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AI 행정명령, 실리콘밸리 혁신 흔든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AI 리더십 강화를 위한 일련의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미국의 세계적 우위를 가능케 했던 핵심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7일 인공지능 분야에서 미국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계획을 담은 행정명령 세 건을 발표하고, 연설과 함께 실행 계획도 공개했다.

이번 실행 계획은 ‘혁신 가속화’, ‘인프라 구축’, ‘국제 외교 및 안보 주도’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수십 건의 권고 사항을 담고 있다. 일부는 점진적이면서 신중한 접근을 택했지만, 명백한 이념적 색채가 드러나는 조치도 있고, 상당수는 빅테크 기업에 혜택을 주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다만 이 계획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 수준에 그친다는 한계가 있다.

반면 함께 발표된 행정명령 세 건은 실행 계획의 각 축에서 구체적인 조치를 실제로 시행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발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1시간 연설과 공개 서명식 등 언론을 의식한 화려한 이벤트와 함께 진행됐다. 기술 업계는 이 같은 발표에 환호했지만, 정작 이 조치들이 미국이 AI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정책적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은 간과되고 있다.

미국이 앞으로도 AI 분야에서 세계적 주도권을 유지하려면 오늘날의 성과가 어떤 정책적 토대 위에서 가능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다음은 미국이 AI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현재 행정부가 스스로 약화시키고 있는 네 가지 핵심 정책들이다.

연방정부의 R&D 투자

최근 미국 기업들이 선보인 생성형 AI 기술, 예컨대 챗GPT 같은 제품은 민간 주도의 연구개발(R&D)을 통해 탄생했다. 하지만 이들 기술의 근간이 되는 연구는 1950년대부터 국방부, 국립과학재단(NSF), 미항공우주국(NASA), 국립보건원(NIH) 등 연방 정부 기관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며 꾸준히 지원해 온 공공 연구의 결실이다. 1956년 첫 성공적인 AI 프로그램을 시작으로 1961년 최초의 챗봇, 1970년대 의사용 전문가 시스템은 물론, 머신러닝과 신경망, 역전파, 컴퓨터 비전, 자연어 처리 같은 핵심 기술들도 이러한 공공 투자 덕분에 가능했다. 역전파란 AI, 특히 딥러닝에서 신경망을 학습시키는 핵심 알고리즘을 말한다. 컴퓨터 비전은 컴퓨터가 이미지나 영상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는 AI 기술이다.

미국 납세자의 세금은 AI를 지탱하는 하드웨어와 통신 인프라 발전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스마트폰에 쓰이는 리튬이온 배터리, 마이크로 하드 드라이브, LCD 디스플레이, GPS, 무선 주파수 신호 압축 기술뿐 아니라 AI 데이터센터에서 활용되는 반도체와 오늘날 인터넷의 기반 기술까지 모두 공공 연구 자금의 산물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성과 위에서 더 나아가기보다는, R&D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연방 과학자들을 해고하며 주요 연구 대학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실행 계획에는 R&D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지만, 실제 예산안은 비 국방 분야 R&D 예산을 36%나 감축하겠다고 명시하고 있다. 연방 정부의 R&D 활동을 보다 체계적으로 조율하고 이끌겠다는 제안도 포함됐지만 조정만으로는 예산 확대를 대신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민간 기업의 R&D 투자가 이러한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업은 어디까지나 수익에 직결되는 연구에 집중할 뿐이지 반드시 국가 전체의 이익을 고려하지는 않는다. 반면 공공 투자는 기초연구를 포함한 폭넓은 과학 탐구를 가능하게 한다. 기초연구는 당장 상업적 성과가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수십 년 뒤 거대한 산업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품고 있다. 오늘날의 AI 산업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민 및 이민자에 대한 지원

공공 R&D 투자 외에도 미국은 오랜 시간 전 세계 최고의 연구자와 혁신가들을 끌어들이며 AI 분야에서 리더십을 쌓아왔다.

오늘날 생성형 AI의 핵심 기술인 트랜스포머 모델(챗GPT의 ‘T’에 해당하는 기술)은 2017년 구글의 연구진이 처음으로 발표했다. 이 논문에 이름을 올린 8명의 공동 저자 중 6명이 외국 출신이며, 나머지 2명도 이민자의 자녀였다.

이는 결코 특이한 사례가 아니다. 미국이 AI 분야에서 선두 자리를 지켜온 배경에는 이민자의 기여가 결정적이었다. 미국의 싱크 탱크 ‘진보 연구소(Institute for Progress)’에 따르면 포브스가 선정한 2025년 세계 50대 AI 스타트업 가운데 미국에 본사를 둔 42곳 중 60%는 이민자 출신 공동 창업자가 최소 한 명 이상 포함돼 있다. 오픈AI, 앤트로픽,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인텔, AMD 등 AI 생태계를 이끄는 핵심 기업들도 모두 이민자가 공동 창업했거나, 이민자 출신이 현재 CEO를 맡고 있다.

‘두뇌 유출(brain drain)’이라는 용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각국의 과학자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하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했다. 이 현상은 미국의 과학기술 발전에 큰 동력이 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흐름이 반전되고 있다. 반(反)이민 정책과 AI 연구자를 겨냥한 각종 규제, R&D 예산의 대폭 삭감 등이 맞물리며 미국이 AI 인재 확보 경쟁에서 점차 우위를 잃고 있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경쟁 금지 조항 폐지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는 것만큼이나 그들이 자유롭게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실리콘밸리라는 명칭은 20세기 중반 실리콘 반도체를 개발하던 기업들에서 유래했다. 그 출발점은 1955년 설립된 쇼클리 반도체(Shockley Semiconductor)였고, 이후 1957년 이 회사의 직원 8명이 퇴사해 페어차일드 반도체(Fairchild Semiconductor)를 창업하면서 ‘배신자 8인(Traitorous Eight)’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1960년대 말까지 이들을 비롯한 페어차일드 출신 인재들은 잇따라 회사를 떠나 인텔과 AMD 등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고, 이들은 ‘페어차일드의 아이들(Fairchildren)’로 불리며 실리콘밸리 창업 생태계의 시초가 되었다.

이 같은 전통은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기업으로도 이어졌다. 1990년대에는 야후 출신들이 왓츠앱, 슬랙, 클라우데라를 창업했고,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로 불리는 인물들은 링크드인, 유튜브, 어펌 등의 주역이 됐다. 구글 출신 창업자들은 인스타그램, 포스퀘어를 비롯해 지금까지 1,200개 이상의 회사를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AI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오픈AI의 공동 창업자들 역시 다른 기술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들이며, 이들 중 다수는 앤트로픽, 퍼플렉시티 등 12개 이상의 AI 스타트업을 새로 창업했다.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창업 생태계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인재들이 자유롭게 회사를 옮길 수 있도록 한 캘리포니아의 독특한 법적 전통이 자리 잡고 있다. 1872년 제정된 캘리포니아주 헌법은 고용계약서 내 ‘경쟁 금지 조항(noncompete agreement)’을 금지하는 근거로 해석돼 왔으며, 이는 한때 노스다코타, 오클라호마와 함께 단 세 주에서만 허용되던 보호장치였다. 현재 미국 전체 노동자의 약 5분의 1은 경쟁 금지 조항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바이든 행정부 아래에서 연방거래위원회(FTC)는 경쟁 금지 조항을 연방 차원에서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임명한 연방 판사가 제동을 걸었다. 현재 FTC는 관련 규제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이 조치를 사실상 철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경쟁 금지 조항이 유지된다면 특히 캘리포니아 외 지역에서 AI 분야의 혁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반독점 정책 추진

이번에 발표된 조치 중 하나는 AI 혁신을 저해할 수 있는 FTC의 조사와 합의안을 재검토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 시절 FTC는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사업을 조사한 바 있으며, 여러 기술 대기업이 체결한 합의안 역시 기업 입장에서는 상당한 제약으로 여겨졌다. 이에 따라 이번 조치는 최근 수년간 진전을 이룬 반독점 정책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는 단순히 비경쟁 조항 폐지에 따른 노동 유연성의 문제를 넘어선다. 반독점 정책은 오랫동안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가능하게 한 주요 동력이기도 하다. 반독점 전문가인 조반나 마사로토(Giovanna Massarotto)는 “20세기 후반 AT&T,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한 주요 반독점 소송들이 있었기에 반도체, 소프트웨어, 인터넷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1950년대 AT&T는 미 법무부의 반독점 소송에 따라 트랜지스터(transistor) 특허를 강제로 라이선스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윌리엄 쇼클리(William Shockley)는 실리콘밸리 최초의 반도체 회사를 설립할 수 있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정부의 반독점 압박에 따라 IBM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분리해 판매하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이 본격적으로 성장했다. 마사로토는 “AT&T와의 반독점 합의는 오늘날 모바일 운영체제나 클라우드 서버의 핵심 기반인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생태계 확산에도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19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연방 정부의 반독점 소송 역시 이후 구글 등 인터넷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분석도 많다. 수십 년간 산업을 지배해온 거대 기업들을 견제하는 반독점 조치는 그다음 세대의 기술 혁신을 가능하게 해왔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빅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 시장의 성장에 제약을 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때 반독점 정책에 우호적인 인사들을 요직에 임명하며 기대를 모았지만, 이번 조치로 그러한 기대는 상당 부분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AI 기술이 인간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향후에도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 강국으로 남기를 원한다면, 과거 우리가 어떻게 그 자리에 올랐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대담한 공공 연구 투자, 전 세계 인재에게 열린 문, 공정한 경쟁이라는 세 가지 원칙에 다시금 투자해야 할 시점이다.

만약 업계의 단기적 이익을 이 같은 토대보다 더 앞세운다면, 미국의 기술적 미래는 물론이고 ‘혁신 강국’이라는 정체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이 글을 쓴 아사드 람자날리(Asad Ramzanali)는 밴더빌트 정책 액셀러레이터(Vanderbilt Policy Accelerator)의 인공지능 및 기술 정책 디렉터로, 바이든 행정부 시절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에서 전략 부국장 겸 비서실장을 지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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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7월 30일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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