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소화된 체외수정’으로 첫 아기 출산…이동형 연구실서 성공

남아프리카 농촌 지역에서 ‘워킹 에그(The Walking Egg)’ 프로젝트를 통해 체외수정 기술이 전파됐다.

몇 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두 가정에 미레이아(Milayah)와 로수(Rossouw)라는 이름의 아기가 태어나는 경사가 있었다. 모든 아기의 탄생이 특별하지만, 이 두 아기의 경우는 특히 의미가 깊다. 이들은 이동식 배아연구실에서 진행된 ‘간소화된’ 체외수정(IVF) 시술을 통해 태어난 최초의 사례다.

이 이동식 연구실은 체외수정 시술이 지나치게 비싸거나 아예 기술조차 없는 저소득 국가의 농촌 지역에 난임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고안됐다. 자동차 트레일러 안에 체외수정 시술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최소한의 비용으로 갖춘, 말 그대로 ‘움직이는 실험실’이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성과를 내고 있다.

체외수정은 점점 더 많은 부유국에서 일반적인 시술로 자리 잡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전체 출생아의 약 12%가 체외수정 시술로 태어난다. 하지만 여전히 시술 비용이 높고 보험이나 국가 의료 체계에서 전액 지원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저소득 국가에서는 접근성이 더욱 낮으며, 특히 농촌 지역 주민에게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대학교의 게르하르트 보쇼프(Gerhard Boshoff) 배아생물학 연구원은 “출산율이 높은 국가에서는 난임 치료가 필요 없다고 흔히들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니제르, 앙골라, 베냉 등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출산율은 인구 1,000명당 40명이 넘는데, 이는 이탈리아나 일본의 출산율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그러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높은 출산율이 이 지역 주민들에게 체외수정이 필요 없다는 뜻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 6명 중 1명은 일생에 한 번쯤 난임을 경험한다. WHO의 조사에 따르면 난임 발생률은 고소득 국가와 저소득 국가 간에 큰 차이가 없다. 이에 대해 WHO의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난임은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저소득 국가의 농촌 지역 주민들에게는 체외수정 시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 내에서 ‘생식 의료의 허브’로 여겨지지만, 인구 6,000만 명이 넘는 이 나라에서도 체외수정 시술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은 30곳이 채 되지 않는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앙골라나 말라위에서는 관련 병원이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은퇴한 산부인과 전문의인 윌럼 옴벨레트(Willem Ombelet)는 1980년대 프리토리아의 한 체외수정 연구소에서 일하던 중 이러한 의료 격차를 처음으로 인지했다. 그는 “흑인 인구에서 난임이 더 흔했지만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이들이 체외수정 시술을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 경험은 그가 모두에게 체외수정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방법을 찾고자 하는 데 동기 부여가 됐다. 그는 1990년대에 이 목표를 위한 과학·예술 프로젝트인 ‘워킹에그(The Walking Egg)’를 시작했다.

2008년 옴벨레트는 이미 간소화된 체외수정 기술을 연구하고 있던 생식생물학자이자 배아생물학자인 조나단 반 블러컴(Jonathan Van Blerkom)을 만났다. 일반적으로 배아는 멸균된 혼합 기체가 공급되는 인큐베이터에서 배양되지만, 반 블러컴은 배양에 필요한 기체를 미리 시험관에 주입한 뒤 고무마개로 밀봉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옴벨레트는 “우리에게는 첨단 실험실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미레이아는 6월 18일에 태어났다.
COURTESY OF THE WALKING EGG

난자와 정자는 고무마개에 바늘을 꽂아 시험관 안으로 주입할 수 있고, 이렇게 형성된 배아는 그 안에서 배양된다. 옴벨레트에 따르면 이 외에는 성능 좋은 현미경과 시험관을 적절한 온도에서 유지할 장비만 있으면 된다. 배아를 약 5일간 배양한 뒤에는 자궁에 이식하거나 냉동 보관할 수 있다. 그는 “일반 배아연구소의 불과 10분의 1에서 20분의 1 비용으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옴벨레트, 반 블러컴, 그리고 동료들은 이 방법이 기존 체외수정만큼 효과적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들은 2012년 벨기에의 한 병원에서 첫 번째 시범시험을 진행했고, 같은 해 간소화된 체외수정으로 아기들이 태어났다.

최근 보쇼프는 연구실을 이동형으로 만들어 남아프리카 농촌 지역을 돌며 시술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체외수정을 더 단순하고 저렴하게 만드는 것과, 실제로 그 시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일은 별개의 과제였기 때문이다. 만약 간소화된 체외수정 장비를 트레일러에 실어 직접 농촌 지역을 찾아갈 수 있다면 어떨까?

보쇼프는 “우리는 모든 장비를 매우 제한된 공간에 어떻게 넣을지를 고민하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워킹에그(Walking Egg)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료들과 함께 실험 장비 배치를 최적화하고, 좁은 공간에 공기 필터를 설치할 방법을 고안했다. 또한 트레일러가 주차된 상태에서 확장 공간을 펼칠 수 있는 ‘폴드아웃 시스템(fold-out system)’을 설계했다. 이 공간은 배아 이식 시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용도로 활용되었다.

이동식 체외수정 연구실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먼저 지역 의료기관에서 초기 치료를 받아야 한다. 난소를 자극해 난자를 배출하게 하는 약물을 투여 받고 채취하는 단계까지다. 보쇼프는 이후 과정은 이동식 연구실에서 모두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최근 파리에서 열린 유럽인간생식배아학회(European Society of Human Reproduction and Embryology) 연례회의에서 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첫 번째 임상시험은 지난해 시작됐다. 연구팀은 남아프리카 농촌 지역에 드물게 존재하는 난임 병원 중 한 곳과 협력해 시술에 동의한 10명의 자원자를 모집했다. 이 중 5명이 이동식 실험실에서 간소화된 체외수정 시술을 받은 뒤 임신에 성공했고, 이 중 1명은 유산했지만 4건의 임신은 유지되었다. 그리고 6월 18일 미레이아 아기가 태어났다. 이틀 뒤에는 또 다른 산모가 로수를 품에 안았다. 나머지 아기들도 곧 태어날 예정이다.

옴벨레트는 “우리는 이동식 장비에서도 매우 저렴하고 간단한 체외수정 방식이 기존 방식에 견줄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며, 연구팀이 이집트와 인도네시아에서도 유사한 시험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음 단계는 이 방식을 전 세계로 확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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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7월 17일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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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일: 2025년 07월 17일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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