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지키는 사람들’ 링컨 일렉트릭이 그리는 전력망의 미래
네브래스카에 위치한 공공 전력회사 링컨 일렉트릭 시스템이 에너지 전환의 길목에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3월 중순의 어느 아침, 폭설이 네브래스카주 동부 상공에 머물며 주도인 링컨을 강타했다. 시속 100km에 가까운 강풍과 진눈깨비가 몰아쳤고, 최고 20cm에 이르는 눈이 쌓였다. 현지 전력회사 링컨 일렉트릭 시스템(Lincoln Electric System, 이하 ‘LES’)에 따르면 그날 점심 무렵 고객의 약 10%인 1만 5,000명이 정전 피해를 입었다. 얼어붙은 눈이 전선에 달라붙으면서 선들이 서로 부딪혀 회로가 차단됐고, 강풍은 링컨 북쪽 외곽의 텅 빈 들판을 지나며 전봇대까지 쓰러뜨렸다.
LES의 에메카 안얀우(Emeka Anyanwu) 최고경영자(CEO)는 정전 지도를 화면에 띄운 채 10분 간격으로 새로 고침을 누르며 상황을 지켜봤다. 지난해 1월 CEO로 취임한 이후 그가 맞은 두 번째 대형 폭풍이었다. 현장에는 총 75~80명의 배선 작업자로 구성된 18개 팀이 투입돼 있었고, 이들은 정전 피해를 입은 수많은 고객에게 하루라도 빨리 전기를 다시 공급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그는 따뜻한 사무실에 앉아 있었지만, 거센 눈보라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현장 동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놓지 못했다.
안얀우는 커리어 초반을 ‘캔자스시티 전력 및 조명 회사(Kansas City Power & Light, 현 에버지(Evergy))’에서 보내며 배전 시스템 설계부터 작업팀 감독, 폭풍 대응까지 전방위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유틸리티 업계 사람으로서 폭풍 대응은 내 DNA에 새겨져 있다”며 “이런 날씨에는 강풍을 버티며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엄청난 신체적 부담”이라고 말했다. 이어 “말 그대로 모래폭풍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셈이라 작업 속도가 느려지고, 아예 손도 못 대는 일도 생긴다”고 덧붙였다.
LES 본사는 안얀우의 전임자인 케빈 웨일스(Kevin Wailes) 전 CEO의 이름을 딴 반짝이는 신축 건물에 자리하고 있다. 항공기 격납고처럼 생긴 차고는 차량이 후진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설계됐다. 진눈깨비와 강풍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피부가 갈라진 작업자들은 잠시 본사로 복귀해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숨을 돌렸다. 트럭 범퍼에서는 녹은 얼음이 콘크리트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어둑한 조명의 통제실 안에서는 감독자들이 현장 작업자들로부터 전화나 무전으로 접수된 피해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위 관리직 간부들은 복도 건너편 작은 회의실에 모여 있었고, 회의실 앞 대형 스크린에는 또 다른 정전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안얀우는 이러한 폭풍 대응 상황이 오면 최대한 현장 업무에 개입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는 “회의에 참석하긴 하지만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중간에 끼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이어 “괜히 방해되고 싶지 않아서 하루 일과가 끝나고 건물을 나서기 전까지는 아래층에도 내려가지 않았다”며 ”군림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우리 팀이 정말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나까지 나설 필요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혼란의 순간에도 안얀우는 통제가 아닌 협업을 택했다. 그의 리더십은 ‘오직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고 그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믿음에 기반한다.
이번 폭설은 그가 직면한 문제 중 가장 사소한 축에 속한다. 예측 가능한 유형의 위기이긴 하지만, 갈수록 그 빈도가 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안얀우가 맞닥뜨릴 ‘삼중고(trilemma)’는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이 될 예정이다. 이는 전력 공급의 신뢰성, 가격의 적정성, 지속 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목표 사이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 어렵고 복합적인 문제로, LES뿐만이 아니라 모든 전력회사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다.
전력회사는 점점 더 잦아지고 강력해지는 폭풍과 산불, 갈수록 심각해지는 사이버 공격과 물리적 피해, 예측하기 어려운 정책·규제 환경 속에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비용 부담 속에서도 요금은 적정 수준으로 관리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업계 전반은 화석연료에서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의 대전환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재생에너지 특유의 변동성과 불안정성을 감수하고 전력망의 근본적인 작동 방식 변화에도 발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최근 1년 사이 삼중고는 서막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여기에 새로운 기술적·정치적 압력이 더해지며, 전력망을 둘러싼 혼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렇게 서로 충돌하는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힌 상황에서 안얀우는 다가올 시련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있다. 그의 현실적인 접근 방식은 LES라는 조직을 통해 미래 전력망의 방향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되고 있다.
점점 거세지는 폭풍
전력 업계가 직면한 가장 시급한 기술적 과제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한 대응이다. 그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의 확산이 있다. 과거에는 인구 증가로 인한 전력 수요를 LED 조명이나 고효율 가전제품 같은 기술 발전으로 상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방식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새롭게 들어서는 데이터센터와 공장, 전기차와 전기 레인지, 전기난방기기 등으로 인해 전력 수요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연간 전력 수요 증가율은 1% 미만에 머물렀지만, 현재는 3%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022년만 해도 향후 5년간 전력망에 추가될 설비 용량은 23기가와트 수준으로 예상됐으나, 최근 전망치는 128기가와트로 대폭 상향 조정됐다.
정치적 과제 역시 분명하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가 몰고 온 거센 혼란이다. 앞선 바이든 행정부 시절, 재생에너지 확산을 위한 대규모 입법이 추진되면서 수십 개 산업 전반에 걸쳐 전환이 빠르게 이뤄졌다. 광범위한 세액 공제는 청정기술 제조 및 재생에너지 개발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연방 정부는 국유지에서 풍력·태양광 프로젝트가 보다 쉽게 추진될 수 있도록 정책 기반을 마련했다. 저장장치, 원자력, 지열 등 차세대 에너지 기술에 대한 자금 지원도 본격화됐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기후 정책의 방향을 사실상 180도 전환했다. 해상 및 육상 풍력 발전 인허가 절차는 지연되고 있으며, 석탄을 포함한 화석연료 개발이 행정명령을 통해 적극 장려되고 있다. 이러한 조치들은 법적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고, 정부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면서 미국 전력망을 규율해 온 복잡한 규제 체계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발언만으로도 일부 지역사회에서는 신규 풍력·태양광 프로젝트에 대한 반발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그 여파로 개발 비용과 불확실성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으며, 경우에 따라 관련 사업 자체가 흔들리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에너지 전환의 흐름은 여전히 거세다. 어쩌면 이제는 되돌릴 수조차 없을 만큼 강력한 동력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이 지난 2월 발표한 2025년 전망에 따르면, 내년에 새로 추가될 유틸리티 규모의 발전 설비는 63기가와트에 달하며, 이 가운데 93%는 태양광, 풍력, 에너지 저장장치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텍사스주의 송전망 연결 대기 용량(interconnection queue)의 92%가 이 세 가지 자원으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향후 미국 전력 인프라의 방향성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분명한 듯하면서도 끝내 예측할 수 없다. 지금의 상황은 삼중고 위에 또 하나의 딜레마가 포개진 채, 거대한 흐름이 복잡하게 뒤엉켜 소용돌이치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은 ‘정치’라는 거센 태풍의 중심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력 산업의 축소판
그렇다면 이런 혼란 속에서 CEO의 역할은 무엇일까. 안얀우가 LES의 수장 자리에 오른 배경에는 기술적 과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면서도, 정치적 사안은 유연하게 비껴가는 리더십이 있었다. 그는 전력망 운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송배전(T&D) 분야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캔자스시티에서 경력을 쌓은 뒤, 그는 시애틀 시티 라이트(Seattle City Light)로 자리를 옮겨 전기화, 에너지 시장, 자원 계획 전략, 사이버보안, 전력망 현대화 등 다양한 과제를 다루며 조직의 혁신을 이끌었다.
안얀우의 리더십은 전형적인 스타트업 CEO에게서 볼 수 있는 비전 중심의 ‘영업가형’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유틸리티 업계가 요구하는 책임감과 관리자다운 품성이 두드러진다.
미국 아이오와주 에임스에서 태어난 그는 이른바 ‘서드 컬처 키드(third culture kid)’로 자랐다. 부모의 모국과 자신이 자란 나라, 두 문화를 동시에 경험하며 ‘제3의 문화’ 속에서 정체성을 형성한 사람을 뜻한다. 나이지리아 출신의 그의 부모는 농업과 유아교육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가 다시 고국으로 돌아갔다. 안얀우는 어린 시절 대부분을 나이지리아에서 보내고, 이후 미국으로 돌아와 아이오와 주립대학에 진학했다. 올해 45세인 그는 키 약 188cm에 열 살 이하의 자녀 셋을 두고 있다.
그는 LES의 공개 이사회는 물론, 팟캐스트 인터뷰나 업계 상 수상 자리에서도 공로는 반드시 팀 전체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칭찬과 감사로 공감대를 끌어내는 리더다. 폭설이 지난 뒤에도 그는 링컨 지역사회에 “늘 변함없이 보여주신 너그러움과 인내심”에 깊은 감사를 전했다.
네브래스카주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전력 시스템 전체가 100% 공공 전력 체제로 운영되는 지역으로, 이곳의 전력회사는 모두 지역 공동체가 직접 소유하고 관리한다.
삼중고는 어느 전력회사에나 쉽지 않은 과제지만, LES는 그중에서도 이례적이면서 동시에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규모 면에서 의미 있는 존재감을 지니면서도, 여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 서부의 대형 전력회사인 ‘퍼시픽 가스 앤드 일렉트릭(Pacific Gas & Electric)’은 LES보다 약 37배 많은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LES는 대형 석탄화력발전소 세 곳에 일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가장 최근에 건설된 시설은 2007년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풍력 발전 계약 규모는 302메가와트에 이르고, 최근에는 서비스 구역 내 초대형 데이터센터까지 들어섰다. 올해 말에는 구글이 중심가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 주간고속도로 제80호선을 접한 대형 부지(약 234만m²)에 새 캠퍼스를 열 계획이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안얀우가 이끄는 LES는 오늘날 전력 업계가 직면한 도전과 기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LES의 특이점은 ‘어떤 회사인지’보다 ‘어떤 회사가 아닌지’에서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LES는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 회사가 아니다. 미국인 가운데 약 3분의 2는 민간 투자자 소유의 전력회사를 통해 전기를 공급받고 있지만, 나머지 3분의 1은 LES처럼 공공이 소유한 비영리 전력회사나 민간 협동조합 형태의 비영리 전력회사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다. 그중에서도 네브래스카주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전력 시스템 전체가 100% 공공 전력(public power) 체제로 운영되는 지역이다. 이곳의 전력회사는 모두 지역 공동체가 직접 소유하고 관리하며, 지역 이사회가 고객의 필요와 바람을 최우선에 두고 운영을 감독한다.
LES 이사회는 지역 IT 업계서 활동하는 루카스 사발카(Lucas Sabalka)가 이끌고 있다. 이 역할을 수행하면서 어떤 보수도 받지 않는 그는 “LES는 공공 전력을 기반으로 분명하게 공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며 “공익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주민의 목소리를 경청하며, 이들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역사회에 대한 조직의 책무가 운영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안얀우는 “LES는 이해관계가 분산된 조직이 아니다”라며 “전력 요금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거나 자산을 늘리는 것이 우리의 목적도, 존재 이유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전력회사의 본질은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며, LES는 지역사회의 성실하고 신중한 대리인”이라고 덧붙였다.
정치적 퍼즐
2020년 링컨 주민 약 200명이 공개회의에 참여해 LES 이사회에 중대한 결정을 촉구했다. 2040년까지 LES의 발전 포트폴리오를 순탄소배출제로(net-zero carbon emissions)로 전환하라는 내용의 결의안이었다. 이런 목표를 세운 것은 LES만이 아니었다. 네브래스카의 다른 두 대형 공공 전력회사인 ‘오마하 공공전력지구(Omaha Public Power District)’와 ‘네브래스카 공공전력지구(Nebraska Public Power District)’ 역시 비슷한 내용의 탈탄소 목표를 비구속적 결의안 형태로 채택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져 온 청정에너지 전환 흐름 속에서 이뤄졌다. 지난 10년 동안 네브래스카의 에너지 산업은 풍력 발전의 도입을 통해 큰 변화를 겪었고, 2023년 기준으로 풍력은 주 전체 발전량의 30%를 차지했다. 석유 자원이 인근 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네브래스카 입장에서는 풍력이 경제적 이점을 안겨준 셈이다.
하지만 거대한 풍력 터빈은 다양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터빈의 시각적 거부감은 물론이고, 농지를 잠식한다는 점도 반발을 낳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 농지의 상당수는 원래 에탄올 연료용 옥수수를 재배하던 곳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가 시작되면서 갈등은 더욱 격화됐고, 주 전역에서 태양광과 풍력 프로젝트가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는 사례가 잦아지고 있다.
링컨 외곽에 들어설 예정인 304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는 네브래스카주 최대 규모 프로젝트 중 하나다. 이 사업은 랭커스터 카운티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을 받았지만, 인근 주민들의 반발로 항소 절차에 들어갔다. 이 프로젝트는 플로리다에 본사를 둔 에너지 ‘대기업 넥스테라 에너지 자원(NextEra Energy Resources)’이 추진하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CEO가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공개적으로 높이 평가하면서도, “태양광과 에너지 저장 기술이 전력 공급을 확대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TERRY RATZLAFF
네브래스카는 전통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한 ‘공화당 지지 주’다. 예일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Yale Program on Climate Change Communication)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지역 성인 가운데 기후변화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믿는 비율은 66%에 불과했다. 2024년 대선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네브래스카 전체에서 약 60%의 득표율을 얻었다. 하지만 링컨이 위치한 랭커스터 카운티에서의 득표율은 47%에 머물렀다. 보수 일색인 붉은빛 지도 위에 보랏빛 점 하나가 찍힌 셈이다.
이런 정치적 지형 속에서도 안얀우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는 “간단한 해답은 없다”며 “이 업계에는 이념 논쟁에서 이기려는 사람들이 많고, 늘 논쟁을 양자택일의 구도로 몰고 가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일이 그렇게 단순하게 흑백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술의 새로운 최전선
전력회사로서 가장 풀기 어려운 과제는 ‘비용이나 탄소 배출을 늘리지 않으면서 어떻게 전력 공급 용량을 확대할 것인가’였다. 이 문제는 2024년 4월부터 LES가 본격적으로 마주한 기술적 도전이기도 하다. 미국 대부분의 전력회사와 마찬가지로 LES 역시 전력 수급의 안정성과 시장 운영을 맡고 있는 ‘독립 지역 송전기구(RTO)’에 의존해 전력망을 유지하고 있다.
기본 원리는 간단하다. 전력망에 연결된 여러 전력회사가 자사의 수요와 발전량을 하나로 모으면, 전체적인 신뢰성과 경제적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안얀우는 이를 음식 나눔 파티인 ‘포틀럭(potluck)’에 빗대 설명했다. “모두가 자기 가족이 먹을 만큼의 음식을 가져오는 게 원칙이지만, 그 음식이 반드시 자기 가족 몫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각 전력회사는 자사의 최대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발전 용량을 시장에 제공해야 한다. 그렇게 모인 전력은 하나로 섞여 전체를 위한 ‘만찬’을 이룬다. 전력망이 클수록 예기치 못한 수요 변화나 설비 고장도 더 쉽게 흡수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현재 모두가 더 많은 전기를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수요를 뒷받침해 줄 만큼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발전소를 단순히 켜고 끄는 것만이 유일한 변수였던 과거에는 전력 공급 능력의 계산이 비교적 단순했다. 예를 들어 164메가와트급 가스나 석탄 발전소는 통상 그만큼의 출력을 안정적으로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풍력과 태양광은 이 공식을 송두리째 뒤흔든다. 연료비도 들지 않고 탄소 배출도 없지만, 발전량은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들쭉날쭉하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자원 적정성(resource adequacy)’ 문제이라 부른다. 특정 시점에 얼마나 많은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을지를 예측하는 작업으로, 통계적 기대치와 평균값을 기반으로 매우 정교하게 계산된다. 기준이 되는 시점은 대개 수요가 최고조에 달하는 계절별 피크다. 이런 날에는 정전 사태를 막기 위해 모든 발전소가 쉼 없이 가동돼야 한다.
하지만 태양광과 풍력은 이 같은 계산 방식에 쉽게 들어맞지 않는다. 여름철 피크는 흐리고 바람조차 없는 날일 수 있고, 겨울철 피크는 해가 일찍 지는 날이 많다. 석탄이나 가스 발전소라고 해서 상황이 낫지도 않다. 이들 역시 정기 점검으로 가동이 중단되기 쉽고, 특히 겨울에는 지하의 가스 파이프라인이 얼어붙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잦고, 가정용 난방 수요와 대형 발전소의 몰리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때도 많다.
정치는 한발 물러섰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목표는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 특히 AI 데이터센터의 전원이 끊기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이었다.
이처럼 전력 생산 자원의 구성이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네브래스카를 포함한 미국 중부 지역을 관할하는 지역 송전기구 ‘사우스웨스트 파워 풀(Southwest Power Pool, 이하 ‘SPP’)’은 보다 신중한 대응에 나섰다. 2024년 8월 SPP는 발전소별로 피크 시점에 공급 가능한 전력량을 판단하는 ‘인증 기준’을 전면 개편했다. 이제 모든 발전 자원은 절댓값이 아닌 상대적인 기준에 따라 평가된다.
이를테면 고장이 잦은 가스 발전소는 낮은 점수를 받게 되고, 풍력은 바람이 더 많이 부는 겨울철 피크 시점에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다. 반대로 태양광은 낮이 길고 햇빛이 강한 여름철에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새로운 규정이 적용되면서 LES는 ‘포틀럭 파티’에 더 많은 전력을 준비해 가야 했다. 그것도 SPP의 고유 계산 방식에 따라 산정된 용량 기준을 충족해야 했다. 마치 ‘햄버거 500그램이 두부 500그램보다 더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다’고 선언한 셈이다.
청정에너지 및 환경 단체들은 이 같은 변화에 즉각 반발했다. 풍력과 태양광에는 불리하게, 화석연료 기반 발전에는 유리하게 작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이 업계 로비의 산물인지, 특정 이념이 반영된 것인지, 혹은 단순한 기술적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원 적정성’이라는 명분은 강력했다. 정전의 위험 앞에서는 누구도 쉽게 반기를 들 수 없기 때문이다.
‘삼중고’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조치는 ‘신뢰성(reliability)’이라는 채찍이 ‘가격 적정성(affordability)’이라는 말을 몰아세운 격이었다.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은 아직 차례가 오지 않아 뒤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중이다. 정치는 한발 물러섰고,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목표는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 특히 AI 데이터센터의 전원이 끊기지 않도록 지켜내는 일이었다.
향후 방향 모색
LES가 SPP의 새로운 규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있지만, 결국 이를 따를 수밖에 없다. 지역사회가 무엇을 원하든 전기는 끊기지 않아야 한다. 결국 쉽지 않은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2040년까지 탄소 순배출을 ‘제로’로 만들겠다는 결의에 대해 안얀우는 현실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목표를 좇는다고 해서 무리한 지출을 하거나 재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결정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전력망의 신뢰성을 희생할 생각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현실적인 제약 안에서 지역사회는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와 원하는 방향을 분명하게 표현하고, 그에 따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LES는 현재 향후 전략 수립을 위한 대규모 설문조사와 주민 간담회를 진행 중이다. 설문에는 전력의 세 가지 핵심 가치, 즉 신뢰성, 가격 적정성, 지속 가능성 가운데 무엇을 가장 우선순위에 둘지를 묻는 항목도 포함돼 있다.
결국 이 모든 흐름 속에서 분명해지는 사실은 전력회사가 단순한 인프라 운영 기관을 넘어 지역사회의 ‘관리자’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혁신 기술, 재생에너지 개발,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 경쟁 등이 주목받는 시대지만, 그 이면에서 에너지 전환이라는 거대한 무게를 실질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것은 바로 지역 전력 회사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종종 분기 실적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 구조, 산불 리스크에 짓눌린 부담, 정치의 영향 밖에 존재하는 거대한 조직이라는 이미지에 가려지기 쉽다.
그러나 LES 같은 사례를 들여다보면, 이들이 마주한 기회와 동시에 안고 있는 한계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안얀우는 “지역사회는 어느 정도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우리는 기술적인 입장에서 그 꿈에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해야 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 역할을 ‘꿈의 속도 조절하는 일’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아무런 기대도 열망도 없이 꿈꾸지 않는 지역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직 전체가 어느 정도의 열망과 야심을 품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결국 나는 어디까지나 전력을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 글을 쓴 앤드루 블럼(Andrew Blum)은 《튜브(Tubes)》와 《웨더 머신(The Weather Machine)》의 저자로 현재는 에너지 전환 인프라를 주제로 한 책을 집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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