함되어 있다.
TSMC는 일반인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대만 사회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일례로 필자는 남부 도시 타이난의 시끄러운 술집에서 사람들이 TSMC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었고, 타이베이의 택시 기사들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대만의 안보 상황을 이 회사와 연결 지어 이야기하는 경우도 목격했다. 국회 의사당 앞을 달리던 한 택시 기사는 “대만은 괜찮을 것이다. TSMC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믿음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지도자들이 반도체 공급망에서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이들이 경제적·군사적으로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가정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중국을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루퍼트 해먼드-체임버스(Rupert Hammond-Chambers) 미국-대만 비즈니스 협의회(USTBC) 회장은 “오늘날 TSMC는 대만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대만의 주권 개념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대만 전문가들과 일부 시민들은 이러한 ‘실리콘 방패’가 과연 실제로 존재했는지, 존재했다면 이제 균열이 생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압박 속에서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있는 거점을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확충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에도 공장을 건립하고 있으며, 2016년부터는 중국 본토에서도 비교적 기술 수준이 낮은 구형 칩을 생산해 왔다.
대만에서는 TSMC의 해외 확장이 자국 내 영향력을 약화시켜 미국 등 다른 국가들이 대만 방어의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에서 진행 중인 TSMC의 투자가 대만의 안보를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만 야당의 고위 인사들은 여당인 민주진보당(DPP)이 국가의 미래를 걸고 도박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TSMC의 해외 확장이 트럼프 행정부의 불분명한 태도와 맞물리면서 부정적인 전망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중국이 무력으로 대만을 점령할 경우 미국이 개입할지 묻는 질문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며 “그런 상황에 처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의 대만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자급 능력 향상에 진전을 보이고 있으나 현재는 기업들이 대만에서 제조된 외국산 칩에 의존하는 과도기적 단계에 머물고 있다. 일부는 적법한 절차를 통해 수입되며, 일부는 밀수 형태로 유입된다. 한편 중국 공산당(CCP)은 대만 점령이 일종의 ‘가족 상봉’이라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많은 논란을 낳았던 2022년 낸시 펠로시(Nancy Pelosi)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 외교부는 성명서를 통해 “조국의 완전한 통일을 실현하는 것은 모든 중국인의 공통된 염원이며 신성한 책임”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어떤 동기로 대만을 노리고 있는지 완전히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한 전략적 이점도 존재한다. 대만을 통제하면 해군 항로와 잠수함 운용에 중요한 심해 접근권을 확보할 수 있으며 미국 AI 기업들의 첨단 칩 수급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중국이 군사력을 강화하는 가운데 대만 역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만 정부는 반도체를 핵심 무기로 내세우며 국제 사회에서 자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라이칭더(Lai Ching-te) 대만 총통은 올해 초 일본 닛폰 TV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사회는 대만 해협에서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로 인한 비용이 너무 막대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부 국제 사회는 이러한 메시지에 주목하며 기회를 포착하고 있다. 실제로 이달 초 방위 기술 기업 안두릴 인더스트리(Anduril Industries)는 대만에 새 사무소를 열고 파트너십을 확대하며 자율 무기를 판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반도체 업계도 대만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를 보이고 있다. 가령 다른 기술 기업 CEO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에 참석하는 동안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TSMC 회장과 면담을 가졌으며 5월에는 엔비디아 해외 본부를 타이베이에 두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정부 관계자들도 대만의 안보 상황과 반도체 산업과의 상호 연관성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보니 글레이저(Bonnie Glaser) 독일 마셜 펀드 인도-태평양 프로그램 책임자는 “어느 순간 모두가 TSMC에 대한 의존도를 깨닫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녀에 따르면 “이러한 인식은 지난 10년 동안 형성되었지만 2021년 3월 필 데이비슨(Phil Davidson)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 사령관이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2027년 내 중국의 침공 가능성을 인정하면서 더 부각되었다. 보안 위협과 더불어 대만에 반도체 제조 능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점 역시 잠재적 문제로 꼽힌다.
현재 대만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와 시간적 압박 속에 놓여 있다. 중국은 대만 장악이 역사적 숙명이라고 주장하지만 그 시점은 불확실하다. 반면 미국과 대만의 관계는 AI 중심의 미래에 초점을 두고 있다. 대만 입장에서는 전례 없는 지정학적 불안정 속에서 운명을 건 싸움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향후 몇 년은 TSMC가 반도체 시장에서의 우위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 대만 보호의 필요성을 입증할 수 있을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연결성을 기반으로 한 혁신
TSMC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성공 사례다. 창립자 모리스 창(Morris Chang)은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근무하던 중 대만 정부의 지원과 저렴하면서도 숙련된 노동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라는 제안을 받고 대만으로 돌아왔다. 1987년 그는 혁신적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TSMC를 설립했다. 당시 일반적으로 칩을 설계하고 생산하던 관행과 달리 TSMC는 파운드리 역할을 맡았다. 고객이 칩을 설계하면 TSMC가 이를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제조 중심 전략 덕분에 TSMC는 비즈니스 운영을 최적화하고 공정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으며, 결국 인텔과 같은 경쟁사를 넘어서게 되었다. 한편 다른 기업들은 TSMC 덕분에 자체 반도체 공장(fab)을 유지하는 대신 자원을 다른 사업 영역에 투입하는 ‘팹리스(fabless)’ 전략을 채택할 수 있었다. 대만의 국내 전자 공급망을 활용한 전략 역시 TSMC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작용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 개인용 컴퓨터와 기타 기기에 필요한 반도체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면서 TSMC는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2022년 미국은 최첨단 칩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제한하는 수출 통제를 시행했다. 그 결과 대만은 중국 고객과의 거래를 끊고 규제에 따르거나, 전체 고객의 약 70%가 위치한 국가이자 공격 발생 시 외부 군사 지원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미국의 지원을 상실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 회장은 세계화와 자유시장이 “거의 죽었다”고 평가했다. 이후 약 3년간의 변화를 돌이켜보면 그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민주주의 동맹국과의 공급망 통합을 지향하던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은 비민주적 강대국에 대한 존중과 경쟁국 및 동맹국에 대한 관세 부과에 초점을 두고 있다. 그는 유럽 및 아시아 동맹국과의 경제 외교를 대체로 포기했지만, 중국을 겨냥한 보호무역 정책과 거래주의적 접근은 유지했다. 이달 초 미국 행정부는 기존 수출 금지 정책과 대조적으로 엔비디아와 AMD가 중국에 칩을 판매하는 것을 허용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취하면서, 중국 판매 매출의 15%를 미국 정부에 지불하도록 하는 조건을 붙였다.
보호무역 정책은 자체 생산 능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반도체 생산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는 시진핑 집권 초기부터 추진되었으나 미국의 수출 통제 이후 더욱 급물살을 탔다.
한편 미국이 국내 반도체 생산을 대폭 확충할 수 있는 기대는 동맹국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중 핵심은 단연 TSMC다. 반도체 산업은 실용성을 기반으로 각 지역의 강점을 살려 전 세계적으로 발전했다. 미국은 설계, 아시아는 생산, 유럽은 공정의 핵심 부품 공급을 담당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중국과의 ‘기술 전쟁’ 속에서 반도체 공급망을 탈세계화하거나 최대한 자국으로 이전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문제는 최고의 반도체 제조업체가 미국 기업이 아니라 TSMC라는 점이다. 애리조나에서 일부 생산이 이루어지더라도 미국은 여전히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에 의존하며, 이를 대만 외부에서 재현하는 것은 미 행정부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
갈등의 중심에서
오늘날 대만이 직면한 안보 불확실성은 섬의 주권을 둘러싼 오랜 분쟁에 기인한다. 1800년대 말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대만을 일본 제국에 넘겼다. 대만은 1945년까지 일본의 ‘모범 식민지’로 통치되다가 전후 협상에 따라 국민당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으로 반환되었다. 이후 국민당은 중국 본토에서 벌어진 내전에서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패했고, 1949년 장제스와 국민당의 장군들은 대만으로 건너가 약 40년 동안 계엄 통치하에 섬을 지배했다.
대만에서는 1996년 첫 자유민주 선거를 치르며 국민당(KMT)과 민주진보당(DPP) 간의 본격적인 양당 경쟁이 시작됐다. KMT는 중국과의 더 긴밀한 관계를 선호하는 반면, DPP는 중국과의 통합에 반대한다. 대만 선거에서는 경제 성장 같은 민생 현안이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지만, 8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중국의 침공 위협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여전히 가장 중요한 쟁점이다. DPP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국방비 증액과 민간 대비 태세 강화를 주장하는 반면, KMT는 중국과의 직접 대화를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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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국은 대만 주변에서 전쟁 행위에는 이르지 않는 이른바 ‘회색지대’ 전술을 더욱 빈번히 구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대만 국방부는 올해 5월 중국 군용기가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월 200회 이상 진입했다고 추산했는데, 이는 월 10회도 되지 않았던 5년 전 수치와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다. 중국은 전면 침공이나 대만을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봉쇄를 염두에 둔 군사 훈련을 거듭 실시해 왔다. 라일 모리스(Lyle Morris) 아시아소사이어티 정책연구소(Asia Society Policy Institute) 외교·안보 전문가는 “중국 군 당국자들은 이제 봉쇄 가능성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며 “중국이 라이 총통과 DPP를 압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이 자국민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며 “중국 정부는 양안 문제에서 충분히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않거나 미온적인 태도로 비칠 경우, 자국민이 반발할 것을 우려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라이 총통이 중국을 ‘적대적 외세’로 규정하는 발언을 내놓자, 대만 독립에 반대하는 중국의 저명 학자 가오 즈카이(Gao Zhikai)는 “조국과의 통일은 무한정 미룰 수 없다.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위협은 일부 대만 시민들의 안보 위기감을 한층 더 고조시켰다. 방위 전문 싱크탱크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1%가 국방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다만 향후 5년 내 중국이 공격할 가능성을 ‘낮음’으로 평가한 응답자의 비율은 65%였다). 대만이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더라도 중국과의 압도적인 군사 격차를 고려하면 외부 지원 없이는 대응이 어렵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많은 사람들은 대만이 방어 의지를 보이는지에 따라 미국의 지원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아이리스 쇼(Iris Shaw) DPP 미국본부 대표는 “전쟁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미국이 개입하기 전까지 대만은 최소 한 달 이상 버텨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등 대만의 주변국 지원 역시 미국의 개입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실제로 개입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크레이그 애디슨(Craig Addison)은 2001년 저서 《실리콘 방패: 중국의 공격으로부터 대만을 지키는 무기(Silicon Shield: Taiwan’s Protection Against Chinese Attack)》에서 대만의 운명이 반도체 생산 능력과 직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애디슨은 미국이 대만 방어를 위해 전쟁에 나설지에 대해 의도적으로 모호한 태도를 취해 왔지만 “안전하고 생산성 높은 대만에 대한 기술적 의존도 때문에 미국이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이러한 계산된 모호성에서 벗어나 대만이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방어에 나설 것이라고 여러 차례 단언했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듯하며 이는 중국 측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트럼프 시대의 TSMC
여러 면에서 대만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대만은 안보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그러한 방어적 조치 자체에도 위험이 따를 수 있다. 대만에서는 미국과의 관계 강화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1월에 발표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4.7%가 “친미 정책이 중국을 자극해 전쟁을 초래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해먼드-체임버스는 라이 행정부의 외교 정책이 “미국과의 강력한 관계가 필수적이라는 인식과 불가분하게 얽혀 있다”고 지적했다.
TSMC가 대만 외 지역에 파운드리를 짓는 이유가 단순히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회사가 공공연하게 밝힌 것처럼 TSMC 고객의 대부분은 미국에 있으며 본국의 토지와 에너지 부족 문제에도 대응해야 한다. 대만에서는 새 파운드리 건설 부지를 찾는 과정에서 사원이나 조상의 묘지를 과학단지로 개발하려다 지역 주민과 갈등을 빚는 일이 발생한다. 또한 대만은 에너지 수요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며 여당인 DPP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논란이 많은 원자력 발전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지정학적 긴장은 이러한 물리적 제약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공개적으로 인정하지는 않겠지만 중국이 대만을 공격한다면 TSMC는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계속 운영하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TSMC의 제조 역량을 대만 외 지역에 구축하는 것은 쉽지 않다. 글레이저는 “TSMC가 구축한 생태계는 매우 독특하다. 인재, 문화, 법 제도의 결합된 산물로, 쉽게 복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TSMC는 대만 내에 2,500개의 공급업체를 두고 있으며, 대부분은 차로 몇 시간 거리에 있거나 고속철도를 이용하면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다. 대만은 40년에 걸친 혁신, 산업 정책, 노동의 결실로 완전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구축했다.
여러 면에서 대만은 사면초가에 놓여 있다. 대만은 안보를 위해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그러한 방어적 조치 자체에도 위험이 따를 수 있다.
따라서 TSMC가 3,000명이 근무하는 피닉스 교외의 생산 시설에 이 모델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훙 페이페이(Hung Feifei) 아시아소사이어티 연구원은 “지정학적 요인이 없었다면 해외 확장은 추진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 컨설팅 기업 DGA-올브라이트 스톤브릿지 그룹(DGA-Albright Stonebridge Group)의 파트너이자 기술 정책 책임자인 폴 트리올로(Paul Triolo)는 애리조나 파운드리를 “우연히 애리조나에 설립된 TSMC의 부속 시설”로 표현했다. 전체 단지가 가동되더라도 이는 TSMC 전체 생산 능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계속 대만에 남을 것이다. 트리올로는 미국 공장이 대만 공장과 유사한 성과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며 “애리조나 설비는 아직 대만 수준에 미치지 못하며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TSMC에 대해 ‘우방국을 통한 조달(friendshore)’을 요구하는 압박이 훨씬 강해졌으나 그 어떤 우호적 신호도 뚜렷하게 제시되지 않았다. 올봄 벌어진 관세 혼란 속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에 32%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가 잠시 유보했으며, 7월 말에는 20% 관세 부과 가능성을 다시 시사했다(협상은 취재 시점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미국은 반도체 수입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하면서 TSMC처럼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기업은 예외라고 밝혔다. 다만 대만의 주요 공급업체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관세가 적용될지는 불분명하며, 칩에만 부과되는 특별 관세에 대한 우려도 여전히 남아 있다. 낸시 웨이(Nancy Wei) 유라시아 그룹(Eurasia Group) 무역 및 공급망 분석가는 “이는 미국 내 제조업 재건을 강조하고 관세를 만능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트럼프의 정책 기조와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또한 TSMC가 제작한 칩이 일부 화웨이(Huawei) 기기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미국 정부는 TSMC에 10억 달러(약 1조 3,980억 원) 규모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TSMC는 미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왔다. 지난 3월 트럼프 대통령과 C.C. 웨이(C.C. Wei) TSMC CEO는 TSMC가 미국 애리조나 허브에 앞서 발표한 650억 달러(약 90조 8,700억 원)에 더해 1,000억 달러(약 139조 8,000억 원)를 추가로 투자할 것이라고 공동 발표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단일 외국인 직접 투자(FDI)로는 최대 규모였다. 비록 협상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 진행되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가장 강력한 AI 칩이 바로 미국에서 생산될 것”이라며 이번 투자 성과를 자신의 공로로 돌렸다.
애리조나 확장 계획에는 연구개발 시설도 포함되며, 이는 기술 이전과 지식재산 개발의 핵심 요소다. 더욱 흥미로운 부분은 TSMC가 4월 발표에서 여섯 개 신규 파운드리가 모두 가동되면 최첨단 칩의 30%를 애리조나에서 생산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전까지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칩이 대만 본사의 최첨단 제품보다 기술적으로 1~2세대 뒤처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번 결정은 트럼프 행정부의 공개적·비공개적 압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가 정부 프로그램과 보조금을 줄이고 제조업의 ‘자국 복귀’를 요구하는 가운데, TSMC는 애리조나에서 양질의 미국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기술자 견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트리올로는 “TSMC 경영진은 트럼프 행정부의 장기 산업 정책 의지를 의심하고 있을 것”이라며 “그들은 ‘트럼프 정부가 과연 대만 정부처럼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하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퉁-홍 린(Thung-Hong Lin) 타이베이 중앙연구원(Academia Sinica) 사회학 연구원은 이렇게 노골적으로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행정부를 상대하는 것은 “대만 기업에게 역사상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반도체 제조는 신뢰성을 바탕으로 한다. 트럼프는 지금까지 TSMC의 미국 내 확장을 지원하는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일부 되돌릴 수 없는 불확실성을 초래하며 반도체 산업에 직접적인 피해를 준 무역 전쟁을 개시했다. ≪반도체 전쟁(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Chris Miller)는 “트럼프의 관세는 반도체 공급망의 새로운 분화를 한층 더 심화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TSMC는 미국과 중국이 모두 강력한 경쟁국이자, 무역 제한에도 불구하고 주요 고객인 상황에서 적절한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쟁 시나리오
중국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틈타 허위 정보전을 펼쳐 왔다. 2022년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가 대만을 방문하자 중국은 전함, 항공기, 선전 매체를 대만 해협에 배치했다. 또한 중국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해커들은 대만 세븐일레븐(7-Eleven) 매장의 전광판을 해킹해 “전쟁광 펠로시(warmonger Pelosi)”에게 “대만에서 나가라(get out of Taiwan)”고 경고하는 메시지를 띄웠다. 이는 전쟁 행위는 아니지만 대만 국민들의 일상과 깊은 연관이 있는 매장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매우 위협적이다. 향후 대만 군이 중국에 항복했다는 식의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유사한 전술이 등장할 가능성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프란체스카 첸(Francesca Chen) 대만 디지털부(MODA) 사이버보안 시스템 분석가는 대만이 “항상 중국 사이버 공격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대만 국가안보국(NSB)에 따르면 2024년 중국과 관련된 선전 사례는 전년보다 60% 증가해 216만 건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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첸은 지난 몇 년간 TSMC의 미국 투자와 관련한 온라인 논의가 “중국 정부가 지원하는 대만을 겨냥한 정보전의 ‘집중 표적’이 되었다”고 말했다. 선전 집단은 TSMC가 최첨단 기술, 인력 및 자원을 미국으로 이전함으로써 “대만의 경제적 생명선과 글로벌 공급망에서의 핵심 지위를 약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대만 공동화(hollowing out Taiwan)’와 ‘탈대만화(de-Taiwanization)’와 같은 키워드를 자주 사용한다. 첸에 따르면 “이러한 해석 방식은 TSMC의 다각화 전략을 대만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묘사”하며, 실제 대만 내 논쟁을 이용해 내부 분열을 심화시키고 사회적 결속을 약화하며 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중국 관계자들은 이런 메시지를 공공연히 반복했다. 최근 3월의 미국 투자 발표 이후, 중국의 대만업무판공실(China’s Taiwan Affairs Council) 대변인은 대만 DPP가 TSMC를 미국에 “선물”로 넘겼다고 비난했다(중국 국영 매체는 “TSMC가 USMC가 되나?”라는 헤드라인을 내걸기도 했다). 전(前) 대만 대통령 마잉주(Ma Ying-jeou)도 유사한 논조의 비판을 내놓으며, TSMC의 미국 확장이 보호를 대가로 반도체 기업을 “판매”한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했다.
TSMC의 해외 진출은 2028년 대만 대통령 선거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는 정당 정치와 직결된다. 국민당(KMT)은 민진당(DPP)이 미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만의 기술 자산을 희생했다고 비판할 수 있고, DPP는 중국의 군사적 침투가 일상화되는 상황에서도 KMT가 중국에 지나치게 밀착하고 있다고 맞받아칠 수 있기 때문이다. TSMC의 미국 이전이 궁극적으로 대만을 보호할지, 약화할지, 아니면 섬의 안보와 주권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중국의 야망이 여전히 크게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대만을 단순히 TSMC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대만은 오히려 공산당 혁명 투쟁을 완성하기 위해 남겨진 마지막 미완의 과제로 인식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대만을 반드시 손에 넣겠다는 중국의 결심은 협상의 여지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대만이 정치적 정통성에 근거한 중국의 압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려면 반도체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방패를 마련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 글을 쓴 요한나 M. 코스티건(Johanna M. Costigan)은 미국, 중국, 대만의 기술과 지정학을 주로 다루는 작가 겸 편집자이다. 그녀는 뉴스레터 ‘더 롱 게임(The Long Game)’을 집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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